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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동재 Apr 18. 2024

직무오너십을 회복하려면, ‘의사결정’ 어떻게 해야 할까

들어가며


오늘은 간단한 체크리스트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아래 4개의 항목 중에 나에게 해당되는 것이 몇 개인지 체크해보시기 바랍니다.  


✅ 나는 일주일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회의가 3개 이상이다.  

✅ 우리 조직은 품의에 의한 기안제도를 가지고 있고, 때론 최종 의사결정까지 기안 이후 일주일 이상 소요되기도 한다.  

✅ 우리 조직의 구성원들은 실행하는 사람과 결정하는 사람, 책임지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 우리 조직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의사결정권한이 있는 관리자의 의중을 파악해서 입맛에 맞는 제안서와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을 뜻한다.  


만약 여러분이 체크한 항목이 2개 이상이라면 오늘 살펴볼 내용이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체크한 항목이 많을수록 세 가지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직무설계가 잘못되어 있어 회의를 통해 업무를 실행하고 있거나, 조직 내 의사결정 체계가 왜곡되어 직무담당자의 오너십이 결여된 상태로 일을 추진하는 경향이 있거나, 의사결정하는 사람에게 정보가 효과적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아 좋은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환경일 수 있습니다. 제목에서 보신 것처럼 오늘 주제는 의사결정체계 입니다. 앞서서 성과평가, 경영계획, 성과계획을 다루면서 성과관리시스템의 여러 가지 도구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밖에도 직무R&R, KPI, 피드백, 역량개발 등이 있습니다.) 세 가지 도구들도 모두 중요하지만, 구성원들이 성과관리시스템에 몰입하는데 있어서 의사결정체계 만큼 중요한 기반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식노동자의 ‘의사결정’은 곧 성과를 실행해나가는 것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위계조직 VS 역할조직 


우리는 일을 하면서 종종 동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나한테 권한이 없어.” 그러면서 “우리 조직문화는 수직적이야. 좀 더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되어야 해.”와 같은 말들도 뒤따라 붙습니다. 과연 수직적인 조직문화, 수평적인 조직문화란 무엇일까요? 알듯 모를 듯 뭔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처럼 편안한 관계라면 수평적인건가? 조직장이 강압적인 태도를 자주 보이면 수직적인건가?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모호함을 좀 더 선명하게 해주는 개념이 있었는데 바로 위계조직(Rank-driven Organization)과 역할조직(Role-driven Organization)입니다. 위계조직은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은 그 명령을 수행하는데 초점을 둡니다. 역할조직은 각 역할에 따라 직무오너십을 갖고 결정권을 갖는 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현실에서 위계조직과 역할조직은 연속적인 개념이고, 모든 조직은 중간 어디 즈음에 존재합니다.

위계조직과 역할조직의 구분은 의사결정 권한의 스펙트럼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위계조직에서는 권한의 문제를 0과 1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요. 조직장에게 있으면 담당자에게는 없고, 담당자에게 있으면 조직장에게는 없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에 가까운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죠. 조직장은 지시하는 사람, 담당자는 지시 받는 사람. 조직과 개인을 이분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현실은 이렇게 단순하지만은 않겠죠. 책임과 권한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잘게 썰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임과 권한에도 스펙트럼이 있다.


애자일한 조직변화에 대한 그루인 위르헌 아펄로(Jurgen Appelo)는 그의 책 매니지먼트 3.0에서 권한에도 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권한의 스펙트럼을 이해한다는 것은 위계조직과 역할조직을 구분하는데 있어서도 꽤나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위르헌 아펄로가 말하는 권한의 7단계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1) 통보(Tell) : 결정을 내리고 알려준다. 사실상 권한은 전혀 없다. 토론은? 당연히 없다. 

(2) 설득(Sell) : 결정은 내리지만, 아이디어를 설득함으로써 그들의 헌신을 얻으려고 한다. 

(3) 상의(Consult) : 결정을 내리기 전에 무엇을 고려할지 의견을 듣는다. 다만 결정은 내가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4) 합의(Agree) :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룬다. 모든 사람의 의견은 동등하다. 

(5) 조언(Advice) : 의견을 제시하지만 결정은 그들이 한다. 

(6) 질의(Inquire) : 그들이 알아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나중에 그 결정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부탁한다. 

(7) 위임(Delegate) : 전적으로 알아서 하게하고 세부 사항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의 조직 안에서도 단위조직 장마다 스타일이 다를 수도 있고, 조직장과 구성원의 역할과 관계설정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 조직이 1번에 가깝게 의사결정을 한다면 위계조직일 가능성이 크고, 7번에 가까울수록 역할조직일 가능성이 큽니다. 내가 만약 조직장이나 구성원이라면 권한의 7단계에서 내가 주로 활용하거나 위치한 단계가 어디인지 회고해보고, 단계를 1~2개 높이려면 어떤 시도를 해보면 좋을지 액션플랜을 세워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품의에 의한 결재시스템 “이렇게 해도 될까요?” VS DRI “이렇게 하겠습니다.”


시스템적인 고민도 필요합니다. 여전히 한국의 많은 조직들은 품의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품의제도란 하나의 의사결정을 위해 아랫사람부터 맨 윗사람까지 단계적으로 달라붙어 일하는 제도 입니다. 품의의 역사는 18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지제지’의 전신인 ‘쇼지회사’의 기록문서 중에 ‘품의서’라는 이름의 문서가 처음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품의제도가 150여 년 전 일본에서 정착하게 된 이유는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 있어 매우 엄중한 질서를 중시하던 에도시대의 가부장제도가 당시에까지 짙게 남아 있었으며 그것이 회사의 의사결정제도에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설이 일반적입니다. (2014. 최동석) 이런 방식의 의사결정은 중간에 한명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그 사안은 실행될 수 없게 되므로, 결정권자의 의중을 잘 파악해서 품의서를 써야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고, 마치 결재라인에 있는 모두가 의사결정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품의에 의한 결재시스템이 ‘이렇게 해도 될까요?’라면 ‘이렇게 하겠습니다.’로 대표되는 DRI(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 : 직역하면 직접책임자)라는 제도이자 개념이 있습니다. DRI는 Apple에서 처음 도입되었고, 이후 다른 기업들에서도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는 토스가 대표적으로 이 개념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토스팀의 문화를 소개에 글에 따르면 DRI는 완전한 위임을 한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자임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최종 결정을 한다는 것은 독단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정보와 의견 속에서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경청하는 것이 모든 DRI의 가장 중요한 직무능력 중 하나라고 강조합니다. DRI가 충분한 경청 후 결정을 했다면, 만약 누군가 그 결정에 동의할 수 없더라도 따를 수 있어야 하고, 그 결정에 승복하고, 그 결정을 지지하며 그 결정이 옳은 결정이 될 수 있도록 모두가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치며


지난해 2월, 삼성이 경영진과 임원까지 수평호칭을 사용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영어이름, 한글이름, 별명이 선택가능하다고 소개되어 있는 이 기사의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JY, 결재 바랍니다”...삼성, 오늘부터 임원도 수평호칭」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조직 내 의사결정체계에 대한 인식이 뿌리 깊게 위계적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스타트업처럼 의사결정의 속도가 생존에 필수적인 조직이 아니라면. 기존에 레거시가 많고 시스템이 이미 자리 잡혀 있어서 보고, 결재가 일반화 되어 있는 조직이라면. 의사결정체계의 변화가 급진적이고 위험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고민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구성원들의 직무오너십을 높이기 위한 훌륭한 레버리지가 될 수 있습니다. 원리는 단순합니다. ‘책임지지도 못할 텐데 마음대로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확인한 뒤 직무담당자가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것입니다. 특히 예전처럼 벤치마크를 통해서 성장하는 패스트팔로워가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이젠 남들이 안한 것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면, 역할조직에 가까운 방향으로 의사결정체계를 기민하게 변화시켜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향점은 명확하고 문제는 방법과 변화의 속도입니다. 대표적인 위계조직으로 알려진 공무원 조직에서 혁신사례로 손꼽히며 65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충주시 유튜브’의 성공비결은 ‘결재 없는 업로드’였습니다. 



https://blog.clap.company/job_ownership/

*클랩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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