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끌어내는 이야기들
목이랑 코가 맵다. 혀뿌리 뒤쪽 너머 입천장과 맞닿는 그곳에서 쉴 틈 없이 따가운 감각을 보내온다. 어떤 이는 면도칼을 삼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고, 다른 어떤 이는 목 안쪽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라 했다. 얼얼해진 목구멍을 조금이나마 적셔보려 텀블러에 물을 담아 꼴깍꼴깍 마셔보지만 그것도 마시는 순간에만 잠시 시원할 뿐, 근본적으로 이 매운 감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그 순간 어디선가 경험해본 것 같은 기시감을 지울 수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영어를 배워보겠다고 꽤 먼 거리를 버스 타고 다닌 적이 있다. 당시 141번 버스는 서울 서북쪽 수색을 출발해서 신촌을 거쳐 용산으로 향하는 노선이었는데, 어린 나는 그 만원 버스에 몸을 싣고 한국계 영어 원어민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그러다 한번은 신촌 연세대학교 정문 앞을 지나가는데 뿌연 연기와 함께 매운 기운이 버스 안을 휘저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콜록콜록 격한 기침을 저마다 쏟아냈는데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눈도 맵고 코도 맵고 얼굴도 따가웠다. 말로만 듣던 최루탄의 첫 경험이었다. 누가 왜 그 매운 녀석을 사람들에게 쏴댔는지 당시엔 관심이 없었다. 다만 내 얼굴과 눈과 목이 따가울 뿐이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나 ‘169번 올빼미’를 외치던 훈련병 시절, 모두를 긴장하게 했던 훈련 코스가 화생방 훈련이었다. 뿌연 최루가스가 가득한 공간에 들어가 쓰고 있던 방독면을 벗자마자 코와 목과 허파로 순식간에 밀려드는 매운 기운에 숨이 안 쉬어져 질식할 것만 같았던 그 순간이 지금도 생각난다. 악몽 같은 몇 분의 시간이 지나고 화생방 훈련장 밖으로 나왔을 때 만난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호흡과 질식, 시원함과 매움 사이를 극명하게 오갔던 시간이었다. 내 손끝을 떠나 지면을 강하게 울렸던 수류탄 폭발 진동을 온몸으로 느꼈을 때 맛본 죽음의 공포를 다시 만난 시간이기도 했다.
여전히 목이랑 코가 심하게 맵다. 침을 삼킬 때마다 통증이 있어서 입을 살짝 벌리고 목구멍도 살짝 열어놓은 상태로 있는 게 그나마 편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청양고추를 코끝으로 맛보고 있는 것만 같은 이 순간도 기억의 한 장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실마리를 발견한 것 같아 기쁘다. 뿌옇게 잊혔던 최루탄과 최루가스가 지금의 이 감각으로 당시의 이야기를 품고 되살아났듯이, 지금의 괴로움과 고통도 언젠가 오늘의 이야기를 데리고 내게 와줄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