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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Dec 10. 2024

죽을 때까지 집 평수만 늘리는 사회



유튜브 알고리즘이 흥미로운 제목을 띄웠다. '죽을 때까지 집 평수만 늘리는 한국 사회의 최후.' 클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정운 박사가 본인의 책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비평하며 인터뷰를 진행한다. "한국인의 비극은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의 모순에서 비롯됩니다." 2분 30초쯤에서 영상을 멈췄다. 그의 말이 머릿속에 울렸다.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내 삶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교환 가치에 매몰되어 있다. 집 평수가 그 단적인 예다. 누군가의 경제력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되어버렸다. 서울 아파트 한 채가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 평수가 늘수록 가격이 비례해 오른다. 한강뷰, 시공사, 브랜드라는 수식어들이 교환 가치를 더욱 치켜세운다. 아파트는 단순히 사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상징하는 물건이 된다. 한국에서는 그것이 자본주의적 성공의 전부처럼 여겨진다.



나는 호주에서 13년째 살고 있다. 가끔 한국에 여행 가면 친척 어른들의 질문에 놀라곤 한다. "연봉이 얼마니?", "집은 자가냐 전세냐?", "은행 대출은 얼마나 끼었어?" 호주에서는 누구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돈과 관련된 질문은 금기다. 가장 가까운 친구조차 묻지 않는다. 그 대신 "행복하니?"라는 질문이 더 익숙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왜 그렇게 남의 돈이 궁금한 걸까? 경쟁 속에서 남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가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깝다.



김정운 박사는 외딴 섬에서 살고 있다. 집을 구매할 때 주변 시세의 두 배를 지불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그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지, 주변 시세가 아니니까." 그의 말에 무릎을 쳤다. 나 또한 가끔 타인의 시선에 휘둘려 내 필요를 외면한 소비를 할 때가 있다. 최신 아이폰이 대표적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성능과 휴대성이지만, 나는 늘 최신 모델을 고민한다. 그 제품을 가진 사람들처럼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유혹한다. 내 필요가 아닌, 타인의 욕망을 좇는 것이다.



집을 살 때는 다행히 사용 가치를 우선했다. 천고가 높고, 바다가 보이는 뷰, 한 면이 통창으로 된 고층 아파트를 선택했다. 방 갯수나 평수 대신, 내가 그 공간에서 얻을 수 있는 여유와 개방감을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타인의 평가를 의식했다면, 아마 방음도 안 되고 페인트칠도 벗겨진 낡은 빌라를 샀을 것이다. 내 삶의 질이 교환 가치에 희생되지 않으려면, 스스로의 필요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캉의 이 말처럼, 나는 내 욕망을 찾는 동시에 적당히 타인의 욕망도 따른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내 필요와 타인의 시선 사이에서 스스로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예를 들어, 여유로운 휴식을 원해 휴양지에 갔다고 하자. 그곳에서 리조트 고객만 이용할 수 있는 워터 액티비티 딜을 제안받는다. 기본가 100만 원짜리를 10만 원에 제공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에 마음이 흔들린다. 이때 내가 원했던 건 쉬는 것이었음을 잊고, 물놀이를 선택할 수도 있다. 결국 내가 내 욕망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교환 가치에 휘둘리게 된다.



얼마 전 본 드라마 클립이 떠오른다. 권상우는 부하직원 박진주의 퇴사를 막기 위해 말한다. "10년만 더 버티면 엄청난 자리에 올라갈 수 있어." 그러나 박진주는 단호히 말한다. "10년 동안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10년을 나답게 살고 싶습니다." 이 짧은 대사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 삶에서 진짜 필요한 평수는 얼마나 될까?



지금 나는 노동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매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친구들과 농담을 나누고, 독서모임에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루하루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생계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된다. 이 삶은 내가 꿈꿔온 모습과 가깝다. 적당한 소득, 적당한 여유, 적당한 평수가 내게 필요할 뿐이다. 더 큰 욕망을 추구하기보다, 지금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내게 맞는 길이다.



죽을 때까지 집 평수만 늘리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나에게 유용하고 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쏟고, 진정한 사용 가치를 추구하고 싶다. 이제 영상을 다시 재생해야겠다. 김정운 박사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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