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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솜 Jul 07. 2019

프레드릭을 위해 박수를

세상엔 반드시 예술가가 필요하니까요.


https://youtu.be/mw6l6xuTj4U


난 내가 예술가가 되지 못할 '그른 떡잎'이라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지나치게 계획적이고 효율성을 중시하며 의외로 성실한 나의 성향은 '예술가'가 갖춰야 할 필수 성향과 완전히 대척점을 이루고 있으므로, 난 이번 생엔 절대로 예술가가 될 수 없는 운명이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입학하자마자 회화과 남자와 CC가 된 덕분(..)에 순수 미술을 전공하는 예술학부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어느 방향으로 튀어나갈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 꿈틀거리는 창작욕구를 지켜보는 일은 건조한 대학생활에 몇 안 되는 활력소였다.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예술가를 향한 동경과 짝사랑이 시작된 것이.


내가 대학교 4년 동안 취업이라는 별 볼 일 없는 목표를 향해 나갈 때, 이미 예술가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친구들은 단출한 배낭 하나만 달랑 멘 채 인도라는 생경한 나라로 여행을 떠났고, 어떤 친구들은 남해의 어느 작은 섬에 들어가 기거하며 어르신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에 심취했다. 기약 없이 떠났다가 역시 기약 없이 돌아온 그들은 경험한 모든 것을 사진과 그림으로 표현했고, 책을 썼으며 음악을 연주했다. 그 작품들은 현실이라는 족쇄에 묶여 퍼렇게 얼어있던 내 심장을 다시 선홍빛으로 물들였다. 


그래서 <프레드릭>(레오 리오니, 시공주니어, 2017)을 보자마자 '그들'이 떠올랐다. 이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한 사람들이 프레드릭에게 '그냥 베짱이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인 것 같다', '내 아이에겐 절대로 이 동화책을 보여주지 않겠다'라는 혹평을 하면 할수록, '그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내가 아는 그 모든 친구들이 타고난 금수저라 딱히 밥벌이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가족들의 열렬한 지지까지 받는 운 좋은 예술가였다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그들 대부분은 가진 것도 없고 붙잡을 금 동아줄 같은 건 더더욱 없는 배고픈 예술가였다. 그들은 단지 이런 사소한 결핍 따위에 굴하지 않고 예술가의 길로 뛰어든 조금 남다른 '쥐'들일뿐이었다. 그들은 졸업 후에도 생계유지와 창작활동이라는 이중고 사이에서 끊임없이 위태로운 줄타기를 했다. 거기에 더해서 '그 나이 되도록 사람 구실 못한다'는 사회의 손가락질과 가족들의 몰이해는 줄 위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배고픈 예술가의 위장을 더욱 쪼그라들게 만들곤 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iem van Gogh, 1853~1890) 역시 예술가로서 죽는 날까지 생계에 쪼들렸다. 살아생전에 돈을 받고 판 그림이라곤 단 한 점뿐이었다고 하니 그의 곤궁함이 어느 정도였을까 상상조차 어렵다. 다만, 그가 다른 배고픈 예술가와 달리 아주 운이 좋았던 점은 바로 그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동생 '테오'의 존재였다. 테오는 고흐가 햇볕을 모으고 색을 채집하고 이야기를 모으는 동안, 부지런히 낱알을 모아 고흐에게 보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편지로 응원과 위로도 함께 보냈다. 고흐는 테오의 따듯한 위로를 붙잡고 불안정한 정신, 쇠약한 신체와 싸우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완성된 수많은 고흐의 작품은 생생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전 세계 사람들- 특히 나에게 큰 감동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2005년, 대학교 2학년 겨울은 힘든 아르바이트, 턱없이 부족한 잠, 밀린 과제와 싸워야 하는 나날이었다. 당시 유난히 춥고 어두웠던 내 자취방 책상 위엔 고흐의 <해바라기>가 걸려있었다. 다이소에서 산 2천 원짜리 액자였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으면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각. 그때부터 나에겐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과제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새벽이 깊어질수록 방은 점점 추워지고 머릿속이 멍해져 갈 때 고개를 들어 <해바라기>를 바라봤다. 노랗게 일렁이는 그 따스한 색감으로 몸을 덥히면서 프랑스 아를에 노란집에 앉아 하루종일 오로지 그 '해바라기'만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분투했을 고흐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과 비교할 순 없겠지만, 당시엔 너무도 버거웠던 나의 일상을 감히 대입해보면서 '그래, 나도 계속해보자'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런 날은 더 많아졌고 '해바라기 파워'가 필요한 날도 덩달아 늘어났다. 그렇게 꾸역꾸역 공부한 전공을 살려 지금까지도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해바라기>라는 작품을 세상에 남긴 고흐와 테오에게 어쩐지 신세를 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하다. 


앞서 고백했듯 난 절대로 프레드릭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어차피 프레드릭이 되지 못할 바에 난 그들이 좀 더 많은 것을, 더 알차게 모을 수 있도록 지지하는 '쥐 1'이 되고 싶다. 내가 하찮은 현실에만 몰두하느라 문득 마음에 혹한이 찾아왔을 때, 프레드릭이 모아놓은 것들을 보고 들으며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고 싶다. 동화책 마지막 장면에서 프레드릭이 멋진 포즈로 인사하며 '나도 알아.'라고 얼굴을 붉힐 때, 누구보다 크게 손뼉 치며 환호를 보내는 존재가 되고 싶다.


나와 프레드릭,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 그 2천 원 짜리 해바라기 액자는 지금도 여전히 내 책상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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