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척이 끝났다
모르는 척해왔다.
아이의 체중이 100분위에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모르는 척했다.
아이의 치아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빨리 많이 났음에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아이가 젖을 물고 잠들어서 깰 때마다 젖을 찾느라 잠을 잘 못 자고 있음에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고
딴엔 밤수유를 끊어보려고 애를 썼다고 말하고 싶은 변명을 우선 넣어두고.
더 이상 모르는 척할 수 없었던 건
새 해가 되었기 때문일 수도
약속한 두 돌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제였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새벽녘 깬 아이의 옷을 만져보고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생각했다.
많이 마신 탓에 많이 싸느라 기저귀가 새서 위아래 옷이 다 젖은 아이와,
아이가 깰 때마다 함께 깨어서 잠기운에 얼른 재우기 위해 또다시 젖을 들이밀고 있는 나의 안일함.
아이의 잠깐 울음을 참지 못해 6개월부터 22개월까지 16개월간이나 밤수유를 지속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모유수유의 자부심과 행복감이 늘 공존하고 있었다.
모유수유 덕분에 아이와 내 정서가 안정적이고 연결감, 애착이 높다고 자부했으나,
아빠와의 연결이 그만큼 끊어지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내가 그의 자리를 남겨주지 않고 아이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재접근기 아이의 할큄에 곳곳에 상처가 난 그의 당혹감,
그래서 나의 단유를 돕고자 대신 재우기 어려웠던 상황들.
어린이집의 도움으로 수유 횟수는 줄일 수 있었지만
여전히 낮잠을 자고 일어날 때 자기 얼굴을 긁는다는 건
잠자는 전후 엄마의 젖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밤수유만 끊고 단유는 더 천천히 하고 싶었다.
소아과에서 두 번째 불소도포를 하고 오면서
사탕 계속 주면서 보험 삼아 바로 양치시키고 불소도포해 주는 꼴인,
병을 주고 있으면서 약도 아닌 영양제 정도를 주고 있는 꼴인 내 모습을 자각했다.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실리콘 패치.
아이는 이미 많이 자라서 '토끼가 이미 다 먹어서 없어~'란 말들은 통하지 않았다.
예전에 한 번 시도해 보니 바로 없어진 줄 알고 빠르게 단념하는 모습을 보여서
'뭐야, 이렇게 쉽게? 그럼 아껴둬야지. 진짜 단유 할 때.'
그렇게 넣어뒀는데.
드디어.
때가 왔다.
"요리 잘 못해주는 미 안 함 때문에 더 오래 모유수유하는 거 아니야?"
그래. 맞아. 엄마가 좋자고 오래 하는 거 맞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정말로 나는.
아이가 원할 때까지 줄 수 있는 건 주고 싶었고,
감사하게도 줄 수 있었기에 계속 줬던 거고,
수유하는 동안 스킨십을 통해 얼마나 서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지는,
세상에 온통 둘 뿐이고 완전히 안전하고 따뜻한 세상 속에 존재하는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가 따뜻하고 잘 웃는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을 잘하며 엄마를 항상 챙겨주는 모습에
매일매일 놀랍도록 사랑스럽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다.
오늘도 졸리면 엄마젖을 찾는 아가.
패치를 붙였다.
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처음 뱉은 한마디.
"엄마 아야."
그리고 "호-"해준다.
반대쪽도 본다.
"엄마 아야."
"호-"
자기 맘마가 사라진 슬픔보다
엄마가 아픈 걸 먼저 걱정해 주는
우리 22개월 딸..
나는 네 그 마음이 예뻐선지
단유를 앞두고 뾰족해져서 아빠에게 날 선 말들을 뱉어낸 후여서인지
슬퍼서인지 감동해서인지 속상해서인지
자꾸만 눈물이 났는데
너는 되려 울지 않고 단유를, 단념을 했다.
네가 엄마보다 낫다.
풀 죽은 너를 아빠가 안아줄까? 하니 천천히 안겨 금세 잠이든 너.
아가, 예뻐라. 너는 어쩜 이리 아름다운 아이로 우리에게 와주었니?
이 부족한 엄마에게,
이토록 철없는 엄마에게,
이렇게 큰 네가 와주어서 정말 고맙다.
우리, 슬프지만은 않게, 보내주자.
엄마가 더 오래 안아줄게.
진짜로 안녕한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