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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Feb 14. 2021

남편은 괜찮대?


"용기 내셨네요!"


금요일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용기를 냈는데, 점원 분께서 기분 좋게 환영해주셨기 때문이다.


용기를 받아주는 일은 호의이지, 권리가 아니다. 점원 분 입장에서는 무척 성가실 수밖에 없다. 일회용 아이스크림 컵에 담을 때는, 컵 크기에 맞춰 아이스크림을 담으면 쉽다. 하지만 내가 가져간 용기에 담아주시려면 번거롭다. 저울에 영점을 맞추고, 한 가지 맛을 담을 때마다 무게를 가늠해야 하니, 쉬울 리 없다.


그래서 미안하다. 플라스틱을 줄이려면 불편해지니까. 나만? 아니... 동참하는 사람도 함께.


주위를 불편하게 하는 소신. 이건 용기 낼 때만 있는 일이 아니다. 탄소 배출물을 줄이기 위한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 기후 위기는 '편리한 일상'에서 비롯됐기에, '불편한 일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붉은 고기도 사고, 몸으로 있는 일을 최신 가전에 맡기지 않으려 하며, 주고 사는 물건마다 소비 수치심이 든다고 하는 아내.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남편은 괜찮?"


나도 안다. 남편은 괜찮지 않을 것이다. 극성맞은 아내 때문에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가장 가까운 희생양이다. 베스킨라빈스의 점원 분이 호의를 베풀어 주셨듯, 남편도 나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불편해도 참고 있다.


남편은 시사에 해박한 만큼 당연히 기후위기를 '알고' 있다. 당근과 깻잎 한 단도 리유즈 백에 담아오고, 종종 비닐을 씻어 말려놓는 꽤 부드러운 실천가이기도 하다. 불편해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자동차를 좋아하지만, 25만 km까지 타고 말겠다며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웃음 짓는 멋쟁이다.


그렇지만 건조기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처음에는 둘 다 건조기를 사지 말자며 의기투합했다. 지금 사는 집에는 건조기를 들일 공간의 여유가 없다. 공간의 '균형 있는 미적 여유'를 좋아하는 남편과, 최신 가전제품을 '기후위기에 가담하는 불필요한 과잉 소비'라고 생각하는 나의 입장이 잘 맞았다.


하지만 이사 갈 집이 넓다. 남편은 건조기를 놓고 싶어 한다. 건조기를 들인다고 해서 '공간의 미적 여유'를 잃지 않을 것이다. 장마철에도 걱정 없이 빨래가 보송할 테고. 그리고 우리 집이 건조기를 포기하는 개미 발톱의 때 같은 노력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는 넓은 집에 건조기 놓는다고 '과잉소비'가 '적정 소비'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건조기를 들이고 싶어 하는 남편에게 애원한다. 밀양 송전탑 반대를 위해 산 위에 드러눕는 수밖에 없던 밀양 할머니들 마냥, 빨래 널기가 힘들다면 빨래 담당을 바꿔보는 건 어떻겠냐고 절박하게 호소한다. 때로는 강경하게 반대해서 이해불가 철벽 아내가 돼버렸다.


남편은 괜찮은가요? 아니오. 남편은 괜찮지 않아요.

© stevepb, 출처 Pixabay

'건조기 반대'로 대표되는 '지금보다 더 편하게 살지 말자'는 내 태도는 소신일까, 광신일까. 나에게는 소신이, 누군가에게 광신이 될 수도 있다. 상대에게 강요하고 심지어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광신적 태도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책,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에서 툰베리의 아빠의 간곡한 설득이 머리에 남아 떠나질 않는다.


"정말 광신적인 태도는 우리를 포함한 소수 엘리트 계층이 누려 온 행동양식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겁니다. 비행기 여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은 전혀 광신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지요."

-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중, 툰베리의 가족 공저


건조기 너머로 보이는, 기후위기로 인해 지속 불가능한 지구에서 힘겹게 살아갈 2050년의 우리가 느낄 고통과 슬픔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과연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 얻을 수 있는 그의 행복과, 거주불능 지구로 치달 아가는 데 기어이 한몫 함으로써 얻게 될 나의 수치심 중 어디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걸까?


남편에게 미안하나, 인류에게 미안하나, 여러모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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