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공항가는 길의 설렘도 잠시, 이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며 누구보다 빠르게 우울해지는 것. 그래서 어쩐지 시작도 마지막도 미적지근 하기만 했던 기억이 많은데, 그래도 딱 한번. 끝의 마지막을 찬란하게 장식했던 때가 있었다.
2011년 2월부터 6월까지.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라는 곳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했다. 이미 처음부터 마지막이 정해져 있었기에 여행과 비슷했고, 그리하여 처음부터 미리 우울해 하는 기간도 길었다. 하지만 다행인것은 보통의 여행보다는 마지막까지 꽤나 긴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여행을 할 때보단 좀더 온전하게 이방인다움을 즐길 수 있었다.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별이 정해진 친구사이는 어쩐지 더 애틋했고, 그래서 더 급속하게 친밀해졌으며, 놀라울정도로 다정하였다. 매일매일이 아쉬워 조금이라도 자주 만나 차를 마시고 같이 노래부르며 밤새 대화를 나눴다. 진정으로 행복하기만 한 시간이었다.
그 끝의 마지막 밤. 탈수 상태 직전까지 밤새 울었다. 이같은 행복을 앞으론 다시 누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형언할 수 없는 아쉬움의 눈물이었고, 동시에 이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우리의 마지막 밤은 특별할 것 없었다. 매일 그래왔듯이 친구 P의 406호 기숙사 방에 모여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고, 맥주를 한 캔씩 들고 왁자지껄 밤 거리를 걷다가 가까운 가라오케 펍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오아시스나 블러, 콜드플레이 등 우리와 매일밤 함께 했던 곡들이었고. 마지막 곡으로 Don’t look back in anger 를 떼창하며 울었다. 기숙사로 돌아와 계단에 모여 앉아 다시 시시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추억을 되새김질하다가 해 뜨는 모양을 구경했고 내 비행기 시간에 맞춰 다같이 새벽 일찍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마지막 인사말은 부끄럽지만 내가 알려준 어느 한국 욕이었다. 서로 각자 나라의 욕을 하나씩 공유했었는데 어떤 욕설은 또 다른 나라에선 다른 의미의 단어와 비슷했고, 그저 발음이 웃겨서 밈처럼 사용한 단어들도 있었다. 친구들은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 우스운 표정으로 내게 욕을 했다. 나도 똑같이 욕을 해주었다. 끝까지 장난가득했던, 잊을 수 없이 행복한 마지막이었다.
마지막은 마지막이 맞다. 새로운 시작이니 또다른 챕터가 열리느니 하는 수사들은 당사자에겐 당장은 공허한 메시지일 뿐이다. 그가 몸담았던 어떤 연속성이 영속성을 다해 끝나는 것이고, 그에겐 그저 철저한 끝이다. 하지만 마지막을 끝낸 사람으로서 조금의 욕심을 부려본다면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만은 끝이아닌 새로운 처음이 시작되길 바란다. 비록 나는 없을지언정 그들이 맞이할 끝 이후의 시작에는 또다른 행복이 가득하기를. 성대한 마지막을 함께 배웅해준 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디 그들의 다음 장은 나 없이도 행복만 하기를. 그런 마음으로 웃고 울면서 나 없을 그들의 마지막 이후시작을 응원했던. 끝의 마지막 밤이 있었다.
그런 밤이 있어 내가 딴 사람이 된 것 같은 밤 제일 환한 불꽃이 되어 춤추다 마치 꿈인 듯이 흔적 없이 사라진다면 다 완벽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