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21화 [장마] by 선장
주간 <시선> 스물한 번째 주제는 '장마'입니다.
색시야, 우리가 이 주제를 정했을 때에는 작년 장마 초입이었지. 내리는 비를 보면 뭐라도 쓸 수 있겠다 싶었는데. 지금 날씨는 얄궂게도 그저 쨍쨍해. 오전에 소나기가 내려 비 구경하기에 딱 좋은 카페에 부러 찾아온 걸음이 허무하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카페는 3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는데, 특히 2층은 층고도 높고 사방이 통유리라 전망이 꽤 좋아. 어찌나 탁 트였는지, 대부분 카페에 있는 흰 블라인드도 과감히 생략했어. 덕분에 올봄에는 햇빛이 직구로 내리쬐는 시간에도 불필요한 광합성을 즐기곤 했어.
하지만 여름이 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지. 특히나 오늘 같이 쨍한 날엔 이 얄짤 없는 통유리가 매우 부담스러워. 앞뒤 좌우로 맞닥뜨리게 되는 햇빛의 온기는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도 속수무책이야. 그러니 이 카페의 창가는 차라리 비 오는 날에 특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얼마나 시원하게 비를 볼 수 있을까, 기대하며 ‘장마’에 대해 글을 쓰기에 딱 적합한 곳 말야.
그래서 지금의 날씨가 어떻든 관계없이 이 곳에 찾아왔어. 물론 우산은 챙겨 나왔지, 혹시나 해서. 아침에 갑자기 비가 내렸고, 일기예보를 못 믿는 만큼 지금의 맑은 하늘도 그닥 신뢰하지 않거든.
이렇듯 날씨는 종잡을 수 없지만 기후라는 틀이 정해져 있어 그나마 다행인지도 몰라. 덕분에 우리는 매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올 걸 알고 있잖아.
일 년 중 피할 수 없이 찾아오는 어떤 기간. 혹시가 역시가 되고, 미리 대비해야 하는 몸과 마음. 집에 있으면 마냥 행복한데 약속이라도 잡히면 곧 젖을 발이 나가기 전부터 찝찝한 날들. 늘 우산을 챙겨야 하는 시기인 동시에, 그마저도 신발장 앞에서 장우산과 3단 우산 중 고민깨나 하게 만드는 참 까다롭고도 번거로운 기간인 장마.
매년 이렇게 장마가 찾아오는데 완벽한 대비는 할 수 없는 건 어째서일까.
작년 여름 폭우가 쏟아졌을 때 어김없이 범람으로 인한 피해 기사들이 쏟아졌어. 퍼붓는 비에 시원하게 마음이 뚫렸다가도, 현실로 돌아와 허탈함으로 가득 찼던 기억이 나. 대책은 추후 금세 세워졌지만 소 잃고 고쳐진 외양간만 하나 더 늘어난 듯했어.
균열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시기인 걸까. ‘혹시’라는 마음의 총합이 부족했던 걸까. 방금 창 밖을 보니 우산을 쓴 아주머니가 잰걸음으로 지나가네. 또 비가 오나 봐.
관련 영화: <언어의 정원>,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