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 에세이 '사랑은 무한대이외다'
이 사무친 한을 어찌 면하랴. 사람의 계급에 '귀하지 않은' 사람이 생겨나서 구차하게 살아가노라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그 사람들의 일원으로 어떤 때는 썩은 낙엽에 그 생명이 비기어지며 어떤 때는 짚 꺼풀에 비기어지며 어떤 때는 생사가 임의롭지 못한 꽃에도 비기어졌었으며 어떤 때는 새장 속의 새에도 비기어졌으리라, 그러나 사람이야 어찌 참으랴. 남의 생활의식에 그 몸을 맡기고 남의 감정에 그 웃음을 던짐이 오로지 흥미 없는 일이 아니랴. 젊은 수색자야, 해녀야, 네 길을 간다 할지라도 갈수록 남의 길일 것이며 남아 보이는 것이 학대일 뿐이니 부질없는 등산을 멈추고 네 몸 위에 값없이 던져지던 남의 생활의식 남의 감정을 전부 뽑아내어 던져라! 그것이 네 피를 빨았으며 네 고기를 저몄으며 네 꽃을 값도 없이 시들게 했을 것이다. 창백한 속 썩은 등산자야, 네 앞길이 갈수록 험할 뿐이다. 원수의 것을 전부 내놓아라!! (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