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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Nov 20. 2024

내 삶과 육아의 라그랑주 점

발도르프와 어린이집 현실 고민

보육을 외주 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번뇌의 굴레 속에 갇혔다.

육아는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만
육아를 외주 주고선 더욱
될 대로 돼라 식이 되어버렸다.

무염에 채소 찜 먹던 입맛이
7세 기준 단짠으로 맞춰져도
하루 한 끼 해결되어 감사해할 수밖에 없고

열탕 소독에 손 씻기 열심히 해주고
모유수유를 2년 가까이 계속하고 있는데도
면역실험실인 어린이집에서 옮아온 감기를 달고 산다.
항생제를 덜 처방해 주는 병원을 찾은 것에 만족해하다
그마저도 오늘처럼 밤샘 고열에 시달릴 때는
밤샘 자책으로 내 마음도 고열이다.

보육 외주를 주어서 이 고생을 시키나.
ㅡ누가 키우든 나보단 나을 거야.

어린이집 그냥 보내지 말까.
ㅡ어떤 선생님과 있더라도 나랑 계속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나보다 요릴 잘할 거고.

내가 더 안전하게 돌볼 수 있잖아.
다치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고 왜 어디를 다쳤는지 알 수 있을 뿐이지.

그래도 덜 다쳐오고 덜 옮아올 거잖아.
ㅡ그럼 난 언제 누가 돌봐줘? 나도 쉴 시간이 필요한데..

다들 그렇게 살아..
ㅡ힘들 때마다 멀리 계신 부모님과 가족이 그립다가는 서운해지고 야속해지기도 해. 없는 셈 사는데도 이렇게 도움받을 곳 하나 없이 평생 아이 양육에 자기까지 셀프로 돌보며 사는 거야 다들? 대단하다 진짜 어른들..




이사 갈 곳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있다. 지역맘카페 등업 기준은 종일 폰 볼 새 없는 내게는 너무나 가혹하여 그림의 떡. 아는 이가 없어 물어볼 곳도 없이 한 주간 멀리 직접 오가며 발품을 팔았다. 방문 상담을 하다가 온 목감기로 목소리가 안 나오다 아프다 말다 한지가 거의 한 달 째다.

어딜 보내도 나보단 나을 거야. 

이렇게 막 먹이고 막 키우면서 뭘 그렇게 까다롭게 고 있어? 어린이집 보내고 세세하게 따지고 비교할 시간에 네가 데리고 있던가.

좋은 덴 대기가 길어 그림의 떡인데 꼼꼼히 알아봐서 뭐 하나? 한 자녀 맞벌이 점수로 언감생심 어딜 좋은데 보내겠다고? 어차피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민간 보내야 할 것을 뭘. 시립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더만.

고민하느라 오늘을 그만 허비하고 그냥 아이와의 오늘을 살아.

좋은데 보낸다고 멀리 차 태워 보내고는 내내 몸마음 힘들어해 봐서 알면서. 그냥 네 품 밖에선 잘 클 것이야.

발도르프 돈 없어 못 보내. 발도르프 지향 일반 어린이집은 이도저도 아닌 철학 없는 흉내내기인 것 같아 맘에 안 들어.

아싸리 모두가 가는 불행의 을 따라 열심히 시키는 프로그램 과다에 화려한 행사 일색의 큰 사립 보내고 말지 그래?


7세에 학교 적응 프로그램으로 학교처럼 앉혀놓고 한글 떼게 하는 게 맞아? 완전 내가 공부한 발도르프랑 거꾸로인데?

그거 이상이야.


현실이 이상한 게 아니고?

이상한 현실에서 벗어나서 정상으로 살려고 하면 돈이 있어야지. 어디서 가난한 사랑 노랠 부르고 앉았니. 그 공부실천모임 때려치워. 너랑 안 맞아. 학군지에서 발도르프 실천하는 거랑 너처럼 비학군지에서 너랑 같은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 찾다 지치는 거랑.. 달라. 왜 가보지도 않고 비주류의 교육을 게 하려고 해? 휘둘리지 않는 신념도 있어야지만 돈이 있어야지. 돈 없이도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건.. 적어도 배우자랑 둘은 같은 꿈을 꿔야 가능하지. 혼자서 안 돼.


그래서 절망하고 목소리를 잃었던 것 같아..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그 사람이 아이가 즐겨 부르던 발도르프 노래를 열심히 매일 기타로 연주하며 불러주더라? 그날부터 목소리가 깨끗하게 나왔어. 가닿았잖아. 아이가 진짜 좋아하거든 그 가을 노래를.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에 꿈꾸는 게 괴롭고 분열증이 올 것 같았는데. 진짜 우울하고 무의미해지고 돌아버릴 것 같았는데. 밑이 완전히 없는 독에 물을 긷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적어도 난 심지가 굳은 사람이 아니라. 어려워.
내가 공교육에서 불행했으니까 아팠으니까 그런 이들을 오래 봐왔으니까 내 아이에게 같은 길을 그냥 남들 다 가니까 가라고 할 수 없어. 그래서 뭐라도 해보려던 내 노력이 부질없게 혹은 현실을 더 복잡하고 날 예민하게 만드는 것 같아 괴로워.

아이가 아플 땐 모든 게 나 때문에 잘못된 느낌을 받아. 오늘은 데리고 있어야 나아질 것 같았는데 보챔에 힘들어 그냥 원에 보내버린 날엔 여지없이 이렇게 아이가 심하게 아파. 아이에 대한 내 감은 생각보다 꽤  정확하고 그 감에 따른 선택을 지속해서 실행할 의지는 언제나 부족해. 그 의지는 배우자의 동조와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력에서 나와. 이 망망대해 같은 육아와 삶의 방항을 정해줄 나침반을 찾아 가리켜도 손가락만 보며 요지부동인 모래 위 배를 이끄는 무력한 선장이 된 것 같달까.

아이가 고 넓은 원에 갑작스레 가게 된 지 어느덧 5개월째야. 아이가 태어난 이후론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괴로웠던 시간들이었어. 잠깐의 몸의 자유는 카페인처럼 달콤했지만 그 전후로 나와 아이는 정말 더 건강해졌을까?

식수면습관이 잘 잡히고 수유 횟수도 줄고 도움 많이 받았지 뭐.


낸 돈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던지라 낮잠까지 자고 정상하원하며 좀 오래 보내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또 이렇게. 나를 멈춰 서서 배우게 하네.

시설, 프로그램, 친환경 식자재 다 상관없이 선생님 하나만 보고 가까운 단지 안으로 옮기기로 했어. 그것도 대기를 좀 해야 하긴 하지만 우리 셋 다 좋아하는 곳으로 결정하는 데 너무 고민 안 하려고. 차 오래 안 타고 즐겁게 다니며 잘 먹고 잘 자면 그만이야.

참 더디 가는 겨을. (래, 가을 같은 겨울이라 겨을이 맞겠다.)
흔들리는 11월.
나는 어떤 삶을 살고픈가?
나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은?
내년 겨울에 우린 새 보금자리에서 어떤 모습일까?
무엇을 선택했든 그 안에서 적응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겠지?

일을 1년 더 쉬기로 하고서
쉼의 무게가 꽤나 된다.
사명감마저 드는데
집안일과 양육과 자기 돌봄의 달인이 되는 길은
더디 간다.
자주 내가 한심하고 우울하며 무기력하다.
그래도 이 마더후드ㅡ엄마로서의 삶을 한 해 잘 닦아놓아야 일을 다시 시작해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 거라 믿어 결정했고, 후회하지 않고 싶다.

죽음이 예비된 오징어 게임을 하러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게 내게는 그렇게나 비장해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더 오래 멈춰 서기로 한 나는 정말로 이 게임을 끝내고 싶은 걸까?

불덩이 같은 아이의 열이 오늘은 내릴 거야. 폐렴으로 가는 일은 없을 거야, 입원하는 일도. 그렇게 기도하며. 다가오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반십년만에 단둘이 위키드 영화나 보려 했던 나의 야심을 반성하며. 이 비루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는 이들의 평안을 바라고 또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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