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멀어지려는 마음
엄마의 전화를 잘 받지 않은 지 꽤 됐다. 아직 일을 하시는 친정 엄마는 일주일에 한두 번 틈이 날 때마다 영상 통화를 걸어온다. 한국과 이곳 미국은 시차가 크다 보니 연락이 어려운 점도 있지만 지난해까지 일주일에 두세 번, 많게는 거의 매일 연락했던 점을 생각해 보면 시차는 핑계인 것 같다.
엄마와의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걸로 보아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나는 쪼잔하게도 서운함이 생기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상대방과 거리를 두게 된다.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라면 자연스럽게 그 감정이 풀리지만 물리적으로 자주 연락이 어려운 사이라면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일 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기도 한다.
서운한 감정은 아마 지난해 겨울 한국을 방문하며 친정에 머물 때 생겨난 것 같다. 친정을 찾았을 때 부모님은 매우 바빠 보였다. 아빠는 퇴직 후 타지에서 작은 사무일을 하느라 주말에만 집에 들렀다. 여전히 주말엔 지인들과 취미인 운동을 즐기느라 먼 타국에서 건너온 딸과 손녀딸과 시간을 보낼 겨를이 없었다.
엄마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일을 하느라, 지인들과의 연말 모임에 나가느라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가끔을 마트에서 장을 잔뜩 봐와서는 음식도 만들어줬지만 우리 네 식구를 위한 주방을 닫은 지 오래라 맛은 예전 같지가 않았다. 하루는 집 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 엄마에게 부탁을 하고 장을 봐왔는데 친정에 머무는 동안 결국 김밥은 맛보지 못했다. 친정을 떠나오는 날까지 그게 참 서운했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간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찾은 고향집이었지만 난생처음 감기와 돌발진을 앓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니는 데 귀한 시간을 다 썼다. 낮이면 아이와 나만 남겨진 텅 빈 집에서 지내다 보니 친정에 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빨리 남편이 있는 미국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친정은 내가 기대했던 곳이 아니었다. 둘째를 임신한 내가 첫째를 데리고 들어가 마음 놓고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쉼터가 아닌 고단한 삶의 전쟁터였다. 주변에서 주말마다 친정에 가서 밥도 얻어먹고 가끔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기도 하며 푹 쉬고 오는 소위 ‘친정 찬스’라는 걸 누리는 집들을 종종 봐왔다. 그건 아마 퇴직 후 언제든 자식들을 반겨줄 수 있는 정신적, 물질적 여유가 있는 부모님이 계셔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이번 방문을 통해 깨달았다.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둘 중 하나만 여유가 있어도 나을 텐데 내 부모님은 둘 중 어느 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딸과 손녀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어색하고 버거워 보였다. 어쩌면 두 분은 자녀들이 모두 출가한 후 각자 생존을 위한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사이가 그닥 좋지 않은 부모가 힘든 노후를 맞이하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애정이 넘쳤던 외조부모님은 늘 우리를 푸근하게 맞아주셨다. 엄마는 수시로 우리 손을 잡고 외갓집 문턱이 닳도록 그곳을 드나들었고, 나도 집보다 외갓집에 가면 마음이 더 편안했다.
어린 시절부터 잦은 부부싸움을 했던 내 부모님은 자식이 출가한 후 부부가 함께하는 삶보다는 각자 행복하게 지내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한 듯 보였다.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남남과 다름없는 삶. 그런 당신들의 삶에 우리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간간이 전화 안부를 묻고 아이 돌잔치나 명절 때 얼굴을 보는 사이로 자연스럽게 조율됐다.
이대로 가면 서로 얼굴을 보게 될 일은 더 줄어들 수도 있겠다. 아이가 크고 내 일을 하느라 나는 더 바빠질 테고 명절에도 차가 막힌다는 핑계로 한 두 번은 건너뛰는 상황이 생길 것이다. 서로를 만나야겠다는,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사라진다면 말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서운한 감정조차 사라져 버린다면 이후에 우리 가족들 사이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가족이라는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서로에게 필요와 의무가 느슨해지는 은퇴와 자녀의 독립 이후에는. 결혼 후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챙겨주고 연락하는 시부모님의 모습을 지나친 간섭으로 받아들여 괴로웠던 적이 있다. 방치와 독립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던 부모 밑에서 자란 나로선 그런 분위기를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주변에 부모와 잘 지내는 집들을 보면 서로 살뜰하게 챙기고 연락을 주고받기에 여념이 없다. 한때는 저렇게까지 노력을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는데 그 정도의 공을 들여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가족이라는 관계인 것일까.
예전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족은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입양된 한 소녀가 양부모 밑에서 잘 자라다가 자신을 낳아 준 친부모가 나타나 함께 살다가 오히려 불행해졌다는 사연을 두고 나온 말이었다. 의무로 이어지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서로 정을 내고 끊임없는 관심으로 기름칠을 해줘야 녹슬지 않을 수 있다.
내 아이에 대한 애정이 커질수록 아이와 나의 미래를 상상하게 되고, 지금 내 부모님과 나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아이와 잘 지내고 싶다고 다짐하면서도 내 부모와의 관계가 온전치 못한 상황에서 그 일이 순탄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글을 쓰면서 부모님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정리해 보기로 했다. 친정집 분위기가 삭막했던 건 내 잘못도 아니고 부모님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지금이라는 결과가 어쩌면 부모님에게는 최선일 수도 있다. 부모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두 분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러나 자식으로서 점점 멀어지려는 마음은 나도 어찌할지 모르겠다. 내가 얼마나 밝고 행복해져야 어둡고 삭막한 그곳으로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 웃으며 나올 수 있을까. 억지로 내 마음을 밀어붙이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내게도 그만한 여유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기가 지나가고 가까워질 기회가 올 수도 있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지내주시길 만을 바라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