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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Mar 12. 2024

원하는 걸 알고 말하고, 이뤄간다는 것

미드 <섹스 앤 더 시티> (시즌1 1998~시즌6 2004)

2020년 10월, 독립매거진 <We See>에 실었던 글을 브런치에 올려봅니다. 




올해 초, 왓챠플레이에 가입했다가 <섹스 앤 더 시티 Sex and the City>를 발견했다. 너무나 많이 들어왔던 콘텐츠! 초등학생 때 시즌 1을 시작했던 프로그램인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는 제목에 ‘섹스’가 들어가니까 내용이 셀 거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 이후로는, 내가 공감하며 보기에는 너무 옛날 콘텐츠라고 생각했고 찾아보기도 쉽지는 않았다. 보다보니 이끌려버렸다. 보면 볼수록 연애나 결혼에 대해 생각했다. 글을 쓰고 싶어졌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는 캐리 브래드쇼, 사만다 존스, 미란다 홉스, 샬롯 요크 골든브렛이 그 주인공이다. 캐리는 섹스 칼럼을 쓰며 연애를 자유롭게 한다. 결혼에 대해 자신 없어 하다가, 점점 생각이 바뀐다. 사만다는 섹스에 굉장히 적극적이고 자유롭다. 결혼도 아이도 원치 않는다. 미란다는 능력 있는 변호사이며, 이성적이고 시크한 편이다. 연애도 곧잘 하지만 결혼과 아이에는 관심이 많이 없다. 그보단 일이 중요한 사람. 그러다 예상치 않게 아이가 생겨 낳아 키운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샬롯은 갤러리 큐레이터이며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다. 친구들 중 늘 결혼을 꿈꾸는 사람이다. 가정을 꾸리는 것이 꿈의 1순위다.      


서로 다른 연애관, 결혼관을 지닌 여성 네 명이 우정을 쌓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보다 보니, 드라마 속 네 사람이 내 친구들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캐릭터를 통해 내 모습을 보기도 했다.      


내가 닮고 싶은 마음에 좋아하는 캐릭터는 미란다다. 일에서만큼은 똑부러지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우왕좌왕 힘들어하는데 그걸 전혀 숨기지 않는다. 차가워보이지만, 알고보면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미란다라서 좋다. 


또 다른 이유로 좋아하는 캐릭터가 샬롯이다. 현실에서의 나랑 비슷한 것 같기 때문이다. <섹스 앤 더 시티>에 대한 글을 보면 샬롯에 대해서 환상만 있다거나 고구마처럼 답답하다는 평이 많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샬롯은 매력적이다. 환상을 현실로 만든다.      



원하는 걸 분명히 알고당당히 말하는 샬롯그의 좌절      


샬롯은 자신이 바라는 연애, 결혼, 출산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안다. 왜 원하는지까지도. 그걸 당당히 말한다.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던 샬롯은, 정말로 운명적으로 한 남자(트레이)와 사랑에 빠진다. 심지어 그 남자의 현실적인 조건도 좋은 편(귀족 집안).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진다. 핑크빛 낭만만이 있을 줄 알았던 결혼이었으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다. 샬롯과 남편은 결혼 전 섹스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는 단 한 번도 섹스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알고 보니 남편은 발기 부전……. 혼자서 자위할 때와는 다르게, 섹스할 때만 불능이 되어버리는 그의 일부분 때문에 샬롯은 많이 낙담한다. 부부 관계에서 섹스가 전부라고는 생각하는 편은 아니었던 샬롯이지만, 섹스를 못 하니 샬롯은 한없이 우울해진다.      


그래도 부부는 아이를 가지기 위해, 시험관 임신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조차 잘되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남편은 ‘그냥 우리끼리 살자’고 말한다. 아이를 원하는 샬롯에게. 부담감을 덜어주려고 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 말은 샬롯이 지닌 가치관을 산산조각 내는 말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는 생각만큼이나 ‘결혼을 하겠다’, ‘아이를 가지겠다’는 생각 또한 중요한 가치관이다.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가치관이 맞지 않은 사람과는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가 없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서로의 몸이 맞지 않아 갈등을 빚었지만, 결국에는 이 가치관이 맞지 않아서 이혼한다.      

나는 드라마틱한 삶을 포기 안 할래난 그렇게 살고 싶어.”       


이혼한 후에도, 샬롯은 자신이 바라는 점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혼하고 나서 세상 또는 사람에 대해서도 냉소적으로 변할 법도 한데도 그렇지 않다. 샬롯의 대사 중에 인상적인 대사가 시즌 5 3화 ‘Luck be and Old Lady’에서 나온다. 샬롯과 캐리는 술을 한 잔 하러 바에 간다. 두 남자가 말을 건다. “저희가 한 잔 사드릴까요?” 기분도 전환할 겸, 샬롯은 남자들과 더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만 최근 썸을 실패한 캐리는 그럴 마음이 나지 않아서 피한다. 샬롯은 이를 못마땅해 한다.      



=한 잔 같이 한다고 큰일 나니?

-네가 화내는 게 이해가 안 가. 그 사람들이 나중에 우리한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인연일지도 모르잖아.

-꿈 깨. 아닐 가능성이 더 커. 그런 경우가 얼마나 있었니? 거의 없었지. 게다가 그런 경우 오래가지도 않고. 짝을 만나도 남자가 먼저 죽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지. 드라마틱 하게 살기보다 지금처럼 친구와 즐기며 사는 게 좋아. 

=난 드라마틱 한 삶을 포기 안 할래. 그게 사는 거야. 남편과 알콩달콩 살면서 애들을 키우는 거 말이야. 우정도 중요하지만 난 그렇게 살고 싶어. 

-그럼 좋겠지만 항상 원하는 대로 되진 않아.      



물론, 캐리의 말이 맞는 말이긴 하다. 원하는 대로 살면 좋겠지만, 삶이란 항상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샬롯의 말대로, 원하는 걸 포기는 하지 않을 수 있다. 원해서 이뤄지지 않든, 원하지 않아서 안 이뤄지든. 원하는 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면서 감동적이었던 포인트는, 샬롯이 결국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보는 것이었다. 첫 번째 남편과 이혼을 하기 위해 찾은 변호사실에서. 이혼 전문 변호사인 해리 골든 블렛을 만난다. 샬롯은 해리를 남자로 바라보지 않는데, 해리는 샬롯을 처음 보자마자 반해버린다. 조금씩 샬롯에게 다가간다. 샬롯은 어느 날 분위기에 취해, 마음에도 없던 해리와 섹스를 나눈다. 그 섹스는 매우 뜨거웠고 샬롯의 고민은 시작된다! 샬롯의 기준에 해리는 좀 못생긴 편에 바깥에서 데이트하기는 싫은 상대였던 것. 안 만나자니 아쉽고, 데이트하긴 싫다보니 내린 결론은, 밖에서 데이트는 절대 하지 않고, 계속 집에서만 섹스를 나누기. 해리는 자신을 섹스 파트너로 취급하는 샬롯에게, 싫은 내색은 전혀 하지 않고 샬롯이 원하는 대로 맞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으며 해리에 대해 말한다.      



-대머리에 키도 작고 뭘 먹으면서 말을 해. 사람들 앞에 같이 있기도 싫다고! 머리 빼고 온몸에 털이 났어!”

=어머, 섹스도 못 하니?

-그렇게 잘 하는 남자는 처음이야. 나 그 사람을 좋아하나 봐.      



귀여운 대화다. 해리에 대해서 이것저것 단점들을 늘어놓았지만, 결론은 ‘나 그 사람을 좋아하나 봐.’ 첫 번째 남편과의 만남처럼 ‘운명적’인 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상형은 아니었을지라도, 해리를 사랑한다. 샬롯이 해리를 사랑하는 만큼 해리도 샬롯을 많이 사랑한다. 다정다감하고, 샬롯을 바라보는 눈에서는 정말 식상한 표현이지만 꿀이 떨어진다. 샬롯은 유대교인인 해리와 결혼하기 위해 개종까지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잘 통과하고 두 사람은 결혼한다. 결혼식에서 미란다가 한 축사가 기억에 남는다.      


“나의 용감한 친구 샬롯을 축하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얻었지요.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사랑에 관계된 일은요. 어떤 사람은 말도 못 합니다.”     


다음 내용도 매우 궁금했는데, 여기까지밖에 들을 수가 없었다. 말하던 중 종이가 촛불에 타버렸다.(세상에!) 여하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말하고, 얻은 것 같았지만 다시 좌절하고, 그럼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샬롯!

      

물론, 결혼했다고 ‘해피 엔딩~’ 이런 서사인 건 아니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영화 버전에서는 결혼 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샬롯은 해리에게 자신은 임신이 어려운 편이라고 어렵게 고백한다. 그러자 해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으며, 입양을 제안한다. 임신이 어려운 건 앞선 결혼과 같은 상황이지만, 두 사람은 현명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입양을 해 아이를 키우고, 그러다 임신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자신이 바라던 모든 게 이뤄졌지만, 육아는 벅차고 힘든 순간을 매일 마주해야하는 것이었다. 샬롯은 다용도실에서 숨어서 울기도 하지만, 울고 나서 다시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가장 바라던 삶, 그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 힘든 순간도 함께 나눌 해리도 있다. 샬롯을 보면서, 마음속에는 내 마음 속에는 질문이 생겨났다.      


'나는 샬롯처럼 될 수 있을까?'   


매거진 <We See>를 준비하는 동안, 이 글을 완성하지 못 하고, 붙잡고 있었다. 5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고무나무’ 글에도 적혀 있지만, 난 낙관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확신. 20대 때보다도 연애를 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시간이 흐르다 보니, 낙관이 사라지고 ‘그냥 이러다가 계속 혼자인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일은 원하고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돌아오는 듯한데 이건 원한다고 이뤄지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무얼 원하는지 제대로 알아가는 것뿐이다. <We See>를 만들어 가며, 다른 이들의 글을 읽다가 어느 순간 깨달은 건, ‘어떤 결혼’이고 ‘어떤 비혼’이냐를 고민한다는 점 자체가 필요하고 중요하단 점이었다. 고민하지 않는다면, 결혼을 하든 비혼으로 살든 자기 삶의 주체성 없이 살아가는 건 똑같지 않을까. 결혼을 원한다면 어떤 결혼을 원하는 지 제대로 분명하게 생각하며 지내면 가치관이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낙담할 시간에 내가 바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살아가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원하는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지니고. 샬롯처럼.                     



<섹스 앤 더 시티> 이미지 


2024년 3월, 이 글을 보고 든 생각도 따로 글로 적어보고 있어요. 

글 올리면 여기에도 링크 추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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