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한번도 허락된 적 없었던. 저 사람이 가진 저 예쁜 것을 없애주세요”라고 할 수도 있다.
이것도 아니면 자기파괴적인 상상도 가능하다.
“이미 영원할 수 없어 끝이 정해져 있는, 내가 가진 이 행복을 없애주세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쪽이 되었건 나에게 ‘없앤다’는 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그 어떤 것을 대상으로 하는 행위가 될 것같다. 이 마음은 나로서도 조금은 의아한 괴팍한 심리인데, 쉽게 싫증을 내 버리는 변덕스러움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보다 비교적 더 빨리 타올랐다가 쉽게 사그라지는 불나방같은 성질의 좋아함을 몇차례 반복하며 인이 박힌 버릇일 수도 있다. (금사빠라는 걸 괜히 어렵게 이야기하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이든, 선택이든, 사람이든, 대상이든 비로소 없애야만 제대로 사랑한 기분이다. 크게 타올랐던 모닥불 아래 곱게 쌓여있는 잿더미처럼,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사랑한 뒤 내 의지로 없애고 말아야만 “아, 잘 사랑했다” 라고 만족하는 것이다. 시작도 내가 했으니 치열하게 사랑했던 그 시간을 끝내는 것도 바로 나자신. 내 딴에는 더 완결된 형태의 사랑을 하는 것이라 위안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보통 어른의 세계에서 많은 ‘사건(일어남, 해프닝, 프로젝트, 돈벌이)’의 시작은 별안간 통보되게 마련이고(“아직 6시 전인데 이 보고서좀 작성해주세요.”, “다들 퇴근하고 맥주한 잔 하러 가지!”,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올해 우리 팀의 뉴 프로젝트는 이겁니다”, “귀하의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또 부지불식간에 끝나버린다(“예산 삭감으로 더이상의 진행은 어렵게 됐습니다.”, “안타깝게도 한정된 채용 규모로 어쩌고저쩌고”, “다들 이만 퇴근 하지!”, “무료 체험 기간이 만료되어 어쩌고저쩌고”). 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내가 어찌 손 쓸 수 없는 그런 것들 투성이인 어른의 세계.
유일하게 오롯이 내 힘으로 처음의 시작과 마지막의 끝을 제어할 수 있는 건 사랑. 오직 내가 하는 사랑 뿐이다.
2022년 봄, 나는 내 스스로 새로운 ‘시작’을 했다. 그것은 내 안의 어떤 것을 살아내보려는 노력이었고, 이를 가능하게 한 유일한 동력은 역시 사랑이었다. (*연애 이야기 아님) 새로운 시작을 했다는 건, 나 스스로의 힘으로 그 이전 사랑을 끝냈다는 의미와 같다. 나는 늘 따뜻한 불, 영원한 꿈, 영혼과 삶을 모아 함께 노래하는 그 어떤 것을 살아내보려 하였다. 어쩌면 이번 시작의 모양도 이전의 시작과 많이 닮아있을지 모른다. 다만 시작이라는 것이 늘 그러하듯, 일상이 되고 권태가 되면 고통이라는 감정이 나 자신과 순수했던 시작의 모양을 이지러뜨린다. 안타깝지만 늘 그러하다. 잘 사포질해서 처음 모양 비슷하게 흉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딴에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닌 것같다. 내 손으로 깨 부셔야 사랑이 완성되고,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이전 시작이 그러했듯 이번 시작도 어떤 모양의 끝, 어떤 형태의 사라짐이 될 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전 시작에서 비롯된 오래된 고통은 없다. 새로운 고통이 또 생겨날 것이 너무나 분명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일단은 적어도 더이상, 이미 죽은 사랑은 아니니까.
“우리만의 따뜻한 불, 영원한 꿈, 영혼과 삶 난 오늘 떠날 거라 생각을 했어 날 미워하지 마
No pain, no fail, 음악 없는 세상 Nowhere, no fear, 바다 같은 색깔 No cap, no cry, 이미 죽은 사람 아냐, 사실 - 실리카겔의 NO P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