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산기
미국에서 둘째를 낳고 백일이 된 지금까지 산후우울증 검사를 일곱 번이나 했다. 우울증 증세가 있어서 검사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출산을 앞두고, 출산 당시, 출산 후 병원에 갈 때마다 미국인들은 내게 질문들이 앞뒤로 빼곡히 채워진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첫 검사를 했던 곳은 출산을 바로 앞두고 산전 검사를 했던 진료실이었다. 이때는 이런 검사가 처음이라 모든 질문을 꼼꼼하게 읽어보고 신중하게 답을 체크했다. 주로 ‘최근 일주일 동안 웃을 만한 일들에 크게 웃은 적이 있는가’, ‘아무런 이유 없이 불안을 느낀 적이 있는가’, ‘어떤 일에 압도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등의 질문이었다.
두 번째 검사는 분만을 앞두고 병실에서 진행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직후 병실에서 젖을 물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세 번째 검사지가 날아왔다. 여전히 성실히 질문에 응했지만 이렇게까지 자주 해야 할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네 번째 검사는 황달이 있는 아이를 안고 소아과를 방문했을 때였다. 아이와 관련된 서류를 작성한 뒤 마지막 페이지에 은근슬쩍 껴있는 낯익은 종이를 발견했다. 산후우울증 검사지였다. 이제는 질문을 자세히 읽지 않고도 답을 고를 수 있는 수준에 올랐다.
그 후 아이의 황달 검사를 하려고 병원을 몇 차례 더 찾았고 갈 때마다 검사를 했다. 검사는 아이의 2개월 검진을 하러 병원을 방문했을 때가 마지막이었다. 아마 다음 달 예정된 4개월 검진 때 여덟 번째 산후우울증 검사를 하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검사를 반복하면서 이 집요한 미국의 의료시스템에 감동받고 말았다. 의료전문가에게 산후우울증 검사를 반복하는 이유를 물어보진 않았지만 왜인지 알 것 같았다. 산모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할 수 있다는 것, 새 생명이 최선의 보호를 받아야 하듯, 산모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매번의 이 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우울증 검사지를 보지 않고도 내 기분을 체크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가족 중 누군가로부터 상처가 되는 말을 듣고 기분이 가라앉은 적이 있다. 마음이 괴로우니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고 이로 인해 집안이 엉망이 되자 스스로를 자책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그때 나도 모르게 산후우울증 검사지의 질문들을 떠올렸다. 평소보다 우울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그 후 나의 마음은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미국 병원들이 산후우울증 검사를 반복하는 이유가 이런 훈련의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닥쳐올 육아의 너울 속에서 언제든 모든 것을 멈추고 스스로의 기분을 돌볼 수 있도록 말이다.
산모를 배려하는 분위기는 미국 출산 과정 곳곳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병원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모든 의료진들이 출산 과정 내내 친절함을 잃지 않았다. 진통만 제외하면 호텔 침대에 누워 쉬지 않고 룸서비스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들의 사려 깊은 배려에 나는 단 한 번도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고, 모든 감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용됐다. 그곳에서 만난 모든 스텝들이 아이가 태어나는 이 날만을 위해 평생을 갈고닦았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고귀한 경험이었다.
한국에서 첫째를 출산했을 때를 떠올렸다. 내 기억으로는 한 번도 산후우울증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거나, 기억이 잘못되었다면 아마 산후 검진 때 한 번 받았을 것이다. 첫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퇴원한 후 산후조리원에서 2주를 보낸 시간까지 나의 마음이 괜찮냐고 물어봐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첫 아이를 낳은 후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의 기쁨, 설렘, 불안과 슬픔 등의 극단을 오가는 다양한 감정이 몰아쳤다. 호르몬의 영향이 크겠지만 처음 겪어보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압도돼 샤워를 할 때마다 눈물을 쏟아냈었다.
작게 태어난 아이가 황달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것조차도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치료받으면 괜찮을 거라는 얘기를 위안 삼아 듣긴 했지만 엄마 탓이 아니니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얘기를 해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 병원에서 지내면서 감동받았던 또 하나는 ‘컨시어지 서비스’였다. 이는 호텔에서 주로 투숙객의 개인 비서처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데 출산 후 몸과 마음이 지친 산모와 가족들을 위해 여러 업무를 병원에서 대리해 주는 것이다. 원하는 식당에서 음식을 사서 병실까지 가져다주거나 카시트 등 필요한 물건을 대신 쇼핑해주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배우자가 산모를 위해 이런 일들을 해주지만 여기선 배우자가 늘 산모 곁을 지킬 수 있도록 가족 전체를 배려해 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산모와 아이를 대하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우리의 것과 얼마나 다른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아이만큼이나 산모를, 더 나아가 가족을 배려하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임산부석이 다른 누군가로 채워져 있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던, 전업주부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냐는, 갓난쟁이 내팽개치고 일하러 가냐는 비수가 여전히 난무하는 곳에 사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