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말 1. <망원동 브라더스>
주변의 많은 사람이 다 지면서 살고 있다. 지면서도 산다. 어쩌면 그게 삶의 숭고함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루저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이 원하는 만화를 그리지 못하고, 학습만화를 그려야만 간신히 백수를 벗어날 수 있는 오영준. 그의 주위엔 하나같이 별 볼 일 없는 사람뿐이다. 20대 만년 고시생 ‘삼척동자’, 별 능력 없는 40대 기러기 아빠 ‘김 부장’, 예전엔 잘 나갔지만 황혼이혼을 당하고, 쓸쓸히 잊혀 간 ‘싸부님’까지.
‘지다’. 참 슬픈 말이다. ‘승리’만을 갈구하는 세상에서 진다니... 비기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한 번쯤은 져도 괜찮은데 매일 진다. 계속 진다. 이젠 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내 삶의 사전에 ‘승리’라는 단어를 누군가가 삭제해버린 것만 같다.
더 비참한 사실이 있다. ‘지면서도 산다’는 것. 오늘 져도 내일 또 살아가야 한다. 그게 고달프다. 그 사실이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거꾸러진다. 그렇지만 작가는 그것을 감히 ‘삶의 숭고함’이라 표현한다. 숭고하다고? ‘숭고함’에 다른 뜻이라도 있는 것일까.
곰곰이 소설의 인물들을 다시금 머릿속에 그려보니, 고개가 끄덕인다. 세상은 루저로 이름 붙일지라도,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각박한 세상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좁은 옥탑방에서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기쁜 일이라도 있으면 가족보다도 더 신나게 축하해 주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픈 속내를 같이 들어주고, 아파했다. 즉, 이들은 지더라도 혼자 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 넓은 세상에 나 혼자만 진다면 피눈물 흘릴 텐데, 옆에 누군가도 지고 있다. 참 다행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지더라도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내 옆에서 지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와 함께 삶의 숭고함을 말하는 것이다. 조금 더 버텨보겠다고 함께 소리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지면서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줄기 소망과 함께. ‘그래도 한 번은 이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