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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나 Jun 29. 2021

내 안의 또 다른 나 ‘부캐’ 열풍

 바야흐로 ‘부캐’ 전성시대이다. 예능계에서 시작된 열풍이 대중문화‧산업계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일반인들도 퇴근 후에 유튜브 활동을 한다거나, 다양한 취미를 하며 원래 직업 이상의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동안 드러내지 않던 내 속의 다양한 나를 부캐로 내보이는 것이다. 



부캐 하나쯤은 다 갖고 있지 않아? 
2018년 방영된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777’에 ‘래퍼 마미손’이 등장했다. 분홍색 비니로 얼굴을 가려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당연히 새로 등장한 래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쇼미더머니 시즌 2에서 3등을 한 래퍼 매드클라운과 목소리도 똑같고 래핑도 유사했다. 모두가 매드클라운이 아닐까 의심했다. 이러한 의심을 받을 때마다 마미손은 매드클라운과 일면식도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마미손은 래퍼 매드클라운의 ‘부캐’였다.

유재석 - 유고스타 - 유산슬- 라섹 - 유르페우스 ...로 이어지는 유니버스

 그렇게 방송가에 ‘부캐’ 열풍이 시작되었다. 국민 MC 유재석은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 하니?’에서 트로트 가수 ‘유산슬’, 하프 신동 ‘유르페우스’, 그룹 싹쓰리의 멤버인 유두래곤 등 다양한 부캐를 선보이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고, 코미디언 김신영의 ‘둘째 이모 김다비’, 박나래의 ‘안동 조씨 조지나’도 부캐로 새로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누가 봐도 가상이긴 하지만 대중은 이를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유명 연예인의 부캐가 두드러질 뿐, 우리도 누구나 부캐로 활동한다. 나의 본래 모습이 본캐라면 직장에서의 부캐 1, 퇴근 후의 부캐 2, SNS 속의 부캐 3 등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특별한 이름을 짓지만 않았을 뿐이다. 심지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마다 각기 다른 부캐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스타그램에만 부캐를 해시 태그한 게시물이 약 4,000여 개나 된다. 이렇게 부캐 활동이 흔해지자 카카오톡에서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기본 카카오톡 프로필 외에 친구별로 표시되는 프로필을 다르게 설정할 수 ‘멀티 프로필 기능’을 출시하기도 했다. 한 사람이 여러 모습을 갖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만도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이를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전략’으로 생각한다. 



부담 없이 부캐를 즐기다

 본래 부캐는 온라인 게임과 커뮤니티에서 주로 사용되던 용어였다. 원래 만든 캐릭터 ‘본캐'의 능력치를 끌어올리거나, 새로운 인맥을 만들기 위해 부캐를 만들었다. 그렇게 캐릭터를 여러 개 만들어 활동하며 누구나 쉽게 ‘부캐’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했다. 온라인에서 본캐와 부캐를 넘나드는 생활이 익숙해지자 현실에도 부캐 개념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의 등장은 부캐 활동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직장 안에서 하나의 캐릭터로 살아오던 이들이 1인 크리에이터라는 일종의 부캐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마다 가진 정보를 유튜브에 공유했고, 완벽하지 않지만 공유 자체에 존재 가치를 인정받았다. 

 부캐의 취미 생활을 주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한 가지 영역을 자신의 소명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이들이 부캐를 통해 의외로 자신이 잘하는 영역을 찾아냈다. 퇴근 후 부캐의 가면을 쓰고 또 다른 나를 찾으려는 이가 늘어나고 있는 건 그래서다. 

 사실 부캐 이전에도 여러 가지의 분야에 능력을 갖춘 사람을 지칭하는 ‘멀티 플레이어’라는 개념이 있었다. 그러나 멀티 플레이어와 부캐는 조금 결이 다르다. 멀티 플레이어는 ‘일의 영역’이 강조되어 실력 검증이 필수라면, 부캐는 취향이나 취미의 영역이라 완벽함을 그리 중요하게 평가받지 않는다.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된다. 



부캐를 또 다른 나로 인정받다 

 우리 사회가 부캐의 세계에 푹 빠져든 것은 그간 공동체 속에 억압됐던 개인들이 자신의 또 다른 면모를 드러내고픈 욕망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가 고속 성장을 일궈낸 힘은 개인보다는 가족을, 나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먼저 추구했던 탓이다. 하지만 이러한 집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은 1990년대 IMF와 2000년대 초반 금융 위기를 겪으며 개인주의로 바뀌었다. 한번 입사하면 평생을 책임져 주던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졌고, 집단보다는 ‘나 자신’이 더 중요해졌다. ‘일’의 영역이 전부였던 과거에는 본캐만 존재했지만, 일 바깥의 영역도 중요해진 현재에는 그 다양한 세계를 탐험할 부캐들이 필요하게 됐다.

 이제 사람들은 부캐라는 다양한 가면을 쓰고 활동하며 이것 또한 자신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이를 보는 타인 또한, 부캐가 거짓 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숨겨진 또 다른 가능성이라 해석한다. 다양성이 중요해진 사회에 개인 정체성 분리마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현상이 된 것이다. 일관된 모습을 강요받던 시대에서 한 개인의 다양한 모습을 인정하는 시대로 넘어온 것이다. 


우체국 사보 '우체국과 사람들 2021년 5~6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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