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가계부 안 써. 돈도 막 쓸 거야."
남편에게 가계부 파업을 선언했다. 파업을 선언했던 날, 우리는 식비 예산을 두고 아웅다웅 하고 있었다.
4인 가족 우리집 식비는 3년 째 하루 1만5000원이다. 나는 식비 예산이 물가 상승률에 비해 조금 팍팍하더라도 씀씀이를 단도리 하고 싶었고, 남편은 예산을 늘리고 싶어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000원만 더! 그는 하루 식비 1만7000원을 요구한 것이다.
하루 식비 2천원 올려달라는 남편
"3년째 식비 동결이라니... 유기농 식재료도 사야하는데 너무하다."
남편 말도 일리가 있다. 올 봄부터 식비 예산을 한 달 5만 원 정도 초과하기 일쑤였는데, 그 원인은 '유기농 식재료'와 '동물 복지 계란'이다. 월급이 오른 것도 아니면서 매달 식비 예산을 초과해가면서 유기농 식재료와 동물 복지 계란을 사고 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라는 것이 바로 우릴 두고 하는 말일까?
주눅이 들다가도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유기농 식재료와 동물 복지 계란 구매는 계속 이어가고 싶다. 우리 부부는 2021년, 1년 간 어떤 실험 하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험 주제는 바로 '기후 위기와 쓰레기 팬데믹 대응 하기'. 갈수록 지구에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기 버거워져,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을 닥치는 대로 해보자 마음 먹었다.
지금 쓰고 있는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연재도 실험의 한 과정이다. 남편과 2주에 한 번 번갈아가며, 아내와 남편의 입장으로 4인 가족의 지구 지키기 경험담을 쓰고 있다.
남편이랑 함께 <지.구.가.>를 연재하고 있다고 말하면, 많이들 오해하신다. 남편이랑 마음이 맞으니 얼마나 좋냐고! 정말 오해하시는 거다. 우리는 '지구가 망하지 않으려면 살던 대로 살아서는 안 돼'라는 점에서는 같은 별을 바라보는 게 맞다. 하지만 실천 방법 면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조금씩 달라 다투기 일쑤였다.
건조기를 사자는 남편, 반대하는 나. 주택에서 텃밭 농사로 적당히 자급하며 살자하는 나, 반대하는 남편. 필요한 가구는 중고로 사자는 나, 새 것을 오래 쓰자는 남편. 그리고 지금은 친환경 식재료 가격에 맞게 식비를 올리자고 하는 남편과 외식 횟수를 줄여 1만5000원에 맞춰보자는 나.
가족의 마음을 얻는 일은 너무 어렵다. 너무 어렵기 때문에 때로는 초강수를 두기도 하는데, 그게 나에게는 가계부 파업이었다. 남편도 안다. 가계부 없이, 그러니까 적절한 절제 없이는 계좌에 구멍이 숭숭 뚫릴 것임을. 다행히(내 입장에서는) 남편은 가계부가 쓰기 싫다.
"아, 가계부 써야 돈이 모이는데. 하루 식비 1만5000원 하자. 가계부 써 줄 거지?"
"응. 한 달만 더 하루 1만5000원 해보자. 자기가 너무 힘들면 다음 달에 올리자."
가계부 파업은 성공했다. 남편도 나도 서로 윈윈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내가 꾸준히 가계부도 써주고(?), 어쨌거나 돈도 절약하고, 친환경 식재료를 사니 손해볼 게 없었다. 나는 나대로 '친환경 소비는 최소한의 소비부터'라는 소신을 지킬 수 있었다.
"한 달 더"를 외친 결과, 2만 원 흑자
그렇게 합의를 보고 우리는 6월 17일부터 7월 16일, 한 달 더 하루 식비 1만5000원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결과는? 흑자다. 2주 동안 외식을 딱 한 끼만 했더니, 유기농 식재료와 동물 복지 계란을 사 먹고도 2만 원이 남았다.
선진국에서 살아온 나의 생활 양식 그 자체가 기후 악당이었음을 알게된 지 1년 즈음 된 것 같다. 알고 난 이후 자발적으로 불편하게 산다.
'지금보다 더 편하게 살지 말자'는 내 태도는 소신일까, 광신일까. 나에게는 소신이, 누군가에게 광신이 될 수도 있다. 상대에게 강요하고 심지어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광신적 태도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책,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에서 툰베리 아빠의 간곡한 설득이 머리에 남아 떠나질 않는다.
정말 광신적인 태도는 우리를 포함한 소수 엘리트 계층이 누려 온 행동양식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겁니다. 비행기 여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은 전혀 광신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지요.
-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중, 툰베리의 가족 공저
편리한 삶 너머로 보이는, 기후위기로 인해 지속불가능한 지구에서 힘겹게 살아갈 2050년의 우리가 느낄 고통과 슬픔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과연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 얻을 수 있는 그의 행복과, 거주불능 지구로 치달아가는 데 기어이 한 몫 함으로써 얻게 될 나의 수치심 중 어디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걸까?
남편에게 미안하거나, 인류에게 미안하거나, 여러모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나날이다.
이 글은 2021년 7월 7일에 발행된 오마이뉴스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10번째 연재기사입니다.
저희 가족은 올라버린 장바구니 물가와 점점 밥그릇이 커지는 두 아이의 식성에 발맞추어 결국 식비를 2만 원으로 올렸습니다. 하루 식비 예산을 올려 부끄럽습니다. 저의 부족함을 견디고 인플레이션과 아이들의 성장이라는 상황에 맞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더 오래 절약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