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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냥 Aug 07. 2023

'모두 엎드려 시아노 박테리아를 경배하라'

조진호, '서호주 탐험가를 위한 과학안내서'

시아노 박테리아. 시라소니 사촌쯤이라도 되는 이상한 놈인가 싶지만 호모 사피엔스라면 이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만물의 영장 운운하며 건방 떨 수 있는 것도 그 근원을 따라가다 보면 이 시아노 박테리아 덕분이니까.


35억 년 전에 광합성을 시작하면서 열심히 산소를 만드신 소중한 존재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생존해 계실 뿐 아니라 그 후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변형된 후 계속 산소를 만들고 계신다.


시아노 박테리아가 산소를 만들기 전까지 생명체들은 그냥 산소 없이 살았다. 광합성이라는 기막히게 체계적이고 신비로운 현상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꼭 필요했던 것도 아닌데, 그저 살다 보니 생겨난 광합성 생명체들은 그 후 수십 억 년 동안 생겨먹은 대로 살아주셔서 지구에 풍부한 산소가 생겨났다. 우주 전체적으로도 흔한 일이 아니다.


사실 산소는 위험한 기체다. 강한 산화력으로 암석 같은 고체는 물론 생명체를 이루는 분자까지도 쉽게 파괴하기 때문이다. 항산화제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흥미로운 건 산소는 시아노 박테리아의 배설물 같은 것, 즉 시아노 박테리아에게 산소는 생존의 결과로 생긴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게 뭐냐, 며 시아노 박테리아는 무심하게 산소를 지금도 배설하고 있지만, 그 고마움에 넙죽 엎드려 그 존함이라도 한 번 더 읊조리며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 시아노 박테리아 덕분에 바닷물에도 산소가 가득하고 대기 중 산소도 풍부해졌으므로.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생존해 주신 덕분에 지구 생물의 총량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생물 종의 폭발적인 증가를 이끌었을 뿐 아니라 대기 중 산소 농도를 높여 대기권 상층부에 오존층이 형성되도록 도왔다. 덕분에 자외선이 차단되면서 물속 생물이 육지로 진출할 기회도 누리게 되었다. 이렇게 시아노 박테리아는 수십억 년에 걸쳐 지구의 모습을 완성해 왔던 것이다.  


이 위대한 박테리아의 점액질과 바닷물의 부유물이 1000년 넘게 쌓이면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게 되는데 이 군락을 서호주 가면 볼 수 있다고 한다. 늘 서호주에 언젠가 가보고 싶다고 꿈만 꾸고 있었는데, 그래비티, 게놈, 아톰, 에볼루션 등을 주제로 상당한 수준의 만화책을 낸 조진호 작가의 서호주 탐험기를 읽으며 꿈을 접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오도방정 떨며 어떻게든 정복 정복 정복을 위해 덤벼드는 인간도 있지만, 나는 두려움을 더 강하게 느끼고 한 발짝 물러나 경외감을 표현하는 편이다. 시아노 박테리아를 얻었으니 나름 보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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