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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움 Mar 27. 2021

물 먹은 별이, 반짝

정지용 「유리창」

오늘은 우리 근현대사에 손꼽을만한 대표 시인 정지용에 관해 들려드릴게요.


1902년에 태어난 정지용 시인은 향수라는 시로 잘 알려져 있어요. 스물한 살 그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전에 쓴 시라고 하네요. 충북 옥천에 가면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 있는데요. 제가 살고 있는 곳과는 가까워서 종종 찾게 되는 곳입니다. 옥천은 '실개천이 휘돌아나가는'는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고즈넉한 고장입니다. 봄비가 내리던 지난 주말 시인의 생가를 찾았어요. 어느새 노란 산수유가 피었더라고요.


충북 옥천 정지용 생가


천천히 생가를 둘러보고 문학관에 들어갔어요. 코로나로 한동안 관람이 어려웠는데 다시 개관했답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시인의 삶과 세계를 아우르는 작품들이 있어 오래 머무르게 되는 공간입니다. 전시실에는 '향수'라는 노래가 흐르고, 시낭송도 들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 정지용 시집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가 추천 위원을 맡았던 월간 문예잡지 문장(1939년 2월~1941년 4월)도 직접 볼 수 있어요. 정지용은 '문장'을 통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을 추천했지요. 이들이 청록파 시인입니다.


충북 옥천 정지용 문학관


정지용 시인은 참신한 이미지와 감각적인 시를 주로 썼는데요. 오늘날 많은 시인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요. 잘 알고 계실 윤동주 시인 역시 그랬고요. 윤동주 시인 사후에 출간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을 정지용 시인이 썼는데요. 두 사람의 귀한 인연에 대해서는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 안에서 들려드릴게요. 정지용 시인의 시 원문은 한자가 많아서 읽기가 수월하지 않은데요. 민음사에서 출간된 정지용 전집 시1』(권영민, 민음사, 2016)에서는 현대어로 바꾼 시편과 원문을 한 번에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시인의 절제된 감정이 잘 드러난 시를 한편 읽어볼까요.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에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 「유리창」전문



어떻게 읽으셨나요? 정지용 시인이 스물일곱에 어린 자식을 여의고 쓴 시가 유리창」입니다. 시적 화자는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넣습니다.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리'는 모습은 아이의 모습과 같아요.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는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비통함입니다. '물 먹은 별, 반짝' 아버지 눈에 가득 차 있을 눈물이 쓰라립니다. 그토록 '외로운 황홀한' 마음에 절로 슬퍼집니다. '산새처럼 날아'가버린 자식을 바라보는 허망함을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정지용에게 시란 하나의 생명체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는 시의 탄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꽃이 봉오리를 머금듯 꾀꼬리 목청이 제자리에 트이듯 아기가 열 달을 채서 태반을 돌아 탄생하듯'이라고요. 언어가 꽃이 되고, 꾀꼬리의 노랫소리가 되고, 아기의 첫울음이 된다면 그것이 바로 시겠지요. 1945년 그토록 기다리던 독립이 왔지만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재조도 탕진하고 용기도 상실하고 8.15 이후에 부당하게 늙어간다'라고 탄식했던 정지용은 1950년 9월경 미군 폭격에 의해 경기도 동두천 인근에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120여 편의 시를 써낸 민족 시인 정지용, 그의 시에 담겨 있는 생명의 기운 덕분에 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느끼는 봄날입니다. 당신의 일상 속에서 정지용의 또 다른 시편을 만나실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아끼고, 아껴둔 시인 윤동주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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