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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sang is ainm dom May 25. 2016

Fáilte Ireland

2015.04.03의 기억 - 혼자가 되다.

바브라와 코넬리아와의 처음이자 마지막저녁식사는 테이블을 비워 줘야 했기에, 저녁식사 때는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커피라도 한 잔씩 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식당 밖으로 나오자 거리는 이미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괜찮은 카페를 찾아 길을 걷다 보니 열려 있는 펍이 보였다. 바브라가 소리쳤다. [저기 봐! 펍 다 닫는다더니, 저기는열려 있어! 저기 가자!] [술은 안 팔 것 같은데.] [그러면 그냥 커피나 마시면 되지! 장사하려고 열어놨을 텐데 설마 알콜 안 들어간 것도 안 팔려고?]

어제 갔던 템플바와는 다르게, 펍이라기보단 '바'라는 단어가 잘 어울릴 듯한 펍은 텅텅 비어있었다. 다른 펍 다 닫는 날 근무를 하게 되어 화가 난 건지, 뾰루퉁한표정의 여자 종업원이 다가와 말했다. [좋은 저녁. 오늘굿 프라이데이라서 알콜은 안 팔아요.] [문제 없어요. 앉아서 이야기만 할 수 있으면 돼요.] [여기 메뉴요.  원하는데 앉으시면 됩니다. 주문할 준비 되시면 불러주세요.] [네, 고마워요.] 메뉴를 보다 나는 탄산수, 바브라와 코니는 무알콜 칵테일을 주문했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우리는 식당에서 제대로 하지못한 마지막 이야기 타임을 가졌다. [그래서, 휴가가 끝난기분이 어때?] [아. 아쉽지. 그래도 이 비싼 물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좋아!] 놀랍게도 코니가 아닌 바브라가 물가 이야기를 했다. 하긴, 비싼 걸 싸다고 할 수 는 없을 노릇이니. [그래서, 윤상. 넌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할 거야?] [음. 모르겠어. 대책 없이 와서. 일단 빨리 일을 구해야 하겠지. 그래도 일단 방은 구했으니 한 숨 덜었지. 지금은 그저 홈스테이 집에서 빨리 나오고 싶어. 구한 방에 들어갈 때까지는 호스텔에서 묵어야겠지만, 거기서는 적어도 요리는 할 수 있고, 시티센터랑도 가까울 테니.] [애인도 사귀어야지! 여행지에서 로맨스가 제일 좋은 거야.] 로맨스 이야기를 꺼내며 바브라가 겉옷을 벗었다. [몰라. 나는 나 하나로도 벅찬 사람이고, 나한테 사람 관계는 항상 어려워서. 다른 사람이랑 친구로 지내는 것도 벅차서, 누군가랑 그 이상의 관계가되는 건 쉬운 적이 없었어. 뭐,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좋겠지만.] 바브라는 스카프를 벗어 옆 스툴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좋은사람 만날 거야.] 그러더니 멋쩍어진 바브라는 영수증을 들고 갑자기 종이접기를 하기 시작했다. [너 뭐하는 거야?] 코니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그거잖아! 아시안 페이퍼 아트!] 바브라가 샐쭉하니 코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말이야, 오리가미라는 거야!] 그리고 나는 샐쭉하니 바브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그거 일본꺼야. 한국에서는그냥 종이접기라고 그래.] 바브라가 꾸깃꾸깃 접힌 영수증을 나에게 내밀었다. [이거 봐! 잘했지? 이쁘지?] [이게 뭔데. 종이봉투야?] [아니야. 이거 지갑인데? 빨리 일 구해서 돈 많이 벌어서 나중에 오스트리아 놀러 오라고 접어 준 거야!] 그러더니 손바닥을 펴서 내 얼굴 앞에 들이밀며 말했다. [나도 선물 접어 줘. 너희 나라도 페이퍼아트 한다며?] 마침 가방 안에 한국에서 혹시라도,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들이 생기면 선물을 하려고 챙겨온 붓펜 몇 자루와, 한지 색종이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기억나는 종이접기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학 접는 법을 검색해 학을 접었다. 바브라와 코니는 쉬지 않고 중계를 해 댔다. [나저거 뭔지 알아! 배 접는 거야!] [아니야. 꽃 접는 거 같은데 밥시?] [다 됐다! 아하! 드래곤이었어!] 그래. 사실 종이학이 학처럼 생기진 않았다. 그래도 백조나 오리라고 해줄 줄 알았는데. 드래곤이라니. [아니야. 바브라 너 종부터 틀렸어. 이거 새야 새.] [너 새가 공룡에서 진화한 거 알고 있지? 옛날 사람들이 공룡뼈를보고 드래곤을 생각한 거니깐, 내가 맞춘 거야. 그러니깐 그건 드래곤!] 나는 학을 코니에게 내밀었다. [자, 코니. 선물이야. 한국에서는 종이로 백조(학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1000마리를 접어서 선물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이 있어. 1000마리는 아니지만,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잖아? 바라는 일들이 잘 이뤄지고,행복해지길 바랄게. 그런데 애들아, 나 이제일어나 봐야 될 것 같아. 홈스테이 집도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서, 나한테 열쇠가 없어서 너무 늦게 들어가면 좀 곤란할 것 같아.] 나는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고, 지갑을 가방에 넣고 보드복을 걸치며 말했다. [잠깐! 나는? 나도 접어 줘! 나는지갑 접어 줬잖아!] [없어. 너 내 백조보고 드래곤 오리가미라고 했잖아.] 입이 댓발만큼 튀어나온 바브라가 말했다. [알았어. 한국 백조 종이접기. 나도 접어 줘... 제발... 응?] 슈렉에나온 장화신은 고양이마냥 내 한지 색종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 키위쥬스색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불쌍한 표정을 짓는 바브라. 이제 보니 미국드라마 <애로우>에나온 <펠리시티>를 닮은 것 같다. 안경 쓴 금발여인네들은 애교부리는 법을 너무 잘 안다. [알았어. 접어줄게. 설마 그냥 갈까 봐?]바브라의 손에 들린 색종이를 접어 학을 만들고, 붓펜도 한지에 돌돌 감아 둘에게 하나씩선물했다. [우와. 이건 뭐야?] [한국에서 가져온 펜이야. 이걸로 글씨를 쓰면 동양 붓글씨처럼나와.] 둘은 글씨를 써 보더니, 신기하다며 난리가 났다. 시간이 정말 늦어 홈스테이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포옹을 하며 헤어졌다. [고마워, 윤상. 감옥에서 그렇게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아. 힘들었던 순간에 우리랑 친구가 되 줘서 정말 고마워.] 코니가 포옹을하며 말했다. [나야말로 즐거웠어. 나중에 오스트리아나, 다른 곳에서 꼭 다시 만나자. 몸 조심하고, 잘 돌아가.] 바브라가 붓펜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정말 고마워. 이 오리가... 아니. 종이접기 학도 고맙고, 붓펜도 고맙고. 우리 친구가 돼준 것도 고마워. 여기서 1년동안 행복해져. 일도 구하고, 어서 돈도 벌어서 다른 유럽 국가도 놀러 가 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섹스도 많이 하고.] [하하. 짓궂긴, 고마워.] [여자랑도 하고, 남자랑도하고, 세 명이서, 네 명이서도 하고, 난쟁이랑도 하고...] [...그만해. 그거면 됐어.] [응.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나 가야 돼. 빨리 이리 오기나 해.] 바브라와도 포옹을 하고, 코니와도 셋이서 포옹을 하고, 정말 인사를하고 펍을 나서며 소리쳤다. [조심해서 가야 돼! 잘 지내!] 그리고 둘은 동시에 손을 흔들며 말했다. [행복해져!]

밖으로 나오니, 이미 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밤이, 더블린에 도착해 밖에서 처음으로 맞는 밤이라는 걸. 낯선 도시의 밤은, 항상 무섭다.하지만 시티 센터로 향하면서, 그 두려움이 조금씩 덜해졌다. 걷다 보니, 그라프튼 스트릿에 도착했다. 길을 따라 늘어선 가게들의 쇼윈도와 가로등에서 불빛이 쏟아졌고, 사람들은저마다 짝을 지어 걷고 있었다. 가로등 밑에는 쓰레기 봉투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중절모를 쓴 버스커 두 명의 트럼본 소리가 들렸다.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였다. 머릿속으로 가사가 떠올랐다.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그런데 myself라는 단어에서, 갑자기 생각이 멈췄다. 혼자. 이제 정말, 혼자가 되었다. 아니. 일을 그만두고, 얼마 남지 않은 돈을 들고 아일랜드로 오는 비행기에 올랐을 때 부터, 혼자가 되었다. 혼자라는 두려움이 커져갈 무렵, 다리를 건너다 무심코 옆을 쳐다보았다.

검푸른 하늘 아래로 검푸른 리피 강이 흐르고, 노란 가로등은 강물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고 있었다.

강바람이 차게 얼굴을 때려도, 한 쪽밖에 없는 장갑 때문에 한 쪽 손이 시려도, 그 장갑처럼 혼자가 됐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토록 아름다운 밤 풍경을 1년동안 매일 볼 수 있다면, 조금 위험한 밤거리는,

혼자서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푸른 달빛과, 노란 가로등빛과 함께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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