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율 Nov 22. 2024

밤의 나, 낮의 나

분열하는 엄마, 오늘의 아이

아침을 깨우는 아이의 울음. 내 모든 욕구해결을 뒤로하고 시작하는 아이의 아침 준비와 오늘의 내게 미뤄둔 집안일. 목과 온몸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통증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삐삐-

전자레인지 음이 울리면 두렵다. 

데우면 뭘 하나.. 이번에도 안 먹겠지..?

식을 걸 예상해 더 뜨겁게 데운 날은 이상하게도  빨리 먹으려고 자리에 앉아서 급히 냉동실에 넣었다 빼거나 차가운 물에 담그기도 한다. 대부분 아이가 먹고 싶어 할 때까지, 모닝똥을 하고 기분 좋게 먹을 타이밍을 차분히 기다린다.


열이 나고 아픈 아이는 짜증이 많다. 맘대로 안되면 안 하던 때리는 행동까지 한다. 얼굴과 눈을 맞고는 마음이 상해 설거지더미로 간다. 울음소리를 못 들은 척 그릇을 닦아낸다.


하아.. 얼른 나아서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다.

이것의 낮의 나. 낮의 엄마 마음이다. 아이에게 화내거나 지치는 나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못난 마음.


열이 내리고 아이의 웃음이 돌아왔다. 엄마의 걱정이 내려가면 엄마의 얼굴에서 불안이 읽히지 않으니 아이도 마음을 놓는 게 보인다. 아이가 아플 때 보챔이 많아지는 것은 엄마의 두려움과 그로 인해 날 선 엄마의 기분을 흡수해서도 있다. 집안일을 뒤로하고 아이와 놀기도 하고, 집안일을 끝까지 해내며 아이의 울음에 한 템포 늦게 반응하되 충분히 안아주고 놀아주면 또 기분이 금세 좋아지기도 한다.


이틀을 젖만 먹은 아이. 거의 굶었다.


"계란 먹을까?"

"응!!"


나는 아이에게 뭘 먹여야겠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종일 집안일을 하며 아이와 놀아주었다. 마치 밥 차려주는 일을 잊은 사람처럼. 그랬더니 아이가 첨으로 먼저 먹자고 했다. 아이가 대답을 하고 나서도 하던 빨래 개기를 계속하며 바로 밥을 주지 않는 엄마에게 아이가 "빨리! 빨리!!" 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모든 식습관 문제는 며칠 굶기면 된다더니.. 열감기 때문에 식음을 이틀 전폐한 아이는 그냥 밥에 삶은 달걀, 묵은 백김치와 해동한 쇠고기뭇국만 주었는데도 잘.. 먹는다. 아프기 전에는 같은 음식을 매번 주거나 데워준 음식은 잘 먹지 않았다. 특히나 밥은 어떻게 줘도 잘 안 먹었다. 김밥으로 먹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스스로 밥을 집어 먹고 있다!!! 시장이 반찬이구나! 더구나 놀라웠던 건 아이의 예쁜 태도였다. 주는 숟가락이 늘 거절 당해 손이 부끄럽고 맘이 상했는데, 오늘은 주는 대로 예쁘게 받아먹고 "또!" "국" "물" 하며 자기 의사를 분명하고 예의 바르게 표현한다. (21개월..) 이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식사 시간이라니!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먹이느라 지쳐 치울 힘이 남아있질 않았는데 미련 없이 아이가 남긴 음식을 다 버리고 치웠다. 내 입으로 버리던 음식들은 이제 뒤도 안 돌아보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었다. 아이가 다 먹은 표시를 하자 짧고 굵은 식사는 끝났고, 식탁은 금세 다시 깨끗해졌다. 마음이 환해졌다.


설거지를 하는데 아이가 젖을 찾는다. 사르르 눈을 감는다. 졸리는구나. 약기운에 4시간마다 졸려하고 낮잠도 4시간이나 잤는데도 7시도 안 되어 저녁잠이 든다. 작은 소리에도 깨어 울던 아이가 백색소음 없이도 소리를 내어도 잘 잔다. 약기운이 아니라 아이의 잠이 성장한 거라고 믿고 싶다. 두려움 없이 변기를 내리는, 머리를 말리는, 영상을 소리를 켜고 보는 그 희열! 아.. 집에서 긴장 없는 저녁을 보내본 게 거의 2년 만이다. 여보, 우리 참 고생했다..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건강한 배달음식을 거나하게 먹으며 우리는 그렇게 얘기했다. 아이가 잘 먹고 잘 자주는 게 이렇게나 감사할 일이었다.


품에서 잠거부나 잠투정도 없이 자기가 원하는 때에 잠에 드는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그래, 이게 맞지. 이렇게 자기 리듬대로 먹고 자야 할 나이지. 정해진 시간에 먹고 자고 깨며 '박자 생활'을 할 나이가 아니지. 집에서 자연스러운 자기 생체 리듬에 맞는 '리듬 생활'을 규칙적으로 해야 할 나이가 맞지.

 

'내년에 원에 안 보내고 가정보육을 해볼까?'

'밤의 나'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얘기한다.

'낮의 나'가 말린다.

"가정 보육 하려면 적어도 두 명이 필요해. 가까이서 도와줄 사람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해."

옆에서 신랑도 현실적인 얘길 하며 거든다.

"원에 안보내면 킵되는 돈이 얼마야?"

"10만 원."

"가정보육하게 되면 그보다 훨씬 더 드는데. 득 될 게 없겠구나. 가끔씩 이용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보내는 게 맞는... 거지?"


아이를 가까이에서 자기만의 리듬대로 너무 일찍이 너무 많은 병원체에 노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키우며 엄마와의 애착 관계를 공고히 하기에 가정 보육은 더없이 좋다. 다만 음식을 해 줄 사람, 혹은 적어도 어린이집에서 먹고 오는 한 끼를 사 먹을 수 있는 경제적인 지원만 된다면, 아주 가끔 너무 힘든 날 시간제보육을 맡길 수만 있다면, 가끔 마음 맞는 이 단 한 명과 공동육아를 할 수만 있다면..


이왕 적응한 거 계속 보내고 아이 컨디션을 잘 살펴서 남는 시간에 아이를 위한 집안 환경과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족을 향한 사랑의 에너지로 흘러갈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더 깊이 교감하며 충분히 놀아주자.


겨울에 보내면 계속 감기를 달고 살 텐데, 이렇게 한 번 아프면 온 가족이 너무나 힘들다. 그런데 아이 옷이 부쩍 짧아졌다. 아프면서 큰다는 말, 한 번 아프고 나면 쑥 크다는 어른들 말씀이 정말인걸가? 짧아진 소매를 보며 생각했다. 크려고 그랬구나.


지난했던 고열의 이틀이 지나간다. 또다시 찾아올 것 같아 다시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가정보육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밤의 나. 그러나 아침이 오면 지친 나는 몸에 익은 대로 아이 어린이집 가방에 필요한 준비물을 보험처럼 챙기며 하루를 연다.


밤과 낮, 낮과 밤의 나..  팽팽한 신경전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아를 하며 내 안의 지킬과 하이드가 시끄럽게 싸워대는 걸 듣는 게 일상이지만 분열하지 않겠다. 오늘의 아이가 늘 정답을 알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삶과 육아의 라그랑주 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