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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r 18. 2024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잘 살고 싶다. '잘'의 정의는 저마다 다르다. 세속적 잘과 주관적 잘이 나뉜다. 나는 세속적 인물로, 세속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세속과 주관이 적절히 혼합된 잘을 추구한다. 세속과 주관의 잘을 정리하며 나를 돌아본다.





우선 세속의 잘을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세속의 잘은 '부'로 시작한다. 자본주의 시대에 단 하나의 슬로건이 있다면, "돈이 최고"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본 축적을 인정하고,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생산수단을 통해 부를 일궈내고, 이 부를 사회가 인정한다. 그러니까 부의 차등이 필연적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은 더 큰 부를 소유하고, 생산수단이 몸뚱어리 밖에 없는 이는 상대적으로 작은 부를 소유한다. 격차는 빠르게 벌어진다. 피케티, 물론 아냐 폴로티셔츠,가 21세기 자본에서 주장한 핵심이 이것이다. 사회가 발전하면 나라의 성장률은 0에 수렴한다. 그에 반해 자본수익률은 그보다 크다. 토지 수익은 역사적으로 5%였다. 자본가, 혹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이 더 부자가 되는 시스템이다. 한국은 저성장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성장 동력을 잃었다. 그러니 가진 자가 더 부자가 되는 시스템으로 나아간다. 요컨대 우리 시대의 잘은 '부'다.



세속의 '잘', 그 두 번째는 외모다. 외모는 경쟁력이다. 보이는 게 다는 아닌데, 다에 근접해가고 있다. 정보기술의 발전 탓이다. 덕이 아니라 탓이다. 이 외모에 대한 집착은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알지만 바꿀 수 없다. 이 사회를 사는 사람으로서 최대의 효율을 내기 위해 외모를 관리할 수밖에 없다. 에이 더러운 사회! 꾸밈을 강요하는 사회! 하지만 꾸며야지 뭐 별 수 있나. 잘생긴 외모의 기준은 시대가 제시한다. 지속적으로 변한다. 같은 시대라 할지라도, 문화권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글로벌 사회기에 조금씩 중화되는 추세다. 잘은 얼굴이 작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티존이 자기주장이 강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쌍꺼풀은 선택이다. 세상이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에 맞추는 중이다. 타고난 재료에서 가능한 최대의 효율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영양 밸런스 좋지 않은 인스턴트 라면이지만, 해산물 넣고, 차돌박이 넣으면서 국물 맛을 깊게 만들 수 있다. 콩나물이나 숙주를 올려 식감을 살릴 수도 있다. 라면이란 존재의 한계를 벗어날 순 없지만, 나름의 영역을 구축해 인스턴트 절대 안 먹겠다 선언한 사람에게 다가갈 수도 있다. 아이고 나는 다이어트 중이라 라면 먹을 수 없어(네 눈과 코와 입이 내 취향이 아니야). 하지만 면을 절반으로 줄이고, 닭 가슴살을 넣어보면 어떨까? (치아를 교정하고 비비크림을 바르면 어떨까?) 외모의 경우 내가 내린 답은 나만의 미를 찾자가 아니라 모두의 미에 다가서자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자. 살찐 게 인기가 없다면 체중 관리를 할게. 근육질이 인기라고? 귀찮지만 아령 만지작거릴게. 일상 영역에서 큰 노력 안 하고 성취할 수 있는 개선사항이 있다면 기꺼이 시간을 투자한다.



세속의 '잘', 세 번째는 어울리는 삶이다.주관의 잘과 완벽한 교집합이다. 건강한 잘이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고 삶에 활력을 준다. 더불어 사는 삶이다. 남과 어울리는 능력이 필수다. 세상이 요구하고, 내가 요구한다.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 책과 경험을 통해 배운다. 핵심만 말하면, 상대에 집중하고, 존중하고, 상대를 높이고 나를 낮추면 된다. 말과 태도로 상대가 얼마나 근사한 사람인지 알려준다. 나 좋다는 사람 싫어하기 힘들다. 사람을 좋아하면 자연히 잘 어울릴 수 있다. 나와 함께 시간 보내는 이들을 편하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사람은 사회가 보기에 잘 산다. 사회는 온전한 통제를 위해 규율을 제시한다. 규율을 잘 따르는 사람을 잘 사는 사람으로 평가한다. 잘 사는 사람에 더 많은 기회가 온다. 그 결과 사회적 문법을 아는 사람이 성공에 가깝다.





세속의 '잘'만으로 온전하지 않다. 세속의 잘이 맡은 부분은 외면이다. 주관의 잘이 맡는 부분은 내면이다. 구체적으로 쓰자면, 세속의 잘은 최소 투자로 최대 효율을 누리고 싶어하는 자본주의식 잘 살기다. 인생을 되도록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 돈 없고, 못생기고 사회성 없는 사람을 사회가 환영하지 않는다. 불공평한 사회에서 혜택받지 못 하는 삶은 비참하다. 한국 사회가 제시하는 최소한의 삶은 꽤나 가혹하다. 기본적 삶을 살기 위해선 돈이, 깔끔한 외모가, 사회성이 필요하다. 세속의 잘을 통해 준비물을 얻는다. 세속의 잘과 주관의 잘은 상호보완적이다. 준비물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완성도가 달라진다. 아무리 돈이 많고, 친구가 많고, 세상이 호감을 갖는 외모라도, 주관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 자신에 만족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정의인지 생각해야 한다. 예쁜 포장지에 걸맡는 내용물이 필요하다.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잘 살아야 하는 근거를 찾는다.




주관의 '잘'은 다정함이다. 기독교의 사랑과 같다. 측은지심을 갖고, 겸손한 태도로 모두를 대한다. 모두 평등한 인간이란 것을 진리로 받아들인다. 나의 잘남은 운과 시대의 혜택이며, 상대에게도 언제든 때와 운이 찾아올 수 있음을 인식한다. 내가 어려워질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둔다. 우리는 바람 앞에 촛불이다. 한 번의 바람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면 모두에게 다정함이 필요하단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뜻함은 퍼져나간다. 따뜻함의 출처가 된다면 잘 사는 삶이다.




주관의 '잘', 다음은 여유다. 타인의 실수에 관대한 사람은 멋지다. 드라마를 보면 멋진 멘토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을 곁에서 지켜보고, 필요한 지원을 한다. 따뜻한 격려를 건네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자신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겐 너그러운 대인배. 멋지단 말이 나온다. '잘'은 다소 다르다. 자신에게도 너그러워야 한다. 내가 나를 아끼고 자신에게도 너그러운 사람이 잘 산다. 그럴 수 있어- 괜찮아- 자신을 달랠 수 있는 사람이 남을 달랜다. 대단한 성취를 위해 자신에 엄격해질 필요도 있다. 다만 대단한 성취보단 행복한 삶이 중요하다. 적절한 합리화, 혹은 정신승리는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멋보다 잘이다. 




주관의 '잘', 세 번째는 배움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분명한 주관을 가진 사람이다. 세속의 멋을 따른다는 것에서부터 수동적인 삶이다. 다만 생각에서만큼은 능동적일 필요가 있다. 주관은 깊이가 전제된다. 어느 정도 깊이 파고들어야 자신의 포지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여러 딜레마 상황을 상정하고, 어디에 위치했는지, 어떤 지향을 지녔는지, 지향점과 지금의 위치가 얼마나 다른지 왜 다른지 어떻게 좁힐지 생각하면 사고능력이 성숙한다. 배움이 여러 가정을 돕는다. 상황별 어떤 맥락이 있는지, 고려할 사항이 무엇인지, 행동으로 인해 생길 여파와 그 여파가 타인에 주는 영향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시선이 멀리 간다. 고려할 사항이 많음을 깨닫는다. 더 많은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보면 구석구석 바라볼 수 있다. 끊임없이 배우려 하고, 새로운 지식을 획득한다. 필터를 하나 둘 늘려가면서 생각을 정돈한다. 여러 안건에 대해 분명한 의견이 있는 사람은 멋지다. 사유의 증거이며, 세상을 능동적으로 살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주관의 '잘', 마지막은 욕망의 절제다. 하고 싶은 일은 많다. 해야 하는 일도 많다. 그 두 가지가 충돌하는 경우가 생긴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사람은 해야 하는 일의 빈도가 높은 사람이다. 욕망을 절제하는 사람이다. 욕망의 절제는 단순히 인내심을 뜻하지 않는다. 한정된 에너지로도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전략을 세우고, 환경을 조성하며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 말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몇 가지 장치로 인해 타인의 행동을 쉽게 조정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약간의 환경을 조성하고 더 목표 달성에 수월한 방식을 찾을 수 있다. 그 경우 해야 하는 일을 더 많이 한다. 예를 들면 쉽다. 나는 식단을 관리하고 싶다. 채소와 고기 비율을 올리고, 탄수화물을 줄이고 싶다. 이때 냉장고에 맥주와 각종 디저트가 있다면? 만약 가족이 귀갓길에 마라탕을 포장해 온다면? 누군가 옆에서 해물파전을 굽고 있다면? 친구가 젤라토 매장에서 일하는데, 직원용 특가로 구매한 프리미엄 젤라토 한 팩을 선물로 준다면? 식단은 실패다. 만약 냉장고에 바로 먹을 수 있게 준비된 샐러드 믹스가 있고, 각종 샐러드드레싱이 있으며, 신선한 고기가 있다면 어떨까? 샐러드 믹스 한 움큼 잡아서 볼에 넣고 드레싱 한 번 뿌리면 샐러드가 완성된다. 프라이팬에 고기 올리고 기름 튀는 거 방지하는 덮개를 올린다. 뒷정리에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야무지게 샐러드와 스테이크를 먹는다. 편의성과 접근성을 올리니 식단 관리가 수월하다. 타고난 인내심을 어찌할 순 없다. 타고나길 훌륭하지 않은 인내심으로도 목표 달성 가능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욕망을 능숙하게 절제하는 사람이 잘 산다. 원하는 삶에 가까워진다.




월요일 아침에 가게 일을 마치고 카페에 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기분이 좋다. 공복 상태에 커피 마시니 머리가 살짝 돈다. 취한 상태와 비슷하다. 카페인 하이가 과감한 주제를 들이민다. 취중진담 비슷한 글이 됐다. 잘 살고 싶다. 잘의 기준을 나열하며, 지금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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