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고
허지웅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은 jtbc의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였다. 그 프로그램은 당시 1부가 정치 관련 이슈, 2부는 문화 관련 이슈를 다뤘는데, 그는 2부의 패널 중 한 명으로 작가/평론가라는 직업답게 다소 시니컬하기도 뼈가 있기도 한 이야기를 많이 던지는 사람이었다. 거기에 jtbc의 다른 인기 프로그램인 <마녀사냥>의 고정 패널로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꽤 재밌게 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처음에는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영화 평론 분야에서 그의 평가와는 별개로, 뭔가 까칠해보이고 툭툭 던지는 듯한 인상과 말투가 내게 처음부터 호감으로 다가오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그는 내 머릿속에 그저 방송에 자주 출연하고, 가끔 SNS로 설전을 벌이곤 하는 흔한 평론가로 남아있었다.
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2019년이었다.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책을 읽으며 머리를 좀 식히고 싶어 국내 에세이들이 꽂힌 서가를 두리번거렸다. 그 와중에 두 권의 책이 눈에 띄었는데,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와 <나의 친애하는 적>이었다. 주변의 다른 책들보다 깨끗한 것이 상태가 좋았고, 익숙한 이름이기에 한번 읽어보고 싶어 대출을 했다. 그렇게 부모님 집에 내려가던 금요일 밤, 달리는 ITX-새마을 안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책의 구성은 <버티는 삶에 관하여>, <나의 친애하는 적>, 그리고 최근 읽은 <살고 싶다는 농담>까지 크게 다르지 않다. 다. 그의 일상에서 일어난 일들과 그것들을 통해 느낀것들, 본인이 감명 깊게 본 영화를 통해 풀어내는 이야기들. 어쩌면 비슷비슷하고 단조로운 이야기들일 수 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움직인 요인은 다른데 있었다.
그의 책을 읽으며 내내 든 생각은 바로 '나와 너무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이다'였다. 사소한 성격부터 어떠한 문제를 대하는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 자신의 모습을 그의 책에서 그를 통해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와 성장과정이 비슷하거나,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결국 닮은 구석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책을 읽기 전에 그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해 갔다. 풍기는 인상에서부터 잘은 모르지만 나와 약간 비슷하다는 것을 인식하였고, 무의식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였던 것이리라.
그 뒤로는 이 사람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응원하게 되었다. 투병 생활을 끝내고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에 진심으로 안도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살고 싶다는 농담>은 내게 꽤 반가운 책이었다.
그는 투병 이후로 조금 변한 것 같다. 자신이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것을 느꼈으며 태도의 변화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가령 예전에는 이런저런 이슈에 대해 가끔 날을 세우기도 했다면, 이제는 그러한 감정소모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공교롭게도 최근 내가 겪은 변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투병 생활을 하지는 않았지만, 2020년 들어 더 이상 싸우는 것, 사소한 것에 감정을 들이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극단과 혐오의 시대로 치닫고 있는 요즘, 그 모든 다툼과 내 편 그리고 네 편이라는 것들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그 뒤로는 세상보다는 나 자신의 마음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평화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거기에 나도 요즘 요가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살고 싶다는 농담>은 그래서 흥미로운 에세이집이 될 수 있었다.
그와 내가 원래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라 최근의 생각마저도 비슷하게 변한 것일까? 아니면 2020년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자연스러운 생각으로 얇은 동질감을 느낀 것일까? 결론이 무엇일지라도 나는 작가 허지웅의 복귀가 반갑다. 그리고 그의 장기적인 건강과 내적 평화를 기원한다. 내 삶 역시도.
2020년 11월 29일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