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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나무숲 Apr 24. 2016

고등어와 나

생선 토막 하나에 애정과, 응원과, 세상을

우리집은 고등어와 제일 친하다.


초식 위주의 식단을 추구하던 엄마의 철학 덕분에, 웬만한 일이 아니면 고기를 먹을 일이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 거의 유일한 단백질 공급책은 생선이었다. 그것도 고등어. 학창시절, 가족 모두가 모여 밥을 먹노라면 언제나 메인 반찬은 고등어였다. 구이, 조림, 튀김, 가끔은 찌개까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비릿한 고등어 향이 코를 찌른다면 그건 가족 모두가 귀가 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엄마는 항상 온 가족이 다 밥상앞에 앉았을 때야 비로소 고등어 요리를 내 놓았다. 그리곤 통통하게 살이 찬 제일 큰 생선 토막을 아빠 밥 위에 얹어주었다. 나도 큰 거 먹고싶은데...하고 입을 삐죽거리면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이건 아빠 몫이야~ 너희는 이거 먹어. 이것도 크네, 뭘."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에 그런게 어딨어? 먼저 챙기는 사람이 임자지.

내 몫을 챙기는 것. 그저 손을 뻗기만 하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고등어 구이. 하지만 그마저도 점점 집에서 밥을 먹는 날이 줄어들면서, 고등어를 먹을 일도 거의 없어졌다. 어쩌다  식사시간 맞춰 집에 오는 때가 있긴 했다. 하지만 엄마, 아빠 둘이 식사하는 모습을 뒤로한채 피곤에 절어 그대로 방에 쓰러져 골아떨어지기 일쑤였고, 그건 다시 말해 내가 밥상이 아닌 저 세상에서 내 몫을 챙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제일 큰 생선 토막 하나 못 먹었다고 서운해하던 내가 참으로 순진하게 보일 정도로, 세상에서 몫을 챙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손을 뻗는 것 자체가 녹록치 않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들이 세상에 손을 내밀고 제 몫을 갖겠다며 이리 엉키고 저리 엉켜 있다. 나도 내 몫을 가지려면 남에게 긁히기도 하고 혹은 내가 먼저 남의 손에 상처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하루종일 세상에 손을 담그고 내 몫 챙기려 마구 휘젓고 돌아오면, 손바닥은 물론 내 안 저 어딘가도 거무튀튀한 먼지들이 잔뜩 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어쨌든 모두에게 각자의 몫이 분명 있을텐데, 왜 서로 다투는 것인지? 라는 질문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어휴, 이 탐욕스러운 인간들! 하는 대사로 퇴근길 내 공상은 끝이 나곤 한다. 그리고 매일 인정한다. 어차피 나도 그 중 하나라고.

비누로 몇 번이나 손을 씻어내고 오랜만에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 앉았다. 아빠는 나보다 씻는시간이 좀 더 길었다.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엄마의 고등어 조림이 밥상에 올라왔고, 우리는 모두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이제 모두 어른이 된 지금. 과연 제일 큰 고등어는 누구 몫이 될 것인가! 찰나의 긴장을 깨고, 아빠가 제일 큰 생선 토막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그래, 저건 원래 아빠 몫이니까.
그런데... 고등어가 향하는 방향이 좀 이상했다. 아빠는 내 밥 위에 고등어를 얹어주었다.  
"우리 딸, 오늘도 힘들었지? 많이 먹어."

그때 아빠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참 투박하고, 뭉뚝한 손톱이 조금 길다 싶은, 그리고 겨울 바람에 터서 갈라진 아빠의 손이. 나보다 몇 십년은 더 저 세상에 담그고 계셨을. 우리 가족 갖다 줄 좀 더 큰 거를 찾아 부단히 휘저으셨을. 그리고 지금도 나를 위해 기꺼이 그리 하시는, 아빠의 손이 말이다.


밥상위에 세상이 보이는 듯했던 순간. 보이지 않는 손들을 탐욕 덩어리로만 치부했던 내 손이 너무나 작게 보였던 순간. 내 안에 쌓여있던 검댕이들이 맛있게 졸여진 고등어 한 입과 함께 조금은 씻겨 나간 것 같았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
- 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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