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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al me May 06. 2024

뜨개하는 마음 (1)

나의 불쏘시개

뜨개하는 마음에 대하여


  매일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다보면 사이 사이 어떤 공백이 생기고 공백을 공백으로 즐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가끔 어찌할 줄 몰랐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순간 대바늘을 잡고 뭔가를 뜬다. 목도리 일 수도 있고 장갑일 수도 있고 스웨터 일 수도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뜨개는 시간을 물리적으로 남기는 행위같아서 나의 시간이 단으로 완성되어 가는 느낌이 들고 나는 더이상 무력하지 않다.


“뜨개질 해볼래?”


뜨개질을 제안한 건 남편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남편의 학위 때문에 시작한 유학 생활은 순간 순간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몰입할 무언가를 끊임 없이 만들고 있었다. 가장 하고 싶은 글쓰기는 새로운 경험이 없으니 쉽지 않아 그가 보기엔 내가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 했을 수도 있다.

그는 그림 도구를 사주며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그래서 그림을 그렸고, 꽤나 몰입했었다.

그리고 다시 공백이 찾아왔고 내가 우울해질 것을 두려워한 남편은 뜨개질을 제안했다.

사실, 솔깃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았지만 겨울이었고, 나는 모자가 필요했다. 니트로 만든 버킷햇을 잃어버려서 비슷한 디자인을 찾고 있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모자나 한 번 떠 볼까. 하여 유튜브를 찾아보니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모자를 만드는 영상이 있었다. 필요에 의해 단발성으로 끝나는 사건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다. 

마음에 드는 영상을 골라서 추천해주는 코바늘 호수와 비슷한 실을 사서 밤새 모자를 만들었다. 쉽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모자를 완성했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중에 불쏘시개라는 작품이 있는데, 인생에서 정체되어 있던 알콜 중독 치료를 받던 마이어스가 아내에게 버림 받고 어느 부부의 방 하나를 빌려 잠시 살기로 한다. 마이어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방에서 창밖만 보다 집으로 배달 되어 온 나무들을 보게 된다. 집주인이 불쏘시개로 쓸 나무들이라며 톱질해서 쌓아 둘 것이라 했다. 마이어스는 자기가 하고 싶다고 말하고 허락을 받아 그 일을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밤에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고 쌓여져 있는 나무를 본다. 그리고 다음 날, 또 나무를 자른다. 그 일은 이틀만에 끝이나고, 마이어스는 집주인에게 떠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 조용히 글을 쓴다. 나는 나무를 자르고 쪼갰다고.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일들이 때로는 누군가를 구원하고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뜨개가 정체 되어 있는 시간속에  불쏘시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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