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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홍 Aug 24. 2022

어느 수다쟁이의 작은 마음

너무 저만 말한 거 아니죠?

아무말이나 신나서 해버리고 마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후련함과 동시에 조금은 겸연쩍어서 마음이 푸석해진다. 대화로 감정을 발산하고 나누는 일에 허기졌는지 왈칵 쏟아낸 말들에 스스로 놀라고 만다. 어쩌면 말을 많이 한 것 같다는 걱정보다는 너무 빠르게, 두서없이, 짧은 호흡으로 말을 쏟아내지 않았나라는 걱정 쪽이 더 크다. 나는 언제나 상대가 나를 어느정도 받아들이는지가 신경쓰이고, 쏟아낸 말이 그 경계를 침범했는지 곱씹고 만다. 그렇게 한껏 구깃해진 마음을 다림질하면서 다음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릴없이 한다.




말문이 트이기 전까지는 스스로를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언제나 나는 이방인이었다. 선비 같은 집안 분위기와, 남고와 공대, it 회사에서 나같은 결의 사람은 다소 이질적인 존재였고, 그렇게 '조곤조곤 말하길 좋아하는 수다쟁이'는 오랜 시간 수많은 말을 안으로 삼켰다. 어쩌다가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연인이 된다던지 친한 친구가 되는 일은 없었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독서모임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비슷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책을 소개하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엉망진창으로 말을 끝내고 자책을 했지만, 그래도 그 날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통한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아, 나는 말이 없는게 아니라, 말이 통하는 사람들을 발견하지 못했던거구나.'




그렇게 말이 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목소리를 조금씩 내었다. 나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대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말 그대로 대화다운 대화. 말이 오고가고 주고받는 감정과 생각안에서 깊어지는 관계. 다정하고 사려깊은 대화, 깊은 취향을 탐구하는 대화, 일상에서 쌓인 잡다구리한 수다를 나누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어떤 사람들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수다쟁이가 되고 만다.


내가 무장해제하고 마음을 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본 적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분위기가 비슷하다거나, 가치관이나 생각이 닮았다거나, 말을 잘 들어준다던가, 하나의 단어로 담을 수 없는 느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내가 가깝게 지내고 싶은 사람, 분명 'OO 한정 수다쟁이'인데, 비어있는 칸에 맞는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내 마음은 어떤 사람들에게 열리는 걸까. 어떤 사람에겐 말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를 마음껏 뿜어내고, 어떤 사람에겐 내 이야기를 신나서 조잘거리는걸까. 빈 칸에 이런 저런 단어를 넣어보았다. 궁리를 해보다가 '결이 맞는'이라는 단어가 어울려보였지만 그건 당연한 말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고는 그만둔다.




다시금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는 수다쟁이가 된다. 대화가 즐겁고 깊이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삶의 큰 기쁨 중 하나이다. 신이 나서 들뜬 마음으로 조잘대고 나서 헤어지면,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상대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찬다.


'혹시 제가 너무 수다스럽진 않나요?

너무 아무말이나 한 것 같아서 미안한데요.'

'저희 사이는 아직 이 정도는 아니려나요?'


언제나 관계의 거리감을 가늠하고 선을 넘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직 이런 구겨진 작은 마음을 살며시 꺼내보일 만큼 가까운 사이는 없어서 늘 가슴 한 켠이 근질거린다. 오늘도 즐겁고 유쾌하고 다정한 대화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런 사람하고 가까워질 날을 상상하며 일상을 보낸다. 그때는 조금 숨을 고르고 말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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