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음에 담긴 가능성
처음 하는 사랑은 영원을 맹세하게 만들고 하늘의 별도 달도 따게 만드는 힘이 있어.
그게 첫 마음의 힘인 것 같아. 그 마음에 모든 가능성을 담아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지.
나의 첫 마음은 모자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무엇이든 뜰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늘의 달도 별도 다 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된 나의 시행착오들.
예쁜 것만 고려해 실을 구매 했더니, 모자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실 굵기에 맞는 바늘도 없었다.
뜨개 선배님들이 만든 기법과 태어나 생전 처음 듣는 용어들을 익히고, 단수링, 돗바늘, 도구들도 작품을 하나씩 뜰 때마다 늘어났다. 코바늘로 모자와 가방을 만들다, 더 정교한 작업을 해보고 싶어서 대바늘을 시작했다. 게이지가 뭔지도 모르고 코 모양을 보는 법도 모르면서 무작정 하고 싶어서 실을 사고 유튜브 영상을 보고 따라 하며 카디건을 뜨고, 카디건을 뜨다 질리면 조끼를 뜨고, 뜨개를 쉬지 않고, 여러 작품을 쉴 새 없이 떴다. 업계(?)에서 그걸, 문어발이라고 부른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일주일을 쉬지 않고 떠서 동시에 두 작품을 완성하고 신나서 입어 봤다. 꽤 잘 만들었다. 나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옷. 빨리 입고 다니고 싶어서 세탁했다. 그리고 건조기에 넣었다. 건조가 끝났다는 소리와 동시에 옷을 꺼내니, 옷은 아이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다.
카디건, 조끼 둘 다.
내 일주일.
그렇게 사라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메리노 울 실을 건조기에 돌려버리는 미친 짓을 한 것이다. 메리노 울이 이렇게 약한 것이었다니. 메리노 울을 싫어하는 마음이 그때 생겨버렸다. 나는 지금도 메리노 울이 싫다. 메리노 울 때문에 인생이 이렇게 허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줄어든 뜨개옷을 보며 물리적으로 확인했다. 너무 명확한 실패였고, 노력했던 시간도 사라졌다. 나는 항상 노력하고 실패하는 것 같다고. 이 간단해 보이는 뜨개마저도 나는 해내질 못하네. 시간을 허비했다는 죄책감이 또 몰려왔지만, 극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뜨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아직 나에겐 첫 마음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혼자서 뜨개를 하다 보니 누군가의 지도를 받았다면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국 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 그건, 뜨개를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었다.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님이 시행착오를 “최적의 경로”라고 표현했다. 지금 겪고 있는 시행착오가 굉장히 멋진 곳에 가기 위한 중요한 단계일 수도 있다고.
시행착오가 없다면 어느 곳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뜨개 기법이 손에 익숙해져도 새로운 걸 뜰 때마다 새로운 시행착오를 만나지만, 그 시행착오가 뜨개를 완성하는 그 과정에 포함된 그것으로 생각한다. 지금 나를 지도하고 계시는 뜨개 사범님도 얼마 전에 뜨던 작품이 틀렸다고 다시 풀고 계셨다. 그게 당연한 일이라는 듯.
하늘의 달도 별도 다 뜰 수 있다는 그 첫 마음에 담긴 가능성은 아마, 뜨개를 하면서 겪을 어려움을 모르는 치기 어린 순정 같은 감정이지만, 그 마음에 담긴 가능성 때문에 결국 닥치는 어려움을 이겨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다면 이유 불문 “응원”하는 마음을 보낸다.
뜨개 해서 뭐 하려고, 팔이나 아프지. 그냥 사 입어. 하는 그런 도움도 안 되는 말들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