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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의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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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다독 Aug 20. 2020

혁명의 자리를 미학으로 채운 프롤레타리아 소설

영화 <인 디 아일>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게오르그 루카치) 지게차를 올려다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크리스티앙과 마리온은 파도 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실은 천장에 달린 조명들을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낮과 밤을 분간할 수 없는 내부는 조명으로 인해 늘 지게차가 갈 길이 밝히 보인다. 별에 바다까지 있는 내부는 이제 외부를 완벽하게 대리보충한다.

   

내부에서의 삶을 계속 살아낼 크리스티앙의 태도는 브루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성질을 지닌다. 브루노는 지게를 최고로 올렸다 내릴 때 나는 소리가 파도 소리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마리온에게 가르쳐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끝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무리 파도 소리처럼 들린다 한들, 지게차의 소리는 파도 소리가 아니다. 지게차가 달리는 통로 역시, 아무리 환해도 고속도로가 아니다. 브루노가 크리스티앙을 집에 초대해 술을 마시는 사건은 영화가 막바지에 접어들었음을 알게 되는 일련의 일들 속에서 의미심장하게 되살아난다. 그는 무엇을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일까? 술잔을 넘길 때 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창으로 들어오면서, 브루노는 빛을 함께 삼켜버린다. 그는 더는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영화는 브루노의 실패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들 옆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크리스티앙을 응시한다. 미명한 새벽은 말하고 있다. 별이 필요한 시대는 끝났다. 크리스티앙은 때로 휘청거리겠지만, 아마도 성실한 노동자(모범 시민 크리스티앙!)의 삶을 살 것이다. 그는 과거를 청산하려 한다. 브루노에게는 다시 오지 않는 아름다운 시절이, 그에게는 감추고 싶은 대상이다. 그런데, 규율이 없는 삶에서 모범 시민으로서의 삶으로 넘어오는 일은 단지 방탕하거나 건실한 삶의 품위에 관한 문제일 뿐인가? 세간이 단출한 자신의 아파트에 누워 있는 크리스티앙의 크리스마스 밤, 창밖에서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지만 그 광경은 네모난 창을 통해 일종의 화면처럼 보인다. 크리스티앙이 들어온 사각의 내부는 그런 곳이다. 영화 내내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벌인 날을 제외하고는, 밤에 바깥에 머무르지 않는다. 밤에 그들이 있어야 하는 곳은 내부다. 집이거나 마켓. “밤의 세상에 온 걸 환영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별을 필요로 할 수 없다. 내부는 환하다.


목을 매지 않은 사람이 옳은 것일까. 브루노의 말을 빌리자면, 진실은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시대를 받아들이는 것과 저항하는 것 사이에서 자신의 진실을 실천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멀쩡한데 버려지는 음식들을 몰래 먹고,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고, 지게차 옆에 올라타는 등 마켓 노동자들은 규율된 내부의 작은 틈들을 자꾸 발견한다. 그런 틈들이 내부에서의 삶을 견디게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사랑의 순간들도 포함되어 있다. 진열대의 틈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내부는 사람과 사람이 새로운 지평―예를 들어 바다와 같은―을 보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묻게 될 수밖에 없다. 마켓이라는 공간에서 주체적인 순간을 마련해보려는 노동자들의 저 소소한 행복들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


영화는 혁명을 꿈꾸지 않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의 현재를 마냥 긍정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반복되는 일상과 노동은 때로 자못 신성해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그들의 일상이 신성하다고 말하게 되면, 가장 편리한 폭력의 길로 빠지게 된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그곳이 아닌 바깥을 보는 일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일은 바깥을 내부에서 상상할 수만 있는 곳으로 강제 당하는 것과 아주 다르다. 이념과 체제가, 시대가 사람을 어떻게 구성하고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면서, 영화는 우리의 실패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별에 의지하지 않고도 길을 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면서 사람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지게차에서 파도 소리를 발견해야 하는 시대다. 우리는 조만간 영영 바다를 모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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