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장애의 위험함이란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결정을 잘 못 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슈퍼마켓을 가도 어떤 맛을 골라야 할지 몰라 10분 넘게 고민했다. 나중에는 고민 자체가 싫어 친구들의 선택을 따랐다. 친구들이 가고 싶다고 하는 곳이 나도 가고 싶은 곳이었고, 그들이 먹고 싶은 것이 나도 먹고 싶은 것이었다. 이런 우유부단한 성격은 항해사를 준비하기 전까지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고 남들의 의견에 맞춰 잘 살아왔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 때 한 수업을 통해 결정 못 하는 성격을 고쳐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어떻게 하지?”
“Starboard(오른쪽)로 피해.”
“Port(왼쪽)로 가.”
“어…어…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꽝!’
줄지어 오던 요트 한 척과 선박이 충돌했다. 화면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충돌한 장면에서 계속 멈춰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대학교 3학년 때, 실제 항해 상황과 비슷하게 마련된 공간에서 가상 화면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수업이 있었다.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 돌아가면서 선장 역할을 했는데, 내가 선장이었을 때 충돌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좁은 수역에서 우리 배 앞으로 줄지어 횡단하려는 세 척의 요트. 오른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앞으로 지나갔거나, 왼쪽으로 돌려 뒤로 지나갔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의 말이 옳은지 우왕좌왕하는 사이 사고가 나버렸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내가 최종결정자이자 책임자였으니까. 실제 선박이었다면 선체 훼손은 물론 인명 사고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친구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역할을 바꿔 수업을 계속했지만 나는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고 빨리 실행에 옮겼더라면…’
우유부단한 나의 성격이 바다 위에서는 치명적인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날이었다. 바닷길은 차가 다니는 도로, 즉 육지와는 확연히 다르다. 눈앞에 아무것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수면이 전부다. 비교하자면 도로에 노란 선, 흰 선, 신호등, 표지판 없이 검은색 아스팔트만 있는 셈이다.
정답은 없다.
오른쪽으로 피하든 왼쪽으로 피하든 잠시 속도를 줄였다 가든 충돌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위험이 감지된 순간 결정을 빨리 내리는 것. 일단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면 길은 계속 이어져 있고, 이내 다음 갈 길이 보인다.
항해사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주저하는 성격을 많이 개선했는데, 뜻밖에 삶에서도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들을 스스로 결정하게 됐다. 무작정 남을 따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주체적인 삶이 가능해졌다. 언제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타인의 의견을 따르든, 나의 의견대로 하든 어차피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면 스스로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오늘도 자신에게 되뇐다.
주저하지 말고 일단 결정하자.
지금의 선택이 다가 아니니까. 정답은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일단 결정하면 다음 길이 보이니까.
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 덕에 제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나는 스물일곱, 2등 항해사입니다>
이 책이 당신의 삶에 소소한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