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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r 19. 2024

경솔한 글쓰기


경솔하게 글을 썼다. 상대를 조롱하는 제목을 달고, 수준 낮은 문단 몇 개를 연달아 썼다. 글을 쓰다 멈췄다. 나는 정말 무례하다. 무례의 배경을 확인하기로 한다. 아래 구분선 사이에 있는 문단이 최초에 쓴 글이다. 





전세계적으로 기술과 유통과 상하수도와 보일러와 화학 기술과 인체공학이 발전했다. 이 모든 혜택을 매일 아침 욕실에서 마주한다. 손잡이를 중앙에 놓고 당기면 샤워부스에서 물이 쏟아진다. 몇 초 만에 샤워하기 최적의 온도가 된다. 샤워부스 아래서 물을 맞으며 양치한다. 양치하는 동안 몸을 충분히 적신다. 양치가 끝나면 계면활성제를 듬뿍 넣은 샴푸를 머리에 뿌린다. 금세 풍부한 거품이 생긴다. 두피 이곳저곳에 거품이 스며들어 노폐물을 제거한다. 이어서 폼 클렌징과 비누로 전신을 닦는다. 10분 만에 이 사회가 요구하는 위생 관념을 지닌 문화인으로 거듭난다. 




위생 국가의 위생 관념은 높다. 매일 샤워하고, 하루 2,3 회 양치하고, 치실하고, 치석제거하고, 각질제거 한다. 바디 크림으로 온몸을 문지른다. 살비듬 떨어지지 않은 촉촉한 몸을 유지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보급된다. 선진국에 사는 모두가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청결 기준이 오른다. 이 쉬운 걸 왜 안 해? 해! 점점 체취와 살가루, 때가 불쾌한 것으로 거듭난다. 씻지 않은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가해자가 된다. 올라간 위생 관념은 지저분한 사람을 향한 질타의 근거가 된다. 




우리는 타인에게 지저분하다, 냄새난다, 씻어라-는 요구를 할 수 없다. 문화인의 규범과 위생 관념이 충돌한다. 일부는 위생 관념이 나빠 인해 엄청난 체취를 풍긴다. 우리는 그에게 씻으라 요구할 수 없다. 불쾌를 속으로 삭힌다. 불특정 다수의 행인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닌가! 




시대의 철학자를 만났다. 오늘 날씨 더움. 낮 최고 기온은 30도다. 집 밖을 나서니 후덥지근한 공기가 반겨준다. 히카리에 왔다. 커피를 시켜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뒷층 테이블에 앉았다. 이것이 문명의 이기. 에어컨 없던 시절을 상상할 수 없다. 이 쾌적함 없인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눈에 띄게 강한 체취. 일주일 이상 감지 않은 머릿기름 냄새, 제대로 말리지 않은 세탁물의 냄새, 실컷 땀을 흡수한 섬유가 말랐을 때 나는 냄새가 섞였다. 머리가 어질하다. 호주는 선진국이고, 상하수도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됐다. 정수 기능도 좋아 탭 워터를 곧바로 마실 수 있다. 대형 저가 체인을 이용하면 샴푸와 바디워시를 아주 저렴한 값에 구매할 수 있다. 곳에 따라 히카리 커피 한 잔 값($6~9)으로 샴푸와 바디 워시를 살 수도 있다. 내 옆에 앉은 고객은 이러한 위생 시설을 이용하지 않은 것 같다. 위생용품 구매 대신 커피를 택한 진정한 이 시대의 지식인이자 철학자가 됐다.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뒷층 테이블을 포기했다. 문명의 이기를 벗어난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으며 트램이 뿌리는 먼지바람이 코를 간지럽히는 앞층으로 내려왔다. 에어컨 없는 시절을 상상할 수 없으며, 이 쾌적함 없이 살 수 없다던 나는 쾌적함 없는 곳으로 내려왔다. 땀을 식히기 위해 목까지 잠근 단추를 두 개나 풀고 소매 단추도 풀어 접어 올렸다. 옆자리 남성은 일반적 위생 기준과 다른 선택을 했다.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이 평소만큼 유쾌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유 없는 이들이 불편해 하는 포인트는 구매한 재화/서비스가 돈값 못 했을 때다. 내가 6불을 지불하는 이유는 시원한 실내에서 맛있는 커피 마시며 작업하기 위함이다. 내 6불이 가치를 만들지 못 했다. 자본주의이자 위생 국가를 사는 나는 불편하다. 




글쓰기를 멈추고 쓴 글을 읽는다.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멀리 왔다. 한편 사회학 독서모임의 열혈 참석자이자 다정함의 출처가 되겠다는 각오는 빈 말이 됐다. 타인의 체취를 논의 대상으로 삼았다. 경솔하다. 





카페에 와서 최초로 쓰는 글의 주제는 조건반사적으로 나온다. 당장 느끼는 감정의 이유를 찾거나 가치판단을 하는 식이다. 체취를 맡으며 왜 이것을 불쾌하게 느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그것은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위생 관념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그 냄새를 불쾌의 카테고리에 넣었다. 생각해 보면 감각에서 쾌, 불쾌를 가르는 것은 학습이다. 예를 들면 겨드랑이 냄새, 속칭 암내가 있다. 그 냄새에 대한 가치 판단이 바뀐다. 어릴 때는 '엄마 냄새'라며 친근하게 느꼈다. 임시로 지은 집에서 살았던 때가 있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샤워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가족의 체취를 맡으며 살 수밖에 없었다. 씻어야 한다는 당위가 없었기에 그 냄새가 불편하지 않았다. 사춘기 무렵 겨드랑이에 털이 나고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오! 내 몸에도 엄마 냄새가 나네-라며 재밌어했다. 머릿기름도 마찬가지다. 머리카락이 코팅돼 더 촉촉하고 탄력 있다며 좋아했다. 환경이 바뀐다. 비위생= 불쾌의 도식이 생긴다. 사회의 규율은 개인의 기호와 감각마저 조정한다. 




나약한 인간으로 세상의 기준을 학습한다. 그 편이 살기 쉽다. 모두와 같은 방향으로 걸었을 때 얻는 이득이 많다. 타인과 어울리기 쉽고,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쌓은 친분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도 하며, 중요한 때 우호적 관계를 만들 수도 있다. 체취는 나쁜 것이란 개념을 학습해 체취가 나지 않으며, 청결함의 증표를 획득하기 위해 일상을 조율한다. 같은 개념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 세상의 기준을 따르다 보면 체화한다. 그 로직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세상이 불쾌라 지목한 대상에 불편함을 느끼는 단계에 이른다. 




문제 원인은 글쓰기 방식에 있다. 대체로 글의 구조를 짜지 않는다. 지향점 하나를 찍고 손이 알아서 그곳으로 향하게 방치한다. 사고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사회구조 들여다 보는 기회를 얻기 위함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다. 상대의 체취가 불편하다. 왜 위생관념이 없을까? 쓰다보니 상황에 몰입하고 과격한 표현이 나온다. 내 맘대로 상대의 일상을 재단해 웃음거리로 만든다. 조롱은 '위생용품 구매 대신 커피를 택한 진정한 이 시대의 지식인이자 철학자가 됐다'라는 구절까지 다다랐다. 문장에 타인을 향한 존중이 있는가?




세상은 왜 내게 이런저런 규율을 제시하고, 세상살이를 불편하게 만드는가. 풍자 코미디 방송 SNL을 즐겨 본다. 수년 전에 저마다가 따라 한 유행어 하나가 있다. '이거 나만 불편해?' 내가 묘하게 불편하게 느꼈던 지점이 있다. 누군가의 동의를 얻으면 그 불편은 비난의 대상으로 거듭난다. 사회의 동의가 비난의 근거가 된다. 우리 세상은 많은 규율을 제시하고, 완벽히 종속된 구성원은 확대 재생산한다. 나도 모르게 소수자(세상의 규칙에 덜 철저한 이들)를 폄하해도 되는 대상으로 취급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열한 문장이 몇 가지 사실을 시사했다. 내 문장의 가벼움, 다수의 기준을 강요하는 태도, 순응하는 정도에 따른 위계. 우리는 다양한 생활 조건에 놓이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지닌다. 다양한 삶의 양태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문명이 얼마나 발전했든 우리 삶은 빈곤해질 것이다. 그간 읽은 책과 쓴 글, 참여한 독서모임의 횟수가 무색하다. 말과 생각이 일치하지 않았다. 위선이다. 그간 한 사회적 발언은 빛 좋은 개살구다. 무례를 벗어나자. 다정한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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