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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riblues Mar 26. 2019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이소라 '바람이 분다'

군대는 의외로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먼저 음악을 대하는 자세 측면에서 자신의 취향을 고집하지 않는 오픈마인드를 가지게 된다. 군대라는 곳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라는 것이 너무 뻔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런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청각적으로 멜로디 자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나 할까... 우리가 신나게 군가를 부르는 군인들을 보면 누가 시킨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그냥 신나서 부르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지속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PX, 사병식당, 행정반 등 스피커가 설치된 곳엔 어김없이 최신가요부터 클래식까지 쉴 새 없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 있는데, 사병식당에서 배식을 받기 위해 일렬로 선 20대 남성들이 쥬얼리의 “니가 참 좋아 딴딴딴” 가사에 맞춰 식판에 숟가락을 탁탁탁 두드리던 모습은 단결된 군인정신의 정수였다고 생각한다;


생활실의 아랫목에는 도대체 언제부터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알 수 없는 오디오세트가 자리 잡고 있다. 일과시간이 끝나면 선임들은 DJ가 되어 자신의 음악적인 취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데, 박정현의 빅팬이었던 우리 생활실 선임은 김범수, 빅마마, 김장훈, 윤도현, 휘성 등의 음반을 마르고 닳도록 들려주었다. 인이 박힌다라는 게 이런 걸까? 음반 하나를 500번 정도 들으면 노래 제목들은 모르지만 ‘이 앨범은  명반이 아닐까’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그때 질리게 들었던 휘성 2집은 정말 명반이라고 생각함)


그날도 여느 날처럼 FM 전파를 잡기 위해 안테나를 길게 늘여 뜨린 오디오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새벽 2시, 교대근무를 서기 위해 일어난 나는 잠에서 덜 깬 채로 전투복으로 환복하고 군화끈을 동여매던 참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이상은의 ‘언젠가는’이 흘러나왔다.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겼을 노랫말인데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제대 후에도 이런 류의 노래를 들으면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멍하니 서있곤 했는데,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도 그런 노래들 중 하나다.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그때 그 감정들은 무엇이었을까?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었을까?

시간이 흐름 지금 과거에 대한 후회는 접어두고 ‘이제라도 알게 돼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멍하니 서있던 이를 토닥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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