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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uka Azusa Sep 14. 2019

폭풍우가 치는 밤에 #2-05

Chapter 2. 미녀는 미녀를 알아보고 바보는 바보를 알아본다.

  준호가 서로 들어서자 윤이 그 뒤를 따르듯 같이 들어섰다. 새까만 신부복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려한 모습을 가릴 수 없는 장신의 신부 둘이 들어서자 서 내 사람들의 이목이 단번에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든 말든 준호는 표정을 구겼고 윤은 은팔찌를 차고 있는 용의자가 쓴 모자를 확 잡아당겨 벗겼다. 예상은 했으나 실상을 확인하니 어이없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정말 수치도 수치도 이런 수치가 없군요."
  "이야, 신부가 밀수 용의자로 잡혀오다니 이게 무슨 일이래."
  "네? 오수민씨 살인사건 용의자인데요."

  네!? 구마를 하면서 별의 별일을 겪은 구마사제들이라 해도 승후의 말에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까 전의 통화에서 준호와 윤은 수화기 너머로 오수민 미카엘이라는 말에 설마 아무리 흔한 세례명이라 할지라도 서울대교구의 용산성당 소속 오수민 미카엘이라는 이름이 둘 일리가 없다고 생각해 부리나케 달려나온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길영이 알아 봐 달라한 성유물 일까지 겹쳐 있어 설마 정말 634 레지아가 밀수 루트를 쓰다가 수민이 서에 잡혀 온 것이 아닐까, 하고 예상하던 두 사람에게 너무 예상외의 단어가 들려오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살인사건? 제 아무리 사고뭉치라고 해도 신부가 아닌가.

  "강 형사님. 설마, 구마를 제게 의뢰하시는 겁니까?"
  "자다 봉창이라도 맞았어? 구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저 사람 진짜 신부 맞아?"
  "예. 제가 조교로 있을 때 학생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서품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오 신부님 환속하셨습니까?"
  "마태오 신부님 제가 환속은 무슨 환속이예요. 환속하면 저 갈 곳도 없어요."

  준호가 뒷 말을 잇지 않고 말을 흐리자 윤이 대뜸 수민에게 먼저 직격탄을 던졌고 수민은 질겁을 하며 윤의 말을 받아쳤다.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혹은 친하거나, 친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저 용의자가 윤과 준호의 지인임은 확실해 보였다. 길영과 승후가 듣다듣다 못 해 결국 길영은 서류철을 책상에 내리쳤고 승후는 제 손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승후의 손이 쾅 하고 책상을 울리자 같은 서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돌아보았다. 길영을 따라하기는 했지만 담이 작은 숭후가 갑작스러운 주목을 버티지 못하고 눈을 슬그머니 돌리자 길영이 승후의 등을 짝 소리가 나도록 내리쳤다.

  "너는 똥폼 잡지 말고 좀 가만히 있어. 들어가서 네 일 하고."
  "네. 죄송합니다, 선배님."
  "아무튼 저기 저 오수민씨가 신부가 맞다는거야?"
  "네. 일단은요."

  윤의 대답을 들은 준호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그 대답을 들은 길영의 표정이 미묘하게 구겨져 들어갔다. 쓸데없이 아주 잠시동안 한국 천주교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자신에게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져 피식 하니 비웃은 그녀가 컴퓨터 안을 뒤져 문서양식 화면을 켜고 정식으로 조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오수민씨. 자갈마당에는 왜 간 거예요?"
  "자갈마당이요?"
  "모르는 척 하지 말고, CCTV에 찍혀서 지금 잡혀 온 거 알잖아요."
  "몰라요. 갑자기 잡아와서 사람 가둬놓고! 대한민국 경찰이,"
  "오 신부님은 좀 조용히 하시고. 형사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길영이 어쩔까 말까를 고민하다 머리를 굴렸다. 언론에 이미 공개가 되어 있는 사건이라 어느 정도까지 말을 해야할지 망설여졌기에 머리를 벅벅 긁자 윤이 길영의 두 손을 붙잡아 우선 진정부터 시켰다. 용의자인 수민을 잠시 승후에게 맡긴 길영이 윤과 준호를 데리고 상용서 구석의 흡연실로 끌고 간 길영이 퀘퀘한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자 똑같은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린 윤이 먼저 운을 떼었다.

  "일단 지금은 저희가 오수민 신부의 신원을 보증해야 하니 간략하게만 이야기 해 주십시오."
  "살인사건 용의자야. 그것도 지금까지의 상황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그래도 본인은 왜 잡혀왔는지도 모른다고 저렇게 말하는데,"
  "용의자들은 다 그렇게 말을 해."
  "......미카엘 신부는... 아닙니다. 말씀해 주세요."

  지금까지의 수사상황을 들은 두 사람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복부가 열린 사체와 정황이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윤과 준호가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634 레지아가 사고를 치다는 거야 익히 알고 있지만 사람을 살리기 위한 과정에서 편법을 쓰고 사고를 치는 것이다. 사람을 구하다가 악마에 씌인 부마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결사에 소속된 요원들이 종종 목숨을 잃는 일이 있지만 신의 종인 사제가 악에서 어린양을 구하기 위해 사람의 규칙을 어길지언정 신의 생명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저희는 물어보신 밀수품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미카엘 신부에 대한 말씀을 하시기에 밀수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고 찾아 온 건데요. 사진 속의 종은 의미가 깊은 해외의 성유물이라 밀수라기 보다 각 교구에서 합의는 하되 이동했다고 공표할 수 없는 구마예식용 성유물일지도 몰라서요."
  "......그래?"
  "오 신부가 또라이기는 하지만 저런 짓을 할 리는 없어요. 비공인이기는 하지만 서울대교구에서 구마 사제로 활동하고 있는 신부입니다. 형사님께서도 아시잖아요. 구마사제들이 어떤 상황에 놓이는지. 악마에 씌인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오 신부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정황이 전부 오수민씨를 가리키고 있단 말이야."
  "일단 오 신부에게 밀수품에 관한 것을 떠봅시다. 그러면 혹시 다른 단서도 나오지 않을까요?"


 .. . .. . .. . .. .
  "아. 저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을..."
  "오 신부님. 설명은 저희가 들어야 할 것 같은데요."

  취조실의 카메라를 잠시 끈 길영이 수민과 마주 앉고, 윤과 준호가 그 옆에 대기했다. 수민의 커다란 눈이 데굴데굴 구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윤과 준호는 그런 수민을 골치 아픈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내려다 보았다. 기실 골치가 아픈 것은 사실이었다. 사고의 스케일이 달라서 그렇지.

  "자. 그럼 자기변호를 한 번 해 보세요. 미카엘 형제님."
  "제 서품은 아직 유효한데요?"
  "마태오 신부는 지금 서품 이야기 안 했어요, 우리한테는 말 좀 하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요."
  "여기 온 이유. 서울대교구의 구마사제가 왜 그런 모습으로 상용시의 사창가에 있었는가 말입니다."
  "나름 올 일이 있으니까, 여기 왔지요."
  "딱히 어떤 고지도 없이 왔고, 행사가 따로 잡힌 것도 아니고 지금은. 사적으로 오셨다고 해도 이런 수상한 짓을 한 건 더 이상하고. 이렇게 사고를 쳐 놓고 부임 받았다는 말은 하지 맙시다."
  "무슨 그런 살 떨리는 농담을 하십니까, 마태오 신부님. 진짜 오수민 신부님께서 저 스케일의 사고를 치고 여기로 부임 받으면 담임 신부님께서는 아마 우리 성당을 뒤로 하시고 주님 곁으로 바로 가실겁니다."
  "그렇네요. 뭐 아가토 신부님께서 오셔도 어렇게 꿋꿋하게 계시는데 미카엘 신부님 정도야."

  윤이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을 해맑은 얼굴로 준호에게 한 방 먹이는 말을 하자 삽시간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 무신경하다는 길영마저도 눈에 띄게 표정이 구겨지다 보니 윤은 제 두 뺨을 감싸며 제 표정이 이상했던가, 하고 아주 잠시 고뇌에 빠졌다. 성도 할머님들께서 항상 예쁜 얼굴 웃으라고 하셨는데. 그 모습을 보며 준호가 속으로 왜 저러는 건가, 마태오 새끼는. 을 외치고 있었다.

  "자, 뭐 이러니 저러니 하지말고. 어서 우리 누님 더는 힘들지 않게 신학교 시절 기숙사에서 병나발 불듯이 술술 붑시다, 빨리. 제가 나이는 한 살 어려도 학번이 7학번이 빨라요, 후배님."
  "......634 레지아가 인수해야 할 성물이 있어서 그랬어요!"
  "그 종이 그럼 레지아 쪽에서 들인 물건인게 명확한 겁니까?"
  "벌써 알고 계셨어요?"

  토끼 눈을 하고서 고개를 드는 수민의 행동에 한숨을 쉰 윤이 고개를 돌렸다. 사실이라면 밀수혐의는 있다고 인정하고 넘어간다 해도 살인혐의를 벗을 현장부재증명(現場不在證明)을 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신부가 밀수에 살인이라는 죄목으로 기소된다면 그 날로 로만칼라 잡아 빼고 나가야 할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게 된다. 준호도 비슷한 생각으로 이마를 짚었고 길영은 폐쇄회로 영상을 정리한 문서를 수민에게 내밀었다. 용의자의 행적을 정리한 문서를 읽어보던 수민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그야, 질릴 수 밖에. 떡하니 사진과 영상 자료가 모두 자신을 지목하고 있으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저, 아니예요."
  "그럼 누가 달리 살인현장에 있었다는 겁니까."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저는 그 피해자 분을 본 적도 없단 말입니다!"

  수민이 버럭, 하고 소리를 지르자 길영이 어디 소리를 지르냐며 맞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좁은 진술실에서 울려퍼지는 목청 좋은 두 사람의 목소리에 준호와 윤은 귀를 막았고 길영과 수민은 목소리 큰 놈이 목소리 큰 년에게 질 것이 뻔한 말싸움을 시작했다. 그나마 오프 더 레코드로 진행을 한 상태라 망정이지 길영의 쌍욕이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진술녹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한참을 끝나지 않을 싸움을 하다 수민이 먼져 길영의 기에 눌려 입을 다물었다. 천하의 오수민이 기가 쫄려 입을 다문 현장에서 그나마 수민을 변호해 주는 것은 윤 뿐이었다.

  "제가 신원을 보장해서가 아니라, 정말 미카엘 신부님은 사람을 죽일 배짱이 없습니다."
  "그러면 딱 그 시점에서 자갈마당에 갔던 이유가 뭐냐고."
  "그 할아버지가 밀수 전달책이예요. 폐지를 줍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아무도 의심 받지 않게 말도 전하는 그런 심부름꾼이요. 우리가 가져온 종이 워낙에 부피도 크고 이동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며칠 할아버지와 교대를 한 것 뿐입니다. 사람이 죽은 줄은 몰랐다고요."

  길영이 혈압이 오른다는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책상을 쾅 내리치자 수민이 흠칫 하고 몸을 움츠렸다. 이미 길영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윤과 준호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부외자인 그들이 보기에도 길영이 맡고 있는 사건과 지금 수민이 처한 상황이 접점이 없어 보이는 듯 있을 것 같은 의아함을 지울수가 없었다. 각 사건들의 연결점을 따로 생각을 한 번 해 봐야 할 것 같아 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밀수하는 담당이 누굽니까?"
  "......말하면 그 분한테 피해가,"
  "개인 갤러리 운영하신다는 그 여자 분 아닙니까? 초등부 여자애들이 그 분만 성당에 오시면 공주님 같다고 조르르 구경 가고 하던게 떠오르네요. 맞지요? 기부금 턱턱 내고 문 신부님과 자주 이야기 하던."
  "잠시만요, 아가토 신부님. 성도님 개인 정보를 그렇게 막 말씀하시면,"
  "야 이 것들아. 그래서 누군데, 그 여자가. 피해니 뭐니 하다 진짜 교도소 쳐들어가야 정신 차리지!?"



 .. . .. . .. . .. .
  으리으리한 강남 주상복합아파트의 외견에 길영은 못마땅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고 준호는 무감각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수민의 신병을 보증하기 위해 둘 중 하나가 남아야 했는데 예민하게 신경이 곤두선 길영과 함께 가는 것을 한사코 거부한 준호였지만 서울에 적을 둔 적 없는 윤이 가도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을 한 길영이 그를 데리고 서울로 향했다. 호화로운 건물에 위화감을 느낀 길영이 멋적게 목을 벅벅 긁는 동안 준호가 입구 초인종을 누르자 우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아가토 신부님 아니세요?]
  "안녕하셨습니까, 안젤라 자매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반갑게 문을 열어 준 우아한 생김새의 여성이 준호를 보며 환히 웃었다. 태도나 어투까지 어디 좋은 집 아가씨로밖에 볼 수 없는 그녀의 에티튜드에 길영은 더 삐딱한 표정을 지었다. 우아한 얼굴로 사람을 깔아 뭉개던 박홍주가 떠올라서였다. 길영의 심기가 나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준호가 말을 에두르며 수민의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가 커피를 내오며 먼저 화두를 열었다.

  "대충 상황은 들었어요. 오 신부님께서 지금 많이 곤란하신 상황이시라고."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시는,"
  "SU쪽 인간들 더러운 거래 자주 하는거야 이 바닥에서는 유명해요. 그렇다고 우리도 깨끗한 건 아니고 하니, 적당히 이용은 해야하지만 대놓고 막 나갈 수는 없어서 신부님 뒤에 경호를 붙였었어요. 미카엘 신부님은... 아무래도 앞뒤 생각 안 하고 덤벙거리실 때가 있으시니까. 원하시는 게 이거 아닌가요?"

  준호에게서 안젤라라 불린 여자가 내민 사진에는 수민과 같은 차림을 한 비슷한 체격의 다른 남자가 수민이 이동한 다음 경찰의 예상 루트로 이동하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서로 다른 각도의 사진과 함께 필름에 메모리 카드까지 내미는 모습에 길영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필름과 카드부터 챙긴 다음 사진 속의 인물을 찾느라 필사적으로 사진을 확인했다. 그러나 경호담당이 수민의 행방만을 쫓느라 다른 용의자의 결정적인 범행장면이 찍혀있어야 하는 사진이 없자 낙담할 수 밖에 없었다.

  "신미연입니다. 갤러리 대표로 있고요. 물어보실 점이 있으면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 주세요. 이 정도로 사건이 커지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뒷책임은 제가 져야지요. 일단 담당했던 경호원들부터 담당 서로 가서 증언을 할 수 있게 조치하겠습니다."
  "상용경찰서 강력 2반 소속 강길영입니다. 우선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관여하신 밀수건에 대해서는,"
  "그 부분은 아무래도 말씀드리기가 힘든데요."

  미연이 딱 잘라 말하며 선을 긋자 길영의 표정이 살벌하게도 구겨졌다. 미연의 태도를 보아서는 아마 지금 연루된 사건의 자료를 경찰측에 제공하는 것 보다 SU쪽과의 관계를 더 우위에 두는 것이 분명했다. 길영이 눈을 몇 번이고 깜박이다가 찌푸리는 것을 반복하자 중간에 끼인 준호만 죽을 맛이었다. 사나운 두 맹수 사이에 끼인 고양이가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고 이럴 때는 입을 다무는 것만이 살 길이다.

  "부족해요, 이 정도로 뭐 쉽게 용의자를 놓아줄 필요가 있겠어요?"
  "영상도 있고 사진 촬영도 일부러 필름으로 했는데요."
  "다른 확증이 없는데? 이걸로는 모자라요. 본인의 어리버리한 자백과 우리쪽 CCTV 자료가,"
  "알았어요. 알았다고. 정말 경찰들이란......"

  미연이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새까만 파일을 세 권 꺼내 왔다. 얇은 클립이 채워진 파일에는 634 레지아가 밀수선에 실어온 종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었다. 종의 사진과 같이 서반어로 설명이 잔뜩 적혀있는 문서를 의미 없이 슥 훑어보고 다시 미연에게 돌려주려는 것을 준호가 재빠르게 낚아채었다. 뭐라 한 마디를 하려다 그가 짐짓 진지하게 서류를 읽는 것을 본 길영이 다시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오수민이예요, 아니면 거래예요? 길영이 날카롭게 한 마디를 던졌다. 차를 타고 오면서 준호에게서 634 레지아에 대한 이야기는 간단하게 들었다. 비공인 구마사제들과 그들을 도우는 성도들의 비밀결사. 이미 종교가 사람을 아래에 두던 시절과는 세상이 변했다는 작금의 가톨릭이 반대하는 구마의식을 진지하게 믿고 임하는 자들의 모임이다. 실상 그 놈의 박일도 이전에는 자신도 귀신 같은 것이 세상에 어디있냐며 외치고 다니던 길영이라 그들이 받을 핍박을 아주 모르지는 않는다.

  묵직한 두께의 두 번째 파일을 집어드는 길영의 손이 멈칫하니 멈추었다. 두께가 조금 있는 파일 안에는 여자들의 프로필이 인쇄된 종이가 잔뜩 끼워져 있었다. 사진도 첨부되어 붙어있거나 혹은 처음부터 같이 인쇄된 서류도 많았다. 면접서류인 듯 했지만 사진들은 하나같이 대충 찍은 것이거나 급조하여 찍은 것들이 많았다. 게다가 하나같은 공통점은 짐짓 화려해보이는 외모이지만 심적으로 상당히 지쳐보이고, 대다수가 어딘지 모르게 사람이 천박해 보이는 표정들이었다는 점. 유심히 파일을 넘기던 길영의 손이 그대로 멈추었다. 희고 고운 살결에 인형 같이 곱고 큰 눈. 긴 속눈썹에 총기가 어린 눈빛은 다른 여자들의 사진과는 확실히 달라보였다. 유독 빨갛게 립글로스를 바른 앙증맞은 작은 입술. 항상 마스크를 꼈지만 간식을 먹을 때는 종종 벗었기에 그 익숙한 얼굴을 본 길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우, 지희......"

  낯이 익은 얼굴에 길영은 꼼꼼하게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생년월일, 휴대전화번호, 메일 연락처 등등과 함께 신체지수가 적힌 프로필. 굳이 적힌 숫자를 보던 길영이 페이지를 더 넘기다가 이마를 짚었다. 휴대전화번호는 둘째치고 거주지에 순간 눈이 갔다. 언제나 보던 거리의 친구. 조금은 우울하고 자신없어 보였던 모습에 마음이 쓰였던 사람이다. 남겨진 사람 특유의 쓸쓸함을 가졌던 그런 여인.

  "이 파일을 제게 보여주는 이유가 뭔가요?"
  "물건을 밀수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SU가 하는 밀수 중에 가장 큰 거래건은 사람이에요. 거기 파일에 있는 사람들은 상용시 사창가에서 일하다 실종 된 사람들을 찾아 본 겁니다. 안에 우리 대원 하나가 백방으로 찾아서 보내준 귀한 데이터니까 가져가지는 마시고요."
  "실종자라고요? 아닌 거 같은데. 여기 있는 사람들......"
  "맞아요. 아가씨들 집을 뺀 다음 어느 시점부터 손님이 찾아도 없다고 둘러대는데 수상하다는 말이지. 어느 순간에 집에 깍두기들이 와서 싹 짐을 버리고 치우면 다른 여자들을 집어넣고. 요즘 들어서 데려오는 애들 대부분은 외국 여자애들을 데려온다더군요. 우리 요원 말로는 영어를 쓰는 애들도 아니라고 하던데. 대충 들리는 말들이라도 어찌어찌 적어서 검색해보니까 스페인어라고 하더라고요."

  길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러시아에서 액화가스를 수입하기 전까지 SU의 주된 거래처는 남미 국가들이었고, 그 쪽 국가들의 대부분은 국가 공용어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이다. 게다가 유독 치안이 불안해 외교부가 종종 여행유의국으로 지정한 국가나 지방도 많은 지역이다. 실제로 남미 국가에서는 정치 위기와 동시에 원유의 정제시설이 가동하지 않아 국가 사업의 불활성화와 경제적 무역 수입이 전무하다시피 떨어져 가는 것이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한 남미국가들에게서 가장 저렴하게 원유를 떼어 그 나라에서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해 정제를 하고 그 차익을 취하는 블랙기업이 바로 SU케미칼이다. 의외의 정보를 얻게 된 길영이 머리를 싸맸다. 재명이든 형준이든 누구 하나 머리 좀 좋은 사람을 데려올 걸. 이럴 때는 제 머리가 원망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읽던 파일을 내려두고 다른 파일을 집어 들자 이번에는 외국인 여성들의 프로필이 아무렇게나 적혀있었고 집어드는 순간부터 무게가 묵직한 것이 종이 매수도 더 많았다. 파일을 상세히 넘기기도 전부터 길영의 표정은 아까 전보다 험악해져 갔다. 원래 자갈마당 자체가 단속을 피해 미로처럼 건물을 얽고 섥었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수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많은 국내외의 여성들이 위험하게도 사창가에 몸을 담고 있다는 것 까지는 파악을 하지 못했었다.

  "아이씨. 김재명 팀장이라도 좀 데려올걸."
  "김재명 팀장... 서울에서 유명한 수사과 팀장이랑 이름이 같네요."
  "서울에서 온 사람 맞아요. 어떻게 아세요?"
  "유명해요. 미친 브레인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경찰이지요. 검사 아닌게 정말 천만다행일 정도야. 왜 최근에 진현필이라고 폰지사기 친 놈 대가리부터 새끼까지 탈탈 턴 다음에 김 팀장이 손 대려는게 성운이잖아요. SU 달고 나온 회사들 다, 구 성운그룹 소속인 거 대한민국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 누가 있어? 뭐 거창하게 Supreme & Unprecedented라고 해 봐야 말이지."





혐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폭치밤은 점점 더 장르가 개판이 되어가고 있네요...허허허허허헣




.. .
Written by 桃華 明寿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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