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이 전망대로 올라가는 입장권을 끊었다. 그러나 아뿔싸. 내가 높은 곳엔 쥐약이었단 걸 잠시 망각했다. 지상 100미터가 넘는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며 난 내 한계를 시험했다. 현기증이 심했지만, 결국 전망대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 날 괴롭혔던 고소공포증을 마침내 조금은 극복한 것 같았다.
고소공포증은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와 함께였다. 운동장의 정글짐은 내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이들은 정글짐을 가지고 다양한 놀이를 개발해 재미나게 놀았다. 놀이의 핵심은 언제나 ‘누가 먼저 꼭대기에 올라가나’였다. 하지만 난 한 번도 그 놀이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꼭대기 바로 아래 칸까지 갔던 게 최고 기록이다. 더 이상 올라갔다간 바로 땅바닥에 고꾸라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정글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단지 고소공포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글짐의 꼭대기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정글짐은 약속이라도 한 듯, 꼭대기는 늘 한자리 뿐이었다. 따라서 친구들의 놀이에서 승자도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닭 쫓던 개 신세가 돼야 했다. 그건 너무 가혹하다 생각했다. 제대로 발을 디디기도 힘들고, 겨울철엔 차가워 손에 쥐기도 쉽지 않은데. 미끄러져 떨어져도 받아줄 보호 장치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애들은 기를 쓰고 올랐고 꼭대기는 단 한 명의 차지였다. 그래서인지 꼭대기 자리는 늘 외로워 보였다. 처음엔 애들을 약 올리며 승리감에 도취되었던 최후의 1인도 혼자 멀뚱히 앉아 있다가 머쓱해져서는 다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곤 했다.
그래도 난 나만의 방식으로 정글짐을 즐겼다. 친구들과 함께 밑에서 두 번째 층 즈음에 앉아 주전부리를 나눠먹으며 운동장 너머를 구경했다. 무섭지도 않았고, 외롭지도 않았다. 꼭대기 칸을 바라보고 올라가는 애들은 그런 우리를 멍청하다 했다. 개의치 않았다. 정글짐이 오직 꼭대기만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라 믿었으니까.
주말에 오랜만에 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았다. 어릴 적 그토록 높아 보였던 정글짐이 겨우 요만했다니. 그네에 몸을 싣고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운동장을 구경했다. 모든 게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없었다. 하긴, 날씨가 상당히 춥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하는 찰나 교문 너머 한 무리의 아이들이 지나갔다. 등 뒤엔 하나같이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 곁엔 그보다 조금 더 큰 학생들이 발을 질질 끌며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단 하나의 1등 자리를 위해,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운동장의 정글짐이 작게 느껴졌던 건, 키가 더 자라 서가 아니라 이것보다 훨씬 더 큰 정글짐에 익숙해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꼭대기를 정복해 왔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은 그게 끝이 아니라 했다. 승리감을 혹은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방금 여기 있던 꼭대기는 어느새 저만치 위에 있었다. 자꾸만 더 높아졌다. 여기에도 떨어지면 받아줄 보호 장치는 없었다. 차라리 어린 시절의 정글짐이 나았다. 적어도 거긴 앉아서 쉴 곳은 있었으니까.
이 거대한 정글짐의 보이지 않는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 우리들 아래 손이 작은 아이들과 제 발보다 큰 신발을 신은 동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네가 정점을 찍고 하강한다. 현기증이 난다. 난 고소공포증을 극복한 게 아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