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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구리 Apr 09. 2021

책 <여행의이유> : 삶, 살아가다

본전 생각이 만들어낸 첫 해외여행

첫 해외여행은 대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학생 대상으로 저렴하게 나온 중국 단체 패키지여행. 

첫 여권 발행, 첫 비행기 탑승, 첫 해외여행. 무엇 하나 두 번째인 것이 없었다. 그때의 소름 돋는 설렘과 자진모리장단으로 꿀렁이던 심장이 지금도 느껴질 정도다. 여행의 일분일초도 놓쳐선 안된다는 열정으로, 모두들 곯아떨어진 고요한 버스 안에서도 두 눈 부릅뜨고 차장 밖 풍경을 스캔하고 저장했다. 나의 첫 해외여행 또한 작가의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여행 중에 가이드가 하는 온갖 얘기를 빠짐없이 적어 온 것이다.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온 아버지는 그렇게 큰돈을 쓴 여행이라면, 그냥 먹고 놀고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여행은 배움이어야 한다는 인류의 오랜 믿음을 따랐다.


'배움'은 나에게 조금 거창하지만, 그냥 먹고 놀고 해선 안된다는 생각은 같았다. '그래야 나중에 본전 생각이 안 날 것'이라는 자동 계산이었다. 달랑 2박 3일이었는데, 3kg이 빠질 정도의 과한 열정의 여행이었다.



'나'만이 존재하는 곳

직장인이 되고, 조금이나마 경제력이 생기고 나니 '여행'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당시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과 제주도를 2번 다녀왔고, 결혼 후에도 3번은 더 다녀왔다. 

강원도가 고향인가 싶을 만큼 셀 수 없이 갔고 경주, 거제, 부산도 너무나 쉽게 여행했다. 여행의 가벼움이 느껴지는 희열이 있었다. 첫 해외여행을 생각하면 '나 정말 많이 컸네' 싶었다. 


2015년 베트남 다낭(벌써 6년 전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해외여행의 경험도 늘었다. 신혼여행지였던 몰디브와 싱가포르, 여름휴가로 떠난 베트남, 남편의 장기근속 포상으로 가게 된 칸쿤과 라스베이거스.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나라는 주체가 있지만, 그 주체를 초월하는 생생한 현재가 바로 눈 앞에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원경으로 물러난다.


현실은 한국에 잠시 놓아두고, '나'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떠나는 것.

당연히 관광이 기본이었지만, 

잠시나마 현실을 도피할 수 있도록 온 몸을 불살라 돈을 벌고 쥐똥만큼이라도 꾸준히 모아 다시 현실도피를 시도하곤 했다. 여행 동안 온몸을 불사르는 시간 속의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정반대로 그저 즐거움만을 쫓아다니기도 했다. 진짜 현실은 아무리 고통일지라도 여행 속에선 현실의 고통 따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나만이 존재하게 되는 그것이 여행의 의미가 되었다. 


여행은 어디로든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인류가
현대에 남긴 진화의 흔적이고 문화일지도 모른다.
피곤하고 위험한 데다 비용도 많이 들지만
여전히 인간은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여행의 이유?

주말마다 가급적이면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 꽤나 멀리 떠난다. 지난겨울, 강원도를 자주 갔다. 춥고 삭막한 바다를 그저 덜덜 떨며 바라보다가 커피 한 잔 마시고 집에 돌아왔다. 월요일이 되면 그게 대체 무슨 휴식(여행)인가 싶으면서도 다시 주말이 되면 인적이 드물고 한적하다 못해 다소 음습한 분위기의 바닷가를 찾아간다. 사람이 많은 유명 관광지는 차 안에서 대체로 바라만 본다. 지금 생각하니 주중의 나를, 나의 존재를, 나의 역할을 버리고 싶은 것이었나 보다. '노바디(아무것도 아닌 자)'를 꿈꾸는 주말여행. 그 주말 덕분에 난 다시 나로 살 수 있는 것 같다. 

묘한 느낌의 정동진

작가는 여행의 목적을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기다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울 곳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라고.


책 표지를 보고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여행의 이유? 살려고 가는 거지 뭐."



※2020년 작성했던 글을 조금 편집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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