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이먼 제임스 코플런드의 책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
국경을 넘어 세계 여기저기서 젊은 남성들의 극우화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2020년대 극우화 흐름 자체는 성별이나 세대에 국한되지 않는 사안이지만, 유독 젊은 남성들이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2025년 넷플릭스를 강타한 화제작 <소년의 시간>이 이를 잘 담아낸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고 프랑스에서는 중학교 수업 교재로 활용될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10대, 20대의 극우화는 사회 문제로 거론된다. 서부지법 난동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용의자들도 대부분 젊은 남성들이었다. 여러 분야에서 지적되는 청년 남성의 극우화는 어제오늘 벌어진 사건이라기보다 온오프라인을 배경으로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현상에 가깝다.
2025년 11월, 극우화 추세 때문에 우려하는 시기에 읽어보기에 좋은 책이 출간됐다. 호주 국립 대학교 연구원 사이먼 제임스 코플런드가 남초 커뮤니티 속 여성혐오를 분석하고 쓴 <청년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다.
상처 입은 남성과 극우의 탄생
저자는 2019년작 영화 <조커>에 관한 이야기로 책의 초반부를 시작한다. 그는 영화 <조커>가 “남성을 면밀히 관찰하고,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닌 복합적인 존재로 그려내며, 때로는 그들에게 공감까지 하는” 작업을 잘 해냈다고 설명한다. <청년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 역시 그러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연구를 담았다면서 말이다.
다만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공감’은 극우화 또는 여성혐오에 물든 청년 남성의 생각과 반응을 모두 긍정하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니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남성의 모든 불만을 여성이나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는 건 옳지 않으며, 진짜 문제는 복잡해진 자본주의 사회에 있다는 분석을 덧붙인다.
분석을 위해서 저자는 ‘매노스피어(Manosphere, 남성계)’라고 불리는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의 수많은 글들을 몇 년에 걸쳐 읽으며 연구했다. 다양한 국가의 남초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쓰는 남성들은 ‘남성 권리 운동가’, ‘픽업 아티스트 또는 유혹 사업 종사자’, ‘인셀’, ‘믹타우(Men Going Their Own Way의 줄임말 MGTOW, ’자신만의 길을 가는 남성들‘이라는 뜻)’까지 크게 네 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그 중 대부분의 남성은 타고난 외모 등 요인으로 여성과 연애나 성관계나 불가능하다고 믿는 ‘인셀’ 집단과 여성에 대한 분노와 환멸로 연애 또는 성관계를 스스로 거부하기로 선언한 ‘믹타우’ 집단에 속한다.
“작성자는 외모 때문에 여성이 인셀과 성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자신들이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박탈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인셀이 가진 불만의 핵심이다. 그들은 친밀감과 사랑, 섹스가 줄 수 있는 만족에 집착하면서도 그것을 실현하지 못할 때마다 반복적인 좌절을 경험한다. 이 좌절은 감각으로 이어지며 결국에는 삶의 목적마저 상실하게 만든다. 남성에게 사랑과 섹스가 인생의 전부라면 그것의 부재는 곧 인생 전체의 부재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70~71쪽)
저자가 관찰한 남초 커뮤니티 속 ‘인셀’들의 특징은 여성과의 성적인 관계를 삶의 목적처럼 삼으며 집착하고, 여성과의 성관계를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기존에 누렸던 것이라고 인식했던 섹스를 못 하게 된 박탈감이 남초 커뮤니티 전반에서 목격되고, 이로 인해 상처 입은 남성들이 극우적 발상에 쉽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매노스피어 남성이 갈망하는 것은 과거의 남성성이다. 여기서 과거란 남성은 본질적으로 강인하고, 합리적이며, 논리적이고, 독립적이며, 갈등을 통한 문제 해결에 능숙한 존재로 여겨진 반면에 여성은 감정적이고, 나약하며, 의존적이고, 집단적인 존재로 규정되었던 시대를 뜻한다. (중략) 매노스피어 남성은 그 정체성에 페미니즘이 가한 공격을 문제 삼는다. 그들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남성성이라는 개념을 부당하게 비판하고 해체함으로써 남성에게서 남자다움의 의미를 빼앗았다.” (128~129쪽)
허무주의의 공유, 폭력으로 이어지기까지
저자는 남초 커뮤니티에도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많은 집단이 그러하듯이 남성들도 온라인 게시판에 모여 서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위로받기도 하는데, 이런 공동체 자체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저자가 문제로 지적하는 남초 커뮤니티의 특성은 ‘허무주의’를 공유하며 일부의 경우 극단적인 폭력의 양상을 띈다는 점이다.
“왜 일부 매노스피어 남성은 폭력을 저지르는가? 그것이 온라인에서의 공격이든 자신을 향한 자해이든 대규모 폭력 사태이든 말이다. (중략) 그곳에서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테러 같은 극단적인 폭력조차 누군가에게는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매노스피어는 단지 그런 허무주의적 정서를 지닌 남성을 끌어들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을 더욱 부추기며 폭력은 타당하고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믿음을 강화하기도 한다.” (218쪽)
저자가 오랜 시간 연구한 바에 따르면, 매노스피어로 불리는 남초 커뮤니티에서 포착되는 주된 감정은 분노와 슬픔으로 구분된다. 섹스를 못 하게 된 현실에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기고, 이에 슬퍼하며 삶을 마감하는 선택을 하거나 분노해 약자를 대상으로 테러를 시도하는 경우가 자주 목격된다고 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2014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총을 쏴 6명을 죽인 엘리엇 로저의 선언문을 분석하기도 하는데, 140쪽에 걸친 글에는 황당하게도 자신이 20대 초반까지 섹스를 한 번도 못 해봤다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다른 인종 남성과 섹스하는 백인 여성에 대한 분노가 주로 담겨 있었다.
책에서는 남성성을 강화하는 자기계발이 해답인 것처럼 얘기하며 매노스피어 남성들로부터 돈을 버는 조던 피터슨, 앤드류 테이트 같은 인물을 언급하기도 한다. 저자가 관찰한 남초 커뮤니티들에서도 운동을 하고 스스로를 가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얘기하는 분위기가 자주 발견되는데, 당연하게도 이런 시도는 ‘남성성 획득’의 기준이 과거와 다른 현실에서는 실패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신자유주의가 단순한 경제 시스템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는 우리 문화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남성성의 의미를 바꾸는 데에도 중대한 역할을 하여 남성성의 사명에 자리한 문화적 기대를 약화했다. (중략) 진짜 문제는 남성성의 사명이 약화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문제는 그 자리를 무엇이 대신하게 되었느냐에 있다.” (58쪽)
책의 내용에 따르면, 남성들이 겪는 문제의 원인은 여성의 변화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한 사회의 변화에 있다. 다만 젊은 남성들 다수는 이러한 박탈감을 사회적인 문제로 여겨 운동에 참여하기보다 ‘성평등을 추구하는 정부’라는 거대한 세력에 피해를 입는다는 분노에 사로잡혀 음모론을 남초 커뮤니티에서 공유하는 쉬운 길로 빠지게 된다. 그 결과 가장 눈에 띄는 타겟인 페미니즘과 여성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청년 남성의 극우화, 해결책은 있나
저자는 <인셀 테러>(2023년 국내 발간)에서 로라 베이츠가 주장한 해결책, ‘입법을 통해 인셀 집단의 여성혐오 범죄를 테러 감시의 영역에 포함하자’는 내용에 반대한다. 그러면서 기존 반테러 법안이 미국에서 백인 남성을 겨냥하기보다 다른 인종의 남성을 탄압하는 도구로 악용된 사례를 거론한다.
또한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에서는 문제가 된 남초 커뮤니티 사이트를 차단하는 방식도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트위터(현 엑스) 계정이 차단되자 트럼프가 ‘트루스 소셜’이라는 소셜 미디어를 만들어 극우 인사들이 몰려간 것처럼, 차단하는 건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청년 남성 극우화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는 ‘너는 틀렸어’라는 태도로 맞서는 ‘대응서사’ 대신 다른 길을 제시하는 ‘대안 서사’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시로 책에 나오는 사례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997년 노르웨이 경찰 대학 연구진이 시작한 ‘엑시트 노르웨이’ 프로젝트다. 인종차별적, 폭력적 집단에 깊이 관여한 청소년이 해당 집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회적, 심리적, 정서적으로 지원하며 돕는 프로그램이다.
엑시트 프로젝트 연구진에 의하면, 극우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방식은 오히려 청소년이 자신이 속한 극우 집단을 지키고 방어하려는 욕구를 강화해 역효과를 낳는다고 한다. 프로젝트의 결과는 어땠을까? 노르웨이에서 시작된 후 유럽으로 퍼져 나갔는데, ‘엑시트 독일’은 2022년 기준 800명 이상의 청년이 극우 집단에서 성공적으로 이탈하도록 도왔으며 재가입률은 3%에 그쳤다고 보고됐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다. 오랫동안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를 연구한 사이먼 제임스 코플런드가 정작 ‘페이스북’의 극우화 확산 영향을 간과한 부분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청년 남성의 극우화를 단순하게 보지 않고 진지한 자세로 깊이 살피며 장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눈여겨 볼 부분이다. 청년 극우화가 우려되는 이 시기, 국회를 비롯한 각계에서 부디 이 책을 차분히 살펴봐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