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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Jan 10. 2024

7.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istanbul, Turkey

I의 성향이 짙은 나는 오늘 종일 집에서 쉬다가 김치로 요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룸메이트인 사잇도 함께 저녁을 했으면 해서 전날 그에게 물었고 사잇은 아주 좋다고 했다. 한국서부터 씻어온 묵은지에 캔참치, 김, 마요네즈 그리고 고추냉이까지 동원해 묵은지 참치김밥을 만들었고 그는 그의 전매특허라며 그릴치킨을 해 보였다. 완벽하거나 대단하지 않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저녁이었다. 오랜만에 먹는 김치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 말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수저 젓가락 세트를 선물하고 그들은 불편하지만 젓가락을 써보려 노력했다. 단연코 타국에서 그곳의 사람들에게 한국음식을 소개하고 그 문화를 알려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흥미로워하고 받아들이려 또 경청하려 노력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만큼 뿌듯하고 미소 지어지는 순간은 없다.

이곳에와 그와 사잇의 엄마가 된듯한 느낌이 드는 일이 적지는 않았지만 한국말로 고마워라는 말을 어떻게 하는 거냐 묻는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잠깐 올라온 분노가 사르르 녹아버리기만 한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고 주고받는 것만큼 소중한 순간은 없으니 말이다. 맥주와 과자로 밤을 마무리했다. 아이스크림과 감자칩의 조화를 좋아하는 나를 보는 저 이상한 눈빛들이 귀엽게만 느껴진다.


전날부터 집 근처 골목이 시끌벅적 분산스러웠다. 그의 룸메이트도 골목 시장이 열릴 거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그냥 대충 알겠다 대답하고 넘겼는데 다음날 카페를 향하는 길에 그 말의 실마리가 풀렸다. 한국에서 아파트 장이 열리는 것처럼 매주 토요일마다 골목 시장이 열린다고 했다. 그의 집에서부터 큰 거리에 닿을 때까지 생선이며 과일 채소 등 먹거리는 물론이며 이불, 옷가지까지 안 파는 게 없었다. 사실 내가 그렸던 바자르는 이런 거였는데, 소문이 왕성한 또 역사가 깊은 그랜드 바자르보다 훨씬 터키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주는 이곳에서 장을 봐 음식을 해 먹자고 얘기하며 그곳을 지나치며 단골카페로 향했다.

오늘은 다른 날들과 조금 다르게 먼저 우리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여느 때처럼 그는 독일어시험공부를 했고 나는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친구가 와 같이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카페를 나섰다.


좋지 않은 날씨 탓에 하늘은 오후 세시부터 벌써 어둑했지만 마음에 크게 내키지는 않았다. 버스를 타고 새로운 동네에 도착했다. 그는 이 동네를 좋아하진 않지만 여행객인 나는 꼭 이곳을 와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동의 나라 사람들이 자리를 잡은 이곳에는 70년 정통을 가진 라마준 집과 100년이 더 된 디저트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스탄불의 중심지보다 훨씬 신앙심이 짙은 사람들이 길에 가득하다. 아마도 여행자가 별로 없어서 일수도 있겠지. 눈만 내놓고 히잡을 두른 여인들이 눈알을 굴리며 나를 쳐다본다. 알라딘이 쓰는 모자를 쓴 남자들은 더 대놓고 나를 보고 있다. 모두가 나를 뚫어져라 보는 터키가 조금은 익숙해졌는데 왠지 모르게 오늘은 좀 낯설었다.


명성과 평가에 비해 맛이 덜했던 라마준에 비해 그냥 스킵하려 했던 디저트집은 눈알이 동그랗게 만들어질 정도로 맛이 순수했다. 맛이 심하게 짜거나 단 터키 식당에서 이렇게 순수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건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디저트가게를 나서며 구글맵을 켜 가게에 하트표시를 해뒀다. 여행지에서 뜻밖에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하는 나만의 표식 같은 거였다.


전통건물이 가득해 네가 무조건 좋아할 거라던 발랏트는 해 질 녘엔 구걸하는 아이들로 가득해 내게 안 좋은 마음을 심어줬고 아무래도 자신은 별로 좋지 않은 가이드일 거라는 그의 말에 나는 어깨를 토닥이며 괜찮다, 나는 시간이 더 있다라며 안심시켜 주었다.

꼭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다. 그냥 흘러가게 두는 게 더 좋은 것들, 소설로도 남기지 않아도 되는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이 조금은 향처럼 흩어졌던 오늘이었다.


연말을 맞이해 신년 파티를 하기로 했다. 신년을 시끌벅적하게 보낸 게 오래 전이기도 하고 파티라는 게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나를 좋게 봐준 그의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올해의 마지막 날, 사실 이제 신년이 오는 게 별로 실감이 안 나기도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가는 걸 실감하지 못한다는 게 조금 무섭기도 하다. 1살 더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이젠 너무 지긋지긋해서 별 느낌도 안 난다. 이십 대 후반 때 만해도 이제 좀 있으면 30이라고 친구들과 호들갑을 떨었는데, 이제 30대 초반이 되고 항상 썼던 버킷 리스트를 안 쓰기 시작했다. 그냥 이것저것 한다는 게 구질구질한 느낌도 들고 사실 현생으로 돌아가면 내 낭만을 들여다볼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냥 꼭 이루고 싶은 하나의 목표를 세워서 그거 하나 이루면 이번 연도도 잘 보냈다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와는 다르게 청량감이 생생한 아이친과 쇼핑몰에서 만났다. 무슨 시크릿 산타 어쩌고를 해서 선물을 익명으로 주고받자는데, 귀찮게는 했어도 막상 그때가 되니까 좀 궁금하긴 했다. 쇼핑을 하고 그에게 주면 좋을 만한 선물도 하나 사서 다 같이 아이친의 집으로 향했다. 터키 사람이긴 하나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아이친은 파티 문화가 익숙했는데 그래서 그런가 집도 잘 꾸며놓고 파티 전에 케이크를 만들 수 있는 시트까지 직접 구워 미리 준비해 두었다.


요가를 좋아하는 아이친은 비슷한 종류의 의식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지금 와서도 제대로 모르지만 같이 요가하는 친구와 그 친구 남편을 불러 신년 전통 의식 같은 걸 하자고 했다. 무슨 카카오 물을 마시면서 소원을 빌고 대화를 나눈다고 했는데 딱히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또 딱히 반대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재밌겠다고 반응했다. 아이친의 집에 가자마자 나는 음식 만드는 거도 왔다. 종일 쇼핑을 해서 너무 피곤해 마음속으로는 주문을 해 먹고 싶었다. 음식 이쁜 거 이런 거는 먹기 시작하고 1,2분 뒤면 사라지는 그런 필요 없는 거니까, 나는 치킨에 맥주나 먹고 싶었는데, 케이크, 샐러드, 오븐구이, 밥 등등 지금부터 만들어야 할 음식 종류가 일곱 가지는 됐다. 한참 음식을 하는 중에 그 친구들이 도착했다. 결혼도 했다길래 나는 오자마자 같이 도우면 빨리 끝나겠다 싶었는데 공주인지 뭔지 그 친구는 오자마자 소파에 앉아 마리화나를 말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개인주의가 강한 이곳에서 내가 뭐라고 할 말은 없었다. 내가 주최자도 아니고 말이다. 그때 그는 그의 친구와 장을 보러 마켓에 갖고 나는 그때 덩그러니 주방에서 혼자 야채 손질만 하고 있었다. 외롭기도 했는데 좀 짜증도 났다. 발바닥에 염증이 슬슬 아우성을 쳐대니 슬리퍼가 없는 채로 계속 서 있다 보니 컨디션이 갑자기 안 좋아지고 말도 없어지고 표정도 사라졌다. 나도 손님인데 나는 왜 이곳에 와서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쟤는 왜 돕겠단 말도 없는 건지 쉬고 싶은데 기댈 사람은 없고 짜증이 날려고 하는 찰나 그가 들어왔다.


우리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다. 그게 당장 아니더라도 삶이란 게 그렇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경험해 보는 것, 그렇게 또 하나의 스토리를 써내려 가는 것. 그게 바로 삶 아닐까. 카카오 열매의 우유인지 즙인지를 마시면서 신년에 소망을 빌었다. 아주 좋아하거나 감동 받는 일이 생기면 가끔 울기도 하는 나인데 올해 그런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그런일이 많지 않더라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럼 그 순간들이 더 빛날테니까 말이다. 각자의 소망을 설명 하는 시간에 나의 소망응 설명 하지 않았다. 그냥 가슴속에 묻어두고 싶었다.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새로운 신년을 맞이했기에 아이친에게만 따로 말했는데,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그렇게 따뜻한 새해를 맞이 했다.

Dec29-Ja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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