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반격>을 읽고
1년 남짓 프리랜서 생활을 할 때 일주일에 한 번씩 1시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일을 하러 갔다. 왕복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노래만 듣기도 어렵고, 프리랜서를 짓누르는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경제 방송이나 책을 다루는 팟캐스트도 많이 들었다. 가장 즐겨들은 게 이미 시즌을 마친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다. 그 중에서도 데이비드 색스가 쓴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책이 기억에 남는다.
아날로그가 운명을 다했다는 걸 모두가 인정하는 시대에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니. 직접 책을 사읽을 수밖에 없었다. 2007년 첫 직장에서 잡지를 만들 때만해도 종이가 주는 의미는 남달랐다. 당시에도 인쇄 매체가 잘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파다했지만, 그래도 당시만해도 종이 매체들이 지금보다는 먹고살만 했다. 자부심도 높았다. 2013년부터 다녔던 회사에서는 "종이 매체를 안 하는 게 이득"이라는 주장을 직접 했다.
저자는 디지털이 일상인 세계이기에 오히려 아날로그가 의미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이런 시대가 깊어지자 '진짜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 이들이 늘어난다. 아날로그를 겪지 않고 태어나자마자 디지털 시대 가운데서 산 젊은 세대들은 온기와 무게감을 바란다.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디지털 시대가 깊어지니 아날로그가 다시 살아났다.
90년대 이후 사향 산업이 됐다던 레코드판, 종이(명함, 몰스킨 노트), 필름, 보드게임이 최근 살아난 이유도 여기 있다. 이 중에서 레코드판과 보드게임은 실제로도 즐기고 있기에 책 내용을 이해하기 쉬웠다. 웹으로 즐기는 게임이 대세인 시대에 보드게임은 사교와 직접 접촉을 뜻한다. 네트워크 연결을 하지 않아도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좋은 도구로 평가 받고 있다는 표현이 마음에 남는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인쇄물이다. 과거와 같은 인쇄물 시장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쇄물은 '고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책과 같은 인쇄물은 실제로 손에 들어서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명품 브랜드들이 아무리 고화질 사진을 웹에 올려도 고급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고, VIP 고객들에게 책자를 보내주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돌고 돌아 다시 인쇄물을 만들게 되면서 이 부분을 보고 힘을 얻었다. 천천히 생각해보면 나는 책의 내용도 좋았지만 들었을 때의 느낌, 표지와 내지의 감촉, 잉크 냄새, 책 표지와 등의 디자인에도 큰 만족감을 느꼈다. 책을 들어올리는 물리적은 행동이 지식을 습득한다는 걸 의미하기에 뿌듯함까지 느꼈다. 종이책을 산다는 건 그런 모든 만족감을 누리는 일이다.
디지털의 최첨단에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오히려 아날로그가 유행이라는 내용을 읽으면서도 느낀 바가 크다. 소위 테크 기업의 사옥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를 강조하는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 속에 있기 때문에 아날로그를 통해 잠시 멈추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복잡한 디지털을 이해하려면 직접 동료와 대면하고 일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삶과 생활을 개선하지만, 아날로그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아날로그가 지닌 온기와 무게가 있어야 디지털 세상이 좀 더 완벽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인간은 물리적인 부분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 온기와 무게를 지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싸구려 턴테이블로 조성진의 쇼팽을 듣고 자야겠다.
새로운 미디어는 기존의 미디어에 추가되지도, 기존의 미디어를 그냥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새로운 미디어는 시존의 미디어에 끊임없이 개입하여 새로운 모습과 위치를 찾게 한다. (마셜 매클루언 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