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첫 아이의 출산은 어영부영, 나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아무리 육아서를 읽어도 읽어본 것과 경험한 것은 달랐다. 그래서 출산하면서 진통을 겪으면서 내진을 받아보고 아아이를 낳는 과정은 이런거구나, 아프고 정신없어서 회음부 꼬맬 때 아무 느낌 없다고 했는데, 느낌도 이상하고 따끔하구나, 참 모르는 게 많았단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난 둘째는 잘 낳고 잘 키울 수 있을 줄 알았다. 출산에 대해서는 그래도 잘 아니까 준비를 잘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무서운 것은 매 한가지였지만, 그래도 자신감이 있었다. 육아서도 찾아볼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가 좀처럼 태어날 생각이 없었다. 40주를 꽉 채우고도 며칠이 조금 지났는데 소식이 없어 유도분만을 결정했다. 나는 속골반이 작아서 의사선생님들이 첫째고 둘째고 애 낳기 힘들겠다는 소리를 하셨고, 그래서 둘째 산부인과 선생님도 속골반이 작아 유도분만해도 실패할 수도 있지만, 경산모니까 한 번 도전해보자고 해서 날짜를 잡았다. 이제 생각하면 어디가서 날짜를 좀 받아서 할 걸 그랬나 싶긴 하지만, 그 땐 이미 주수가 꽉 차서 빠른 날짜로 잡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아침에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신랑이랑 둘째를 낳으러 나갔다. 둘째 태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둘만의 시간이었다. 병원 앞 시장구경도 하고 산책도 하고 병원으로 올라갔다. 유도분만 주사를 맞아도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걱정은 되었지만, 그 대신 미리 무통주사 맞을 준비도 하고 여유롭게 아이를 맞을 준비를 해서 좋았다. 그때까지는.
사실 기억의 파편이 여기저기 끊겨있어 자세히 기억은 나진 않다. 먼저 유도분만 주사를 맞고 약도 잘 퍼지고 애도 잘 낳기 위해서 복도로 나가 걸어야 했다. 한 2번 정도 나갔던 것 같은데, 마지막에 참고 걷고 있지만 너무 아파 눈물이 질질 나왔다. 그렇게 울면서 들어오라고 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들어가 애써 미소지으며, 저 배가 너무 아파서요, 라고 하니, 나를 계속 체크하던 간호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산모님, 웃고계신데요?"라고 하였다. 그 간호사가 시력이 조금 좋지 않았는지, 그 모습을 보고 다행히 다른 간호사가 '산모님, 울고 계셨어.'라고 대신 말해주어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늘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극 내향인인 나는 내가 힘든 것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보여주지를 못한다. 힘들 때는 그래도 무표정 정도는 해도 될텐데, 그 조차도 힘껏 입꼬리를 땡겨 올린 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 때의 그 사건은 답답한 내 성격이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웃겨 신랑에게 웃으며 말했던 기억이 있다. 분명한 것은 나 자신에게 큰 충격을 받았단 것이다. 그 때 진통 당시 정말 눈물이 질질 흘러 신랑을 붙들고 힘들어서 못 걷겠다 잘도 징징 거리던 내가 수술실 문이 열리자 쭈구린 허리를 애써 펴서 미소를 지었단 사실이 적잖은 충격적인 사건이다.
다행히 자궁문은 출산이 가능한 만큼 열려있었고 신랑과 함께 가족분만실로 이동했다. 의사선생님이 내려오셨고, 오전에 출산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는 돌아가셨다. 신랑과 나는 그래도 한 번 해봤다고 자궁문이 5센치가 안 된다고 한 거 같은데 아직 낳으려면 멀었다며, 우리끼리 안 될 것 같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 후, 입원 관련해서 필요한 일 처리를 하기 위해서 신랑은 병실로 올라갔고, 나는 혼자서 몇 번의 힘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다시 나타난 의사 선생님께서 아기 머리 보여요, 하고 한번더 힘을 끙, 주고 아기 얼굴이 골반에 꼈다고 말해주었다. 신랑을 호출하고 몇 분정도 아기를 골반에 끼운 채 기다렸다. 그 순간조차 웃기다고 여유를 느낄 만큼의 경산모로 성장했다. 곧 신랑이 도착하고 한 번 더 힘을 끙 주니 아기가 나왔다. 한동안 골반에 끼워두었더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아기를 만나고 또 한 번 내 가슴 위에 아기를 품었다. 익숙하고 따뜻하고 기분좋은 묵직한 느낌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30분 정도 우리는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의료진들도 모두 나가고 우리 셋, 곧 넷이서 만날 우리 가족의 두 번째 만남. 그저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첫째보다 오동통해서 퉁퉁 불은 모습이 못생겼던, 하지만 사랑스러웠던 나의 둘째를 그렇게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