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젊음답게 발산하지 않고 있는 나를 돌아보다.
우연히 SBS에서 방영하는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한국 대중음악 역사를 주제별로 다루며, 관련 뮤지션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의 방송이다. 자칭 음악 애호가이자 대중음악계의 이런저런 이야기 듣는 것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내가 볼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앉은자리에서 ‘문나이트’ 편을 다 보고 말았다.
그리고 이끌리듯 ‘홍대 앞 인디뮤직’편을 이어서 시청했다. 익숙하고 반가운 그룹들이 가득했다. 크라잉넛, 노브레인, 자우림, 브로콜리너마저, 카더가든 등등... 90년대 라이브 클럽 ‘드럭’부터 요즘 대세 잔나비 카더가든 새소년 까지 인디씬을 꿰뚫는 역사를 충실히 다룬지라 너무 재밌게 보았다. 잔나비의 보컬 최정훈 씨의 애정 담긴 진행도 마음에 들었다.
자료화면과 인터뷰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중간중간에 뮤지션들이 한곡씩 무대를 꾸몄다. 크라잉넛은 역시나 공전의 히트곡 <말달리자>를 불렀다. 여전히 듣는 이를 신나게 하는 그 에너지가 참 보기 좋았다. 뒤이어 노브레인은 역시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인 <넌 내게 반했어>를 공연했다(개인적으로 청춘98이었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지만!).
그러던 중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광경을 목격. 노브레인이 1절 쯤 끝냈을까, 갑자기 캡틴록 한경록의 ‘가자’라는 외침에 크라잉넛이 무대로 난입해 마구 뛰며 함께 노래를 불러대는 것이었다. 마이크에 얼굴을 들이밀고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발차기를 해대며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그들의 모습! 조금만 하고 들어가려나 했더니 갑자기 바닥에서 다리로 서로를 잡고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이상혁과 한경록. 그야말로 난입이었지만 누구 하나 불편한 이 없이 타는 불에 기름을 부어버리듯 흥을 끌어올리는 순간이었다. 그동안은 나 역시 방에서 방송을 보는 이가 아닌 현장의 패널, 관객이 된 기분이었다. 답답한 코로나 시국에 진심으로 신나서 몰입하는 신기한 경험... 이 무대를 본 많은 이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러고는 음악이 끝난 뒤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40대 중후반의 그들은 박자 하나하나에 진심으로 신이나서 누구 눈치 보는 것 하나 없이 이곳저곳을 방방 뛰어다니는데, 고작 20대 후반의 나는 뭐가 그리 잘났다고 점잖은 척하고 쑥스러워하며 살았던 것일까? 왜 별로 가진 것도 없으면서, 얼마 되지도 않는 자존심을 끌어안고 몸을 사리며 살아온 것인가. 왜 아직 한창인 젊음이 이미 저물어 가는 것처럼 낙담하고 흔하디 흔한 사회인이자 소위 어른의 틈에 끼려고 애썼을까! 그들의 음악과 모습은 시들어 가는 풀에 갑자기 내리는 반가운 비와도 같았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나름 ‘젊은이답게’ 살아보고자 한다. 젊어 보이게가 아닌 젊은이답게,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솔직하게 드러내며 웃고 울고 삶을 즐기고 싶다. 무엇보다 살다 보면 찾아오는 답답함과 막막함 속에서 언제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초롱초롱한 눈을 가지고 살고 싶다. 솔직히 아직도 펑크 음악은 잘 모르지만, 이 코로나 시국이 끝나면 곧바로 크라잉넛의 공연장 표를 끊고 달려가 춤출 것이다. 같이 갈 사람 언제든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