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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Sep 21. 2024

생각하는 대로 사는 신박한 방법
"글쓰기"  

 일기를 10년 정도 쓰고 있다. 

일기를 처음 쓰면서 느꼈던  생각지도 못했던 장점은 글 쓰는 행위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역시 기억하는 것이다. 

어제오늘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희미해지고 휘발되어 날아가 버린다.  

기록하다 보면서 느낀 기억의 특징 중 하나는 그 당시의 감정도 함께 세트로 저장이 된다는 것이다.  

기록을 해둠으로써 그때의 내 마음이나 감정 등을 조금은 더 생생하게 가지고 갈 수 있다. 

바로 이점을 이용해서 글쓰기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바를 향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출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이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일기를 보면 내 10여 년간의 내 마음속 생각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사람들 대부분 자기가 했던 말도 기억하지 못하고 번복하고,  감정은 뜨거웠다 차가웠다를 반복하고 , 

마음은 날씨처럼 변덕스럽다. 

인생을 흔히 수많은 점들이 모여있는 하나의 선처럼 비유하곤 하는데 

일기를 보면 그 어떤 한 시점의 내 마음과 감정을 기록하고 꺼내서 읽을 수 있다. 

흔히들 초심을 잃는다고 하지만 기록해 둠으로써 그 초심을 망각하거나 오염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내 머릿속 보자기로 꽁꽁 싸매서 가지고 갈 수 있다. 물론 마음이야 바뀔 수 있지만 초심을 그대로 보듬은 체 바뀌는 것과 그때의 마음을 망각하고, 사는데 치여 사는 대로 생각해 버리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일기가 내가 힘든 삶 속에서 휩쓸려서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내 생각과 초심을 관철시킬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어주었다. 

깜깜한 저녁 바다에서 조난당해도 나를 이끌어 주는 빛이 있다면 그 방향을 향해서 결국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적어둔다고, 오래 기억한다고, 그 마음을 계속 관철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적어두었지만 결국 또 잊어버리고, 먹고 삶에 차이고 피로에 치이고, 안락함에 결국 굴복하기도 한다.


나는 간호사를 8년을 했고 지금도 119 구급대원으로서 환자를 보고 있다. 

이런 내가 일기에 적어두고 잊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가지고 가고 싶은 소중한 마음이 있다. 


환자에게 친절하자이다. 

어찌 보면 정말 유치해 보이는 내용이고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이 마음을 보듬고서 일하고 여태껏 쭉 달려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적어두지만 반감기가 너무 짧아 금방 그 마음이 절반으로 줄어버리기 때문에 수시로 읽고 다시 다짐하며 끝까지 안고 가기 위해서 아등바등하고 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가장 먼저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환자친절이 1순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학병원은 특히나 환자가 너무 많았고 내가 친절하게 한다는 것은 곧 일이 많이 늦어지는 것을 의미했고, 

결국 함께 일하는 다른 간호사에게 민폐가 된다는 것을 가장 먼저 배우게 되었다. 

응급실은 환자들도 심리적으로 불안하기에 폭언, 욕설, 인격모독은 너무나도 비일비재했고, 

남이 죽아가는 동안에도 나 자신의 고통만을 생각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친절은 개뿔!! 
내가 죽겠다!!


응급실의 고된 환경은 엄청난 중력이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었고,

선배도 친절을 가르치기보다는 빨리 실수 없이 일 처리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결국 친절은 저 멀리 귀양을 보내버렸다.   

 환경에 깔려 그냥 생각을 잃어버리게 된것이다. 


 

친절을 멀리 유배 보냈던 내가 몇 년 후 다시 불러들이게 되었다. 

내가 임상에 겨우 적응을 하려던 차에 어머니께서 큰 병환을 앓게 되셨다. 

어머니 병환을 돌보며 병원 생활을 하면서 보호자의 입장으로 의료진을 볼 수 있었다. 

상냥한 선생님들도 있었지만 병으로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어머니를, 어머니 곁에서 눈물이 마를 새가 없이 지내는 내 마음속을 사정없이 헤집어버리는 병원 스태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환자와 가족의 아픔을 들으려 하지 않고 공감하려 하지 않고, 그저 정해진 일만 하는 의료인들은 마치

공장의 컨베이어벨트를 바라보면 일하듯이 그저 쫓기고 있었다.

환자들은 그저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차례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노력 끝에 일본에서 간호사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2년이라는 준비기간 덕분에 일을 하지 못했고, 다시 간호사로서 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다시 간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전에 

내가 환자의 가족으로서 의료인들을 접했을 때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고, 

간호사로서 내가 했던 가장 큰 과오 환자들에게 불친절했던 나를 반성했다. 

그리고 환자에게 친절하겠다는 마음을 일기에 적어두었다. 


2017년 12월 11일


예전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어머니가 몸 안에 스텐트를 제거하기 위해

처치실로 이동했던 기억이 있다. 

처치받는 어머니를 밖에서 기다리던 나는 눈물샘이 고장이 났고, 

남들이 보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꺼억 꺼억 소리내며 눈물을 흘려보냈다.

어머니는 그 병원의 수많은 환자 중의 한 명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에게 슬픔이고 기쁨이고 아픔이고 온 우주였다. 

내가 매일 접하는 환자도 다른 누군가의 슬픔이고 기쁨이고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자.



이 내용을 읽고 또 읽고 또다시 반성하게 되는 일을 반복했다. 

일본은 서비스업의 나라답게 환자에게 정말로 친절했다.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내 잘 못된 행동들은 선배와 동기들에 의해 많이 교화되고 있었다. 

교화는 되었지만 그렇다고 완벽할 순 없었다. 

나도 모르게 환자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행동하고 생각없이 말해버린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죄송스럽고 나 스스로도 후회되고 괴로웠다. 

그래서 그 내용을 다시 적고 반성했다. 


2018년 10월 29일


어머니가 OO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호사들이 정말 불친절했다. 

XX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간호사를 칭찬하셨었다. 

OO병원에 있을 때는 나도 마음이 문드러져 갔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절대로 그런 

간호사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벌벌 떠는 환자와 가족들의 아픔과 슬픔을 나는 몸소 겪었다. 

다시 일을 시작한 지 몇 년 지났다고, 매일같이 보는 환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다시 일상처럼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버린다.  

하~아

가늠하기 힘든 고통의 한가운데 환자와 그 가족들이 있음을 항상 알자. 



현재는 구급대원이 되어 구급차를 타면서 환자를 보고 있다. 

지금도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꾸준히 다시 읽어 상기시키고 새로이 적는다. 

이 기도와같은 일기가 나를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이끌어준다고 믿으며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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