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를 얻어 한국에 왔다. 밤이고 낮이고 나 가을이야 나 좀 봐줘하는 가을의 향연에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가을 풍경에 황홀하다.
다다음주에 발목 수술을 할 예정이라 수술 전에 만나야 할 사람들,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오랜만에 전 직장동료 언니들을 만나기로 했다. 지난주에 생일이었던 언니, 9월생 언니. 무엇을 선물해 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유기 디저트 식기로 결정했다. 언니들이 인스타에 올리는 그릇이나 식기에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내가 요즘 식기에 꽂힌 이유가 8할이긴 하다)
직업병 모먼트 1. 디테일
백화점에 들어가서 원하는 세트를 고르고 개별로 포장을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유기 수저기 때문에 사용하기 전, 세척 방법에 대한 안내 설명서를 박스 안에 넣어주셨다. 수저가 똑바로 있으면 설명서는 뒤집힌 채로 들어갔고, 뚜껑도 로고가 뒤집히게 덮어주셨다. 그리고 포장지로 감싸시려고 하자, 내가
나 : 잠시만요
조용히 포장 뚜껑을 열고 사용 설명서 앞쪽이 보이게 두고, 포장 뚜껑을 제대로 덮었다. 로고를 내 앞으로 두고 열었을 때 사용 설명서와 수저가 가지런히 보일 수 있게끔 정리를 했다.
그다음 수저세트를 포장하실 때에는 내가 한 대로 똑같이 담고 종이를 두고 뚜껑을 닫아 주셨다.
내가 직원분이 포장하시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니, 직원분이 말을 거셨다.
직원 : 혹시 어느 직종에서 일하세요?
나 : 서비스 직이요.
직원 : 아.. 어쩐지. 디테일하게 보시는 것 같아서요.
나 : 네. 직업병인 가봐요.
내가 원한 방향으로 포장이 끝이 나서 기분이 좋았다.
직업병 모먼트 2. 화장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일정시간 이상 머무르면 유체이탈처럼 멍~~ 해지는 순간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오는 편이다. 내 쇼핑 스타일은 살 것을 보고 매장 위치 확인하고 사고 나오는 것. 이것저것 둘러보고 비교는 잘 안 하는 편이다.
언니들 선물을 구매하고 화장실에 갔다. 거품을 내서 손을 씻고 핸드타월을 한 장 뽑았다. 내 손에 있는 물기를 탁탁 닦아내고, 내가 손 씻으면서 튀긴 물을 거울에서 닦고, 내려와서 물 트는 탭, 세면대 주변의 물기까지 닦았다.
정기적으로 화장실을 관리해 주시는 분이
"아가씨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하시는 목소리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10년 넘게 내가 비행기 화장실을 정리한 습관이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나왔다. 세면대에 물기가 보였으면 그것까지 닦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나와 직원분의 눈이 마주쳤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른 누가 보면 깐깐하고 유난스럽다고 보일 수 있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무의식적에 몸에 베인 습관 덕분에 다음 사람이 깨끗한 세면대를 마주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