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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스티스 Sep 22. 2022

내 인생에 어른 여자들

내 인생에서 부모님 외에 나를 성장시킨 존재들이 있다. 유년 시절 늘 내 주변에서 나를 지켜보며 따뜻한 격려와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여자 어른들. 그들이 있었기에 조금은 덜 이기적이고 덜 외로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집과 가까웠던 큰 외숙모 댁은 방과 후 늘 찾는 나와 동생의 아지트였다. 집 아래층에 미용실을 운영하셨던 큰 외숙모는 늘 북적이는 손님들로 바쁘셨지만 싫은 내색도, 반기는 내색도 없이 무심히 우리를 맞아주었다. 나는 외숙모의 한결같은 무심함이 편하고 좋았다. 외숙모는 가끔 매운 닭꼬치나 떡볶이와 같은 자극적인 간식들을 시켜주시기도 하고, 해리포터와 같은 최신 유행서적이나 보드게임을 던져주시며 집과 학교에서 접하기 어려운 문물로 인도해 주곤 했다. 집 밖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공간이 있다는 것은 어린시절 내게 더할나위 없는 큰 위안이었다.


둘째 외숙모는 나의 과외선생님이자 멘토였다. 외숙모가 실제로 과외수업을 해주신 기간은 초등학교 시절 3개월 남짓이었지만 이후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늘 내 학업에 관심을 갖고 조언을 해주었다. 주로 요즘 어떤 과목이 재미있는지, 대학에서는 어떤 전공을 하고 싶은지 등 요즘 흔히 말하는 공부 마인드에 관한 것들이었다. 학원 하나 없는 깡촌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외숙모의 관심 덕분이었다.


같은 동네에서 부대찌개 집을 하셨던 막내 외숙모는 다정다감한 분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일요일마다 막내 외숙모와 목욕탕에서 때를 밀고 분식집에서 김밥과 떡볶이를 잔뜩 시켜먹곤 했다. 목욕탕 회동이 취소되는 날은 꽤 울적해있을 정도로 숙모와의 이 시간을 내심 기다렸다. 가장 젊으셨던 막내 숙모는 부모님께는 말하지 못하는 고민들을 편견 없이 들어주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로마>의 한 장면. 감독은 아버지가 떠나고 어머니와 할머니, 보모와 함께 성장했던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내가 간혹 ‘이모’라고 부르거나 ‘아줌마’라고 불렀던 엄마 친구들도 나를 길러낸 여자 어른들이다. 그들은 엄마가 급히 볼일을 보러갈 때 나를 돌봐주기도 하고 끼니를 챙겨주기도 했다. 내가 울면 얼굴을 닦아주며 안아주었다. 내가 잘못을 하면 타이르기도 했고 훈계하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울음을 멈출 수 없을 때는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분식집에 달려가 떡볶이와 순대를 사다주신 어른들도 있었다. 


당신의 삶 자체가 본보기가 돼 준 여자 어른도 있다. 한순간에 닥친 경제적 어려움으로 남편이 집을 떠나자 홀로 세 아이를 키워낸 분. 새벽에 나가 자정에 자리에 눕는 살인적인 노동에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냈고, 몇년이 지나서야 생긴 커피 한잔의 여유에 행복해하는, 불행 따위는 범접할 수도 없는 무한 긍정의 태도를 지닌 사람. 미래에 대한 어두운 생각이 엄습해올 때마다 그녀의 삶을 떠올리며 매순간의 불안들과 이별할 수 있었다.  


이후 인생에서 수많은 나쁜 어른들도 만났다. 집에 화장실이 몇개냐 물으며 모욕감을 줬던 초등학교 선생님과 친구와 잠깐 대화를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뺨을 때린 중학교 선생님, 내 앞에서 서슴없이 부모님에 대한 뒷담화를 했던 친척어른들까지. 큰 상처를 받지 않고 그 순간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동시에 좋은 어른들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털어놓고 위로받았다.  




안타깝게도 두살 난 내 아이에게는 이런 여자 어른들이 없다. 이모와 고모들은 너무 바쁘거나 너무 멀리 산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의 절친들도 한 동네에 살지 않다보니 정이 쌓일 만큼 자주 왕래하지 못한다. 


동네에서 만난 또래 엄마들이 있지만 우리는 서로를 너무 조심스러워 한다. 가끔 놀이터에서 만나면 내 아이가 남의 아이에게 피해를 줄까봐, 혹은 내 아이가 피해를 입을까봐 전전긍긍해 하는 것이 최선인듯 행동한다. 나도 그랬다. 특히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에서는 남의 아이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강해 남의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해도 우리 아이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그냥 내버려두게 됐다. 


심지어 내 아이가 밀쳐져 넘어져도 섣불리 남의 아이를 훈계하기 어렵다. 상대 아이의 부모가 훈계를 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훈계를 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 그렇게 되면 다음 번에 그 아이와 마주치면 무조건 거리를 두게 되고, 부모간에도 더이상 관계를 이어나가기가 어려워진다. 그게 요즘의 방식이다.  


아이에게 여자 어른이 생길 수 있을까? 내 인생의 여자 어른들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 ‘만나게된’ 것이었듯, 아이에게 좋은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매우 오만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이가 좋은 친구를 사귀기를 바라듯 인생에 좋은 어른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주 양육자인 나와 남편이 최선을 다하면 어떤 역경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몸과 마음이 튼튼한 아이로 키울 수 있겠다. 그런데 부모의 인생도 늘 예측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듯 아이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의도와 달리 아이의 삶도 너무나 많은 요소들에 의해 덜컹거릴 수 있다. 


그래서 삶의 역경과 마주할 때마다, 나쁜 어른을 만날 때마다 인생에서 만난 좋은 어른들과의 경험이 있다면 아이는 좀 더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 제도니 공동체니 여러 궁리를 해봤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를 찾아내지 못한 나는 내 아이에게도 남의 아이에게도 좋은 어른이 되자고 또한번 다짐해보고 만다.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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