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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스티스 Mar 12. 2023

주말에 안 나가도 괜찮아

한달 동안 집콕해보셨나요?

“주말 잘 보내셨어요?”


월요일에도 어김없이 공원으로 출근한 엄마들은 주말 안부를 물으며 수다의 문을 연다. 이 시간이 가장 활기가 넘친다. 주말에 묵은 피로를 가벼운 수다로 날려버릴 수 있는 때다. 주부들도 월요병을 겪는다.


집보다 외출을 즐기는 남편을 둔 한 아이 엄마는 늘 이야기 거리가 한가득이다. 주말이면 늘 새로운 볼거리를 찾아 두세시간의 운전도 불사한다. 박물관, 아쿠아리움, 공원 등 아이를 위한 공간은 물론 힙한 카페, 뷰 맛집을 다녀와 엄마들에게 새로운 문물을 소개해준다.


엄마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나는 할말이 없어진다. 우리 가족은 주말에 특별히 나들이를 가지 않는다. 날이 흐렸던 지난 주말에는 잠깐 동네 마트에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세상과 웬수 진 마냥 한발자국도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저희는 장 봐와서 삼겹살 구워먹었어요'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남편은 전형적인 집돌이다. 결혼 전에는 놀러다니길 좋아하는 나를 따라 넙죽넙죽 잘만 다니길래 그가 나들이를 싫어한다는 사실은 결혼 이후에나 알게됐다. 신혼 초 봄내음을 맡으며 계동길을 걷고 싶어 남편의 손을 잡아끌었지만 요지부동인 그를 두고 혼자 커피를 마시고 돌아온 적도 있다. 너무 처량하고 배도 고파서 곧장 집으로 돌아왔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잘 다녀왔냐는 남편을 보며 이 남자와의 주말 나들이는 안되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독서, 산책 등의 소소한 즐길거리를 일정에 넣은 여정을 준비했다. 그가 유일하게 죽고못사는 온천 사우나로 꼬드겨 서울에서 세시간 넘게 떨어진 정선에 다녀온 적도 있다. 물론 그 여행은 남편도 매우 흡족해했다.


그럼에도 매번 나만 신나서 계획하는 주말 나들이가 슬슬 지치기도 했고 아무생각 없이 늦잠을 자는 남편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부부가 싸움을 한다면 이처럼 주로 서로 안맞는 휴식 패턴 때문이었다. 나는 나가서 주중의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하고 그는 집에 누워서 긴장을 녹이고 싶어했다.


신기하게도 아이를 낳고 미국에 오고 나서는 나의 외출 욕구가 조금은 느슨해졌다. 주중 독박육아로 주말에 돌아다닐 체력이 없기도 하고 거의 매일 야근에 시달리는 남편에게 운전대를 들이밀기가 안쓰럽고 미안해졌달까. 여튼 둘다 주중 고강도 노동으로 체력이 바닥난 결과다.


어쩌면 체력은 핑계일수도 있다. 주중 피로가 쌓이지 않은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 없는 체력을 짜내 다니는 것이 주말 여행의 묘미이거늘.


지내다보니 아무데도 가지 않는 주말도 괜찮구나 싶었다. 여기에 와서 한달 동안 주말 내내 마트와 집만 오간 지루한 주말을 보낸 적이 있다. 첫 1~2주는 나의 불만이 거의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다음 주말에는 한시간 거리 아울렛이라도 가야겠다고 벼르던 참이었다.


그런데 3주차가 되니 신기하게도 주중 육아가 좀더 수월해졌다. 남편과 아이에게 짜증을 덜 내게 되고 낮잠을 자지 않고도 하루를 버틸 수 있게 됐다. 그 덕에 짬을 내 글을 쓰거나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 한편을 볼 수도 있게 됐다. 주말에 밀린 낮잠도 자고 대청소도 하고 나니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주중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장 좋은 점은 가족 간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질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라 우리의 것이 더 낫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우리집의 경우는 남편의 잦은 야근으로 주말에만 함께 보낼 수 있다. 집에 있으면 외출해서 이동하고 식당에서 대기하고 메뉴를 고르고 계산을 하느라 흩어진 시간들을 서로에게 더 할애할 수 있다. 함께 요리를 하며 수다를 떨거나 아이와 온몸으로 놀아주며 살을 부비는 시간이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는 더 필요한 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파티가 일상인 이웃집이 우리 가족을 초대할때마다 남편은 처음 한두번은 참석하더니 번번이 거절했다. 남편의 이유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소중한 주말을 남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흥을 내는 데 쓰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나들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아이에게도 새로운 경험이 중요하고 부모(나)도 콧속에 바람을 쐬어줘야 반복되는 일상을 환기시킬 수 있으니.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멀리 나가줘야지! (주말마다 캠핑 다니시는 분들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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