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임신 사실을 알고 가장 먼저 알린 곳은
가족과 회사였다.
소식을 알리고 축하받는 것도 좋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남편과는 육아 휴직에 관한 사항을 상의하고,
회사에는 단축 근무 제도와 검진 휴가에 대한 권리를 받아야 했고
또 순조로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2~3달쯤 지났을까?
임신 4개월째이던 어느 여름날,
팀장님의 면담 요청을 받았다.
한 달 뒤 본인의 인사이동으로 공백이 될 팀장 자리를 내가 이어 줄 수 있는지 물으셨다.
4개월 뒤면 출산 예정이고
팀장 달자마자 휴가를 들어가면 결국 또 팀장 자리는 공백.
그러므로 내게 온 팀장 제안은 [육아 휴직은 쓰기 어렵다]는 전제 하에서였다.
결국 내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였다.
승진이냐, 육아 휴직이냐.
사실, 내 답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유년기를 전업 주부 엄마와 보내서 든든했던
내게는 '엄마로서의 삶'이 훨씬 더 중요했을 뿐 아니라,
팀원으로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잘 알고 있고
무엇보다 이 역할에 대 만족했기 때문에
승진은 바라지도, 꿈꾸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막상 선택권이 주어지니 고민이 꽤 많이 됐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 도전해보고 싶기도,
이 사업 분야의 시야를 넓혀보고 싶기도 했다.
지금도 새로운 일을 접하는 게 겁이 나지만
나중엔 더 겁낼 것 같았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지 4년 차에 받은 제안.
회사에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느껴졌고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놓치기 아쉬웠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들을 막은 건
'아기', '육아'가 아니라, '나'였다.
'리더'라는 자리는
개인보다 회사에 좀 더 집중해야 하는 곳 아닐까.
그러면 자연히 내 관심사는 '회사'로 쏠릴 테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내가 그렸던 선배, 리더의 모습을 쫓아갈 수 있을까.
처음 겪어보는 엄마라는 삶과 팀장이라는 삶을
둘 중 하나라도 후회하지 않고 해낼 수 있을까.
워킹맘 선배에게
-육아와 회사 일, 둘 다 잘 못한다, 이도 저도 아니다.
라는 말을 듣곤 했다.
어차피 가게 될 워킹맘의 길이고,
나도 느끼게 될 감정이겠지만
지금은 첫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내게 더 후회하지 않을, 값질 시간이라 판단했다.
결국 결론은 오래전 생각과 같다.
하지만 그 과정이 이렇게 고민될 줄 몰랐다.
나도 몰랐던 '일 욕심'이 있었다.
제법 욕심났고,
그런 내 모습에 새삼스러웠다.
사회 초년생 때 나 스스로
-두 번째 사춘기가 온 것 같다
고 느꼈었다.
내가 원했던 일이었는지,
나랑 맞는 건지,
나는 저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그들을 대하고, 지내고 있는지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됐고
사회적인 성격도 생기거나, 변하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사회인'이 됐다고 생각했다.
출산과 승진이라는 새로운 이벤트를 겪으며
당연하다고 여긴 내 모습을
다시 보게 됐다.
나를 또 알게 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