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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May 21. 2023

혹시나 해서

시선 21화 [장마] by 선장

주간 <시선> 스물한 번째 주제는 '장마'입니다.




색시야, 우리가 이 주제를 정했을 때에는 작년 장마 초입이었지. 내리는 비를 보면 뭐라도 쓸 수 있겠다 싶었는데. 지금 날씨는 얄궂게도 그저 쨍쨍해. 오전에 소나기가 내려 비 구경하기에 딱 좋은 카페에 부러 찾아온 걸음이 허무하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카페는 3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는데, 특히 2층은 층고도 높고 사방이 통유리라 전망이 꽤 좋아. 어찌나 탁 트였는지, 대부분 카페에 있는 흰 블라인드도 과감히 생략했어. 덕분에 올봄에는 햇빛이 직구로 내리쬐는 시간에도 불필요한 광합성을 즐기곤 했어.


하지만 여름이 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지. 특히나 오늘 같이 쨍한 날엔 이 얄짤 없는 통유리가 매우 부담스러워. 앞뒤 좌우로 맞닥뜨리게 되는 햇빛의 온기는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도 속수무책이야. 그러니 이 카페의 창가는 차라리 비 오는 날에 특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얼마나 시원하게 비를 볼 수 있을까, 기대하며 ‘장마’에 대해 글을 쓰기에 딱 적합한 곳 말야.


그래서 지금의 날씨가 어떻든 관계없이 이 곳에 찾아왔어. 물론 우산은 챙겨 나왔지, 혹시나 해서. 아침에 갑자기 비가 내렸고, 일기예보를 못 믿는 만큼 지금의 맑은 하늘도 그닥 신뢰하지 않거든.




이렇듯 날씨는 종잡을  없지만 기후라는 틀이 정해져 있어 그나마 다행인지도 몰라. 덕분에 우리는 매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올  알고 있잖아.


   피할  없이 찾아오는 어떤 기간. 혹시가 역시가 되고, 미리 대비해야 하는 몸과 마음. 집에 있으면 마냥 행복한데 약속이라도 잡히면  젖을 발이 나가기 전부터 찝찝한 날들.  우산을 챙겨야 하는 시기인 동시에, 그마저도 신발장 앞에서 장우산과 3 우산  고민깨나 하게 만드는  까다롭고도 번거로운 기간인 장마.


매년 이렇게 장마가 찾아오는데 완벽한 대비는 할 수 없는 건 어째서일까.


작년 여름 폭우가 쏟아졌을 때 어김없이 범람으로 인한 피해 기사들이 쏟아졌어. 퍼붓는 비에 시원하게 마음이 뚫렸다가도, 현실로 돌아와 허탈함으로 가득 찼던 기억이 나. 대책은 추후 금세 세워졌지만 소 잃고 고쳐진 외양간만 하나 더 늘어난 듯했어.


균열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시기인 걸까. ‘혹시’라는 마음의 총합이 부족했던 걸까. 방금 창 밖을 보니 우산을 쓴 아주머니가 잰걸음으로 지나가네. 또 비가 오나 봐.



관련 영화: <언어의 정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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