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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뢰딩거의 나옹이 Sep 13. 2021

‘파이어족’이 답일까?

일의 의미

MZ세대 3명 중 1명은 조기 은퇴를 뜻하는 ‘파이어족’을 꿈꾼다고 한다. 회사원으로 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밥벌이의 지겨움’에 공감하며, 가슴 속에 사직서를 품는다한들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고소득·고연봉이 전제되어야 하는 ‘파이어족’이 모두에게 가능한 일은 아니어서 다른 누군가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빠르게 돈을 모아 빠르게 은퇴를 실행하는 ‘파이어족’은 언뜻 꿈의 대안처럼 보인다. 정말 ‘파이어족’이 되면 행복할까?


‘워라밸’의 함정


한때 ‘워라밸’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워라밸은 워크 앤 라이프(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한다. 직장이나 일에만 매몰되어 가족과의 시간이나 취미 활동 등 삶의 행복을 놓치는 것을 경계하자는 뜻으로 쓰인다.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오랜 시간 일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 사람들에게 ‘워라밸’이나 ‘저녁이 있는 삶’ 같은 구호는 일견 타당한 면이 있다.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을 되돌아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라이프’는 추구해야 할 좋은 것이고, ‘워크’는 최대한 시간을 줄여야 할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에 몰입하는 사람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바라보거나, 인생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워라밸’이라는 단어에서처럼, ‘일’과 ‘삶’을 완전히 구분해 버리면 사실 ‘일’을 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여가를 즐기고 싶지, 노동을 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을 다시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의 의미


많은 사람들은 ‘일’을 ‘돈을 벌기 위한 활동’으로 한정한다. 물론 일을 해나감에 있어서 돈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돈’으로만 생각한다면 중요한 가치를 놓치게 된다. ‘돈’이라는 경제적 이득 외에도 일이 주는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Work)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회사에 다니는 것도 일이지만, 자기 사업을 영위하는 것, 전업주부로 살림과 육아를 담당하는 것, 취미활동을 하는 것, 종교 활동을 하는 것,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모두 ‘일’이다. 일에는 직접적으로 금전적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일, 간접적으로 금전적 대가를 얻는 일, 혹은 금전적 대가를 뛰어넘어 의미를 가져다주는 일 등이 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의미를 가져다주는 일’이다. 여기서 ‘의미’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가령 누군가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쓰는 일을 의미 있다고 느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이사는 한 인터뷰에서 ‘배달의 민족’이라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활동이고, 배달의 민족 서체인 ‘배민체’ 개발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의미를 가져다주는 활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자신에게 의미를 가져다주는 활동을 ‘일’의 범주에 넣고 일을 재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워라인’이 가능할까


직장인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는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일’에 투입한다. 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을 ‘일’과 함께 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과 ‘삶’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과 삶의 밸런스라는 뜻의 ‘워라밸’에서 이제는 점차 워라하(Work-Life Harmony), 혹은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과 삶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킬 방법이 필요하다.


일과 삶의 조화를 위해서는 ‘주체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주체성은 ‘나의 의지’를 의미한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100% 주체적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지만, 어떤 일에 나의 주체성이나 자발성이 조금이라도 개입될 때 흥미를 느끼게 된다. 지속적으로 남이 시킨 일만 하게 된다면 쉽게 매너리즘에 빠진다. 청소를 하려고 하는데 누가 “청소해라”라고 말하면 하기 싫은 것처럼 말이다.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의견이 의사결정과정에 개입될 수 있도록 입지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차가 쌓였는데도 ‘머리’가 아닌 누군가의 ‘손’이 되어 일하고 있다면 일에서 즐거움을 찾기 어려워진다. 이럴 땐 상사에게 업무 조정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좀 더 장기적으로는 ‘나만의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정년을 채우고 퇴직한다고 하더라도 그 뒤로 긴긴 인생이 이어진다. 사업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생업-직업-소명


우리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일’을 하며 보내면서도 과연 ‘일’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는 것 같다. 배리 슈워츠가 자신의 책 <우리는 왜 일하는가>에서 구분한 일의 세 단계를 참고해볼 만하다. 그는 일을 생업, 직업, 소명의 단계로 나눈다. 자신의 일을 ‘생업’으로 보는 사람들은 돈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자유재량권을 거의 누리지 못한다. 반면 자신의 일을 ‘직업’으로 보는 사람들은 더 많은 재량권을 즐기고 더 많이 열중한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은 출세에 있기 때문에 더 나은 위치로 나아가는 궤도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일에서 가장 큰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일을 ‘소명’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일은 삶의 중요 요소 중 하나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부분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고 믿는다.


일을 ‘생업’으로 본다면 ‘파이어족’이 답일 수 있다. 이 또한 자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인생은 길고 일에서 즐거움을 찾은 사람들은 인생을 훨씬 더 충만하게 살 수 있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소명’을 찾아가는 여정을 지속해보자.




나만의 시간표대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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