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돌 아이의 언어와 영어
아이가 두 돌이 되자 제법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유아기 때 언어 발달은 아이에 따라 편차가 크고 느림이나 빠름이 두뇌 발달의 척도가 되지 않는다고 들었기에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거주지가 해외이고 주변에 눈에 띄게 말이 빠른 또래 아이가 없어서 그런지 조바심이 나지 않았다.
마음 한켠에는 은근히 아이가 얼른 말을 하기를 기다렸던 것인지 아이가 참새같은 입으로 한두 마디를 열 때마다 그렇게 예쁘고 신기할 수가 없다.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이다.
가장 신기한 순간은 자기 감정을 표현하거나 책에서 읽은 문장을 일상에서 말할 때다. 크레파스로 그림을 한참 그리다가 갑자기 “너무 재밌어! 즐거워!”라고 외치며 방방 뛰어다닌다. 간만에 일찍 들어온 아빠가 비행기를 태워주면 “너무 좋아! 신나!”라고 연신 소리친다. 남편도 아이같은 얼굴로 돌아가 온몸에 더 힘을 싣는다.
추피 시리즈를 좋아하는 아이는 요즘 아빠만 보면 “아휴 깜짝이야!”라고 있는 힘껏 소리친다. 책 내용 중에 추피 아빠가 집에 돌아와 유령 분장을 하고 있는 추피를 보고 놀란 척하며 하는 말인데 아이는 그 말이 정말 재미있나보다.
지난해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미국땅을 밟게 됐을 때 가장 신경쓰였던 건 아이의 언어 발달이었다. 주변에서는 아이 영어교육 걱정은 없겠다며 다들 부러워했지만 내 속은 그렇지 않았다. 평생 이곳에 살 것도 아니고 몇년간 머무르다 돌아갈텐데 아직 말이 트이지도 않은 아이의 모국어와 영어가 이도저도 아니게 될까봐 걱정이 앞섰다.
이곳에 오자마자 이중 언어 교육 사례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언어를 구사하는 수준은 개인 차가 크기에 동시에 배우는 것과 모국어(주요언어)를 먼저 배우는 것 중에 무엇이 더 낫다고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워보였다.
가끔 놀이터에 나가보면 이곳에서 태어나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쓰는 아이와 부모를 종종 본다. 마음만 먹으면 두 언어를 균형있게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기본적인 한국어도 잘 하지만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고 집에와서 학습도 영어로 하다보니 한국어보다는 영어를 편하게 구사했다. 결국에는 둘 중 하나는 주요 언어가 되고 나머지는 부수적인 언어로 밀려날 수 밖에 없는 듯했다.
이곳에서 태어나 삼십년 넘게 살고 있는 한 한국인 남성은 학창시절 내내 주말마다 한국어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그의 한국어는 가벼운 일상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집에서도 한국어를 쓰고 수업도 열심히 들었는데도 완벽한 한국어 구사는 힘들다니 언어는 투입한 시간만큼 결과가 보이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욕심이겠지만 선택을 하자면 나는 아이가 우리말을 잘하는 아이로 컸으면 한다. 줄임말이니 MZ세대 언어니 날이 갈수록 내가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 난무해질 때마다 나는 더욱 제대로된 한국어를 아이가 배우고 다양한 표현들을 구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한다.
모국어에 대한 집착은 어릴 때 경험해본 유학생활에서 비롯됐다. 중학교 때 홀로 미국에서 일 년간 유학생활을 하고 다시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덕분에 영어 실력은 좋아졌지만 한국어를 거의 쓰지 않았던 일 년간의 공백은 내 한국어 실력에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수능시험 언어영역을 준비하느라 꽤나 고생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대로된 ‘언어 구사 능력’이라고 느꼈다. 여기에는 상황에 따른 적절한 어휘 표현과 글쓰기, 독해력 등 종합적인 언어 능력이 포함된다. 이 능력을 제대로 키우려면 어릴 때부터 중심이 되는 하나의 언어가 있어야 한다. 탄탄한 언어를 뿌리 삼아 사고력도 기를 수 있다.
외국어는 이 과정을 거친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짧은 유학생활을 하며 얻은 것이 있다면 영어든 어떤 외국어든 배우려는 의지와 투자하는 시간만큼 실력이 오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중학교 때 영어를 시작한 나는 20년 만에 다시 찾은 미국에서 일상에서 큰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물론 버벅댈 때도 많다.) 평소 외신이나 영미권 드라마를 즐겨보며 영어에 대한 흥미를 놓치지 않은 덕인 것 같다.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보낸 남편이 지금도 짬을 내 중국어 소설을 읽는 모습을 보면 언어는 평생 갈고 닦아야 하는 영역인 듯 하다. 미국 원어민이라고 해서 뉴욕타임스를 다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월스트리트에서 일한다고 해서 슬랭이나 유행하는 언어들을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언어는 모국어라도 평소 독서와 글쓰기 습관에 따라 언어 수준이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다.
나는 되도록이면 아이에게 영어를 노출시키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놀이터에 가서 영어를 쓰는 엄마들과 아이들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쓰긴했지만 집에서든 마트에서든 아이와 대화할 때는 우리말을 쓰고 있다. 곧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영어를 배워야하는 환경에 놓이게 될테니 그 전까지라도 우리말을 습득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요즘 일상 속 다양한 단어를 익히고 있는 아이는 원하는 바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주로 먹을 것들이다. 하루는 배가 고프다는 아이에게 저녁으로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된장찌개에 두부랑 밥 먹고 싶어요. 그리고 크랜베리 주스도 주세요”라는 아주 구체적인 주문이 돌아와 크게 웃었다.
아이는 파스타도 곧잘 먹지만 된장찌개!라고 외치며 토종 한국인의 취향을 드러낼 때마다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영어를 쓰는 어린이집에 가서도 된장찌개를 좋아하듯 모국어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갔으면. 또래 친구들이 영어를 쓴다고 해서 모국어가 촌스럽다고 여기지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