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파친코> 코고나다 감독의 신작 SF 영화 <애프터 양>
삶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의 기억을 돌아본다면, 과연 어떤 장면이 남아 있을까?
SF 영화 <애프터 양>은 네 명의 가족이 일사분란하게 동작을 맞춰 춤을 추며 온라인 댄싱 게임 경연에 참여하는 다소 흥겨운 장면으로 시작한다. 오프닝을 통해 네 명의 가족 제이크(콜린 파렐)와 아내 카이라(조디 터너-스미스), 딸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 그리고 양(저스틴 H. 민)이 가족 구성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만 명이 동시에 참여하는 온라인 경연에서 주인공 가족이 아쉽게 탈락하는 순간, 이상함이 감지된다. 탈락한 아쉬움에 각자 말을 내뱉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양이 동작을 멈추지 않고 계속 춤을 추기 때문이다. 잠시 스크린이 어두워졌다가 다음 장면이 이어지고, 제이크가 수리센터를 찾는 모습이 나온다.
양은 인간이 아니라 '테크노 사피엔스'라 불리는 안드로이드(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다. 제이크와 카이라가 중국계 태생인 미카를 입양하면서 육아를 돕고자 '양'이라는 중국계로 프로그래밍 된 로봇을 같이 구매한 것이었다. 양은 경연을 마친 직후 전원이 꺼져 다시 켜지지 않는다.
맞벌이를 하느라 미카의 육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힘든 제이크와 카이라 부부로서는 양이 고장난 것이 곤혹스럽다. 게다가 몇 군데 수리센터를 들르는 동안 양을 수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진단이 거듭된다. 이대로라면 아직 어린 미카에게 '평생 함께했던 오빠를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그건 양을 수리하는 일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
그러던 중, 제이크는 수리센터로부터 돌려받은 양의 작은 부품 하나가 '기억 장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안경 모양의 기억 재생 장치를 통해 제이크는 양의 기억을 하나하나 재생해본다. 기억을 재생하는 장면부터 <애프터 양>은 사소한 일상의 조각들을 보여준다.
양의 기억에 쌓인 것들
안드로이드 양의 기억에 접속하자 3초 분량의 수많은 기억 다발이 홀로그램 화면으로 펼쳐진다. 은하계 또는 숲의 모습처럼 보이는 클라우드 형태의 기억 저장소에서 제이크는 무작위로 기억을 하나씩 재생한다.
재생된 기억은 대부분 바쁜 제이크와 카이라, 미카를 묵묵히 바라보는 장면 또는 바람에 살랑살랑 흩날리는 나무와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 등 일상적인 모습이다.
양의 기억 장치를 가득 채운 건 특별한 사건들이 아니라 평범한 삶의 순간들이었다. 그 안에 담긴 자신들의 울고 웃는 모습을 반복해서 볼 때마다 제이크는 깨닫는다. 양이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애프터 양'이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양이 떠난 뒤에야 뒤늦게 말이다.
그리고 제이크와 카이라는 양을 마치 가전제품처럼 대하던 자신을 비로소 돌아보게 된다. 양이 고장난 직후 두 사람의 대화는 "그러게, 리퍼 제품을 사는 게 아니었어"나 "미카에게 새 형제를 사줄 형편이 아니야" 같은 것들이었다.
미카가 "오빠를 다시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제이크는 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양도 분명 가족이었건만, 딸이 알고 있던 중요한 사실을 제이크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양은 그저 '고장난' 게 아니라 갑자기 사망한 것에 가까웠고, 가족들로부터 갑자기 영영 떠나게 된 셈이었다.
양의 기억을 재생하며 점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제이크는 바쁜 일상을 살면서 잊은 것들을 떠올린다. 가족과 일상, 살아있다는 것 중 어느 것 하나도 당연한 것이 없다는 걸 새삼 돌이켜보는 것이다.
떠나지도, 머물지도 못하는 이방인
떠날 수도 없고, 자신이 속한 세계에 온전히 머물지도 못하는 이방인. 1일 개봉한 <애프터 양>을 연출한 코고나다 감독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코고나다 감독은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자신의 '뿌리'와 '발 딛고 선 곳'이 각자 다른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코고나다의 장편 데뷔작 <콜럼버스>(2017)에서 한국인 진(존 조)은 원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의 도시 콜럼버스에 머물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갑자기 미국 콜럼버스에 오게 된 진은 도시를 떠나고 싶어하지만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떠날 수 없는 신세가 된다.
애플 티비 플러스 <파친코>(2022)의 주인공 선자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일본으로 이주하면서 어디에서도 마음껏 자유를 누리지 못하지만 꿋꿋이 살아간다. 선자의 아들 모자수와 손자 솔로몬은 근현대 일본에서 자수성가하며 자리잡는 듯하지만, '재일한국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시달린다.
<애프터 양>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렇다. 백인 아빠와 흑인 엄마의 사이에서 딸로 살아가는 동양인 미카는 "학교에서 같은 학급 아이들이 '너 진짜 부모님이 누구냐'라고 묻는다"라며 정체성 혼란을 양에게 털어놓는다.
그러자 양은 미카를 숲으로 데려가 '가지 접붙이기'를 한 나무들을 보여준다. 다른 나무에서 온 가지를 새로운 나무에 접목했지만, 분명 그 가지 또한 나무의 일부가 된다고 설명하면서 양은 원래의 나무와 새로운 나무 모두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극 중 양 또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인 것은 마찬가지다. '문화 테크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로봇 양은 가족의 역할 일부를 '외주'받지만, 안드로이드라는 이유 때문에 가족의 일원으로 흔쾌히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양의 작동 정지 후 제이크는 양의 친구인 복제인간 에이다에게 "(안드로이드) 양은 인간이 되고 싶어했나요"라고 묻지만, 이내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인간을 동경할 거라는 건 너무 인간다운(인간중심적인) 생각"이라는 핀잔을 듣는다.
아시아계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들었을 법한 말(백인이 더 우월한 인종이기에 다른 인종들이 동경할 것이라는 편견)을, 백인 배우 콜린 파렐이 하고 또 '너무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라는 지적으로 돌려받는 장면은 이러한 맥락들 위에서 더 묵직하게 느껴진다.
우리 삶은 평범한 일상의 축적
SF 영화 <애프터 양>은 주인공 양의 태도처럼 상영시간 내내 덤덤하게 진행된다. 격정적인 장면이나 극적인 사건은 거의 없고, 매우 잔잔하다. 감정을 자극하는 연출이 없지만 침묵과 여백을 보여줌으로써 상실을 표현했기에 더 슬픈 것인지도 모르겠다.
숲 속을 걷듯이 양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한 발자국씩 제이크를 따라 걸을 때마다, 관객들도 세상이 어떤 인물을 잃은 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우주처럼 보이는 양의 기억 저장소를 돌아보고 현실로 돌아올 때면, '한 명의 인간이 곧 하나의 우주'라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의 삶은 특별한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축적이라는 것을 양의 기억뿐만 아니라 영화의 줄거리가 말해주는 듯하다. 이는 관객에 작은 위로를 건네는 요소 중 하나다. 스크린 위에 펼쳐진 2D 화면이지만 햇살과 바람까지 직접 느껴질 듯이 실감나게 담은 영상미도 관객을 다독인다.
양이 떠난 이후에야 제이크와 카이라는 그의 빈자리를 통해 잊고 살아온 것들의 소중함을 돌아본다. 관객도 영화를 보면서, 다 설명하고 보여주지 않은 장면들의 여백에서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내 삶을 이루는 것은 무엇이며, 살아가면서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들이 어떤 것인지를 말이다.
<콜럼버스>와 <파친코> <애프터 양>을 통해 큰 사건 없이 일상을 통해 인물과 삶, 세계를 모두 비추는 코고나다 감독의 연출 방식은 '우리 삶에서 사소해 보이는 것들조차 소중하다'라는 영화의 메시지와 겹치며 큰 울림을 준다. 그의 다음 영화를 벌써 기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