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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Nov 20. 2024

30만 원과 자식의 도리


 

 나는 효자가 아니다. 기본적 자식이다. 비행기 요금에도 이코노미, 비즈니스, 퍼스트 클라스가 나뉜다. 이코노미는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승객을 실어 나르는 기본적 목적에 충실한 서비스다. 기본적 자식은 이코노미와 비슷하다. 무엇을 하는가? 아버지의 삶의 질이 항시 비슷하도록 돕는 지지선 역할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먹고 마시고 입고 잘 때 필요한 재화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역할이다. 이제까지 자식 도움 없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셨다. 기본하기 참 쉬웠다. 



남보다 뛰어날 생각도, 모자를 생각도 없다. 주변 딸들 이야기를 주워듣는다. 부모님 근처에 살며, 함께 장 보고, 식사하고, 여행 간다. 연중행사에는 100만 원씩 턱턱 내는 배포를 보여준다. 이래서 딸 나야 한다. 반면 나는 생일, 어버이날에 안부 인사와 함께 2,30만 원 동봉한다.  주위 사람에게 밥과 선물을 뿌리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자식 돈 없이 잘 사는 아버지의 존엄을 지켜주기 위함일까? 존엄 수호에 5%, 그 돈 없어도 잘 사신다는 적당한 생각 95%다. 적당함을 넘어야 효도다. 나는 적당함에 머물기에 효자가 아니다.



전날 아버지와 통화했다. 아버지는 요령이 없다. 말이 투박하다. 내 새 사업이 어떤지 묻는다. 나는 효자가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말했다. 효자라면 부모에게 걱정 끼치지 않기 위해 듣기 편한 말을 골랐을 것이다. '기본적 자식'인 나는 걱정을 아버지의 몫으로 남기기로 한다. 신규 매장이 적자를 보고 있고, 매달 천만 원 정도의 손실을 입고 있음을 밝혔다. 아버지는 감탄사를 짧게 토했다. 다만 사장이 4명인 곳이다. 개인 손실은 300만 원, 다른 소득으로 커버할 여지가 있음도 덧붙였다. 아버지 음성에 다소 긴장이 풀렸다. 나의 비교적 어려운 근황을 전했다.



아버지의 비교적 어려운 근황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고물상을 하신다. 거래처에서 고물을 수거해서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판매한다. 그 마진이 아버지의 생계를 책임진다. 요즘 고물상 경기가 특히 나쁘다. 물건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지난 9월부터 일을 하지 못 하셨고, 겨울에는 안전상 이유로 원래 일을 하지 않으신다. 내년에는 더 나빠질 예정이란다. 내년부터는 적금을 더 이상 넣을 수 없다 하셨다. 매달 30만 원의 적자를 예상하신다. 워낙 씀씀이가 적은 분이다. 최소 생활비로 생활한다. 조금 벌어서 보험, 적금에 돈을 넣는다. 남은 돈으로 생활한다. 이 루틴에 30만 원이 빠질 계획이란다. 



기본적 자식의 도리는 부모의 기본적 삶을 책임지는 것이다. 기본적 삶은 평생 아버지가 영위해왔던 삶이다. 그 삶이 이어지기 위해 매달 30만 원이 필요하다. 나는 적당한 아들로서 매달 30만 원을 송금할 것을 약속했다. 효자는 기본 이상을 한다. "저, 효자 아들이 아버지의 모든 생계를 책임지겠습니다. 30으로 되겠습니까.  200 보내드리겠습니다. 은퇴하시죠. 껄껄껄." 효자와 거리가 있는 나는 상상으로 멋을 누린다. 아버지는 월 30만 원 송금을 약속한 아들을 걱정한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추가 지출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취지다. 감당 가능하고, 감당 가능하다 답했다. 전화를 끊었다. KB증권앱으로 30만 원을 송금했다. 



최근 아버지에게 공수표를 날렸다. 신규 매장 오픈 직전 일이다. 신규 매장을 통해 고정 소득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한층 마음에 여유가 생길 것 같다. 아버지가 차가 잘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포터를 10년 타셨다. 차는 보통 10년 주기로 바꾸는 거라 말씀하신다. 2천만 원을 써야 할 시기인데, 2천만 원을 어떻게 구할지 모르겠다. 아, 이 타이밍이다. 기본적 자식에서 효자로 승급할 때다. 신규 매장의 추가 소득까지 고려하면 2천만 원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다. "그 차, 제가 사드리겠습니다." 나는 정말 카리스마 있어. 나는 다시 태어났어. 2025년부턴 효자다. 매장이 오픈했다. 처참한 매출을 기록 중이다. 5억 주고 만든 매장에 하루 10팀 온다. 렌트비 정도 낼 정도고, 그 이후 인건비 및 각종 운영비용은 온전히 우리 부담이다. 매출을 지켜보다 아버지에게 전화드렸다. "흠, 아버지 당장 차는 못 사드리겠는데요."



아버지는 늙고 병들었다. 작년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그 이후 기력이 쇠퇴했고, 약간의 우울증을 앓고 있다. 매일 운동을 하지만 매일 술도 마신다. 건강이 더 나아질 거란 믿음이 없다. 오늘이 남은 날 중 가장 건강한 날이다. 유일한 가족인 아들은 해외에서 살고 있다. 노동이 불가능할 때, 생활비는 자식이 부담할 수 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때가 오면 문제는 커진다. 호주 삶을 절반 정도 포기하고 간헐적으로 병수발 들어야 한다. 상상이 구체적으로 변하며 한숨이 터져 나온다. 어머니의 병치레를 통해 환자 가족의 고통을 실감했다. 매달 병원비, 간병인비로 800만 원을 지불한다. 매 방문마다 야위어가는 어머니를 본다. 방문 사이 텀이 길수록 죄책감이 커진다. 어느 순간 죄책감 해소를 위한 방문으로 거듭난다. 그 생각이 더 큰 죄책감을 불러온다. 물질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아버지에게도 그 시기는 분명히 올 것이다. 나는 그때 기본적인 자식의 도리를 해야 한다. 지금의 기본은 30만 원 정도의 부담이고, 그때의 기본은 나의 일상을 뒤바꿀 정도의 부담이 될 것이다. 



2025년의 자식의 기본적 도리는 30만 원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30만 원은 부담스럽지 않다. 자식 노릇하기 쉽다. 미래를 떠올린다. 30만 원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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