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여기서 '우리'는 '모두'를 의미하지 않는다
주말이라 간밤에 늦게 잤는데도 고민이 많아 깊게 잘 수 없었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노트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간밤의 고민때문이다.
왜 나는 스타트업에 끌릴까?
왜 나는 스타트업에 끌릴까?
간단히 나를 소개하자면 이직 및 재취업 5회에 달하는 30대 중반의 직장생활 10년차 직장인이다. 휴학 한번 없이 대학생활 마치고 군대를 다녀와서 곧바로 취업했기에 10년이나 다녔다. 그런데 직장은 벌써 다섯번째고 그 중에 대기업이 2번, 중소기업 1번, 유명 스타트업 1번 그리고 공동창업대우로 스타트업에서 1번 직장생활을 했다. 물론 지금은 다시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주. 혹자들은 이직할 때 아래 사이즈의 회사로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기 힘들다 했지만 그건 모두 '연봉'과 '직급' 때문이다. 이런걸 포기하면 자유롭게 옮길 수 있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데 나는 왜 다시 스타트업이 끌릴까?
간밤에는 그간 내가 하지 않았던 생각인 "이제는 사내 정치를 해야 하겠다"이 불쑥 나를 찾아왔다. 이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세상에 나같은 평화주의자가 없을 것인데(다른 말로는 호갱님) 그렇게 싫어하는 사내정치를 해야 할 때가 오다니 참 슬펐다. 근데 이 정치는 (대다수 정치인들이 그렇게 말하듯) 내편을 만들고 내 기득권을 구축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정치는 정치로 기득권을 만들고, 그들의 그룹외의 모든 것을 배척하려는 자들에 반기를 들기 위한 진보의 정치다. 일종의 녹색당, 노동조합 같은 것이다.
아니 그래서, 정치와 스타트업이 무슨관계인데?
스타트업은 대부분 창업자가 지휘를 하거나 공동창업자들이 격론 끝에 결론을 도출해 낸다. 창업자의 손이 여기저기에 닿을 수 있기에 스타트업은 그 자체가 전쟁터고, 정치판이고, 의회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테드 터너가 말한 아래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끌던지, 따르던지, 비키던지"
근데 신기하게 이런 룰이 대기업에서는 먹히지 않는다. 대기업은 이끄는자는 소수이고, 따르는 자도 소수이다. 그런데 비키지 않는 자들은 다수다. 거대한 조직이라는 틀에 숨어서 지내거나 연공서열을 채우기 위해 싫어도 다닌다는 사람들이 다수다(물론 모든 회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대기업에는 많은 팀이 있고 그 팀들간의 KPI가 다르다. 때로는 그 KPI가 상충하고, 개인의 이해관계가 상충한다(출처:http://clomag.co.kr/article/2128). 그런 KPI와 이해관계의 상충의 정점에 있는 것이 전문 CEO의 KPI다. 전문 CEO는 초 단기 지표에 목숨을 건다(그리고 걸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회사는 단기 계획으로 중기계획을 맞춰간다. 결코 중기계획, 장기계획을 세우기 위한 단기계획을 세워나가지 않는다. 쪼고 쪼아 단기 계획을 합쳐 중기를 만들어낸다.
창업자가 대표가 아닌 경우도 있고, 창업자의 손길이 모든 곳에 닿지 않기에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굴러간다.
스타트업이라고 다 좋은 것인가?
스타트업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지금은 안정화되었지만 다녔던 어떤 회사는 창업자가 CEO였는데 어쩔 수 없이 모든 이들이 그 CEO보다 경험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 반 독재가 시작된다. 또한 창업자의 성격이 소위 Hund(독일어니 찾아보기 바란다) 같은 경우도 반 독재나 다름없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왜 스타트업에 끌리는 거야?
결론은 이러하다. 우리는 정치에 너무 지쳐있다. 하지만 정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시작이 그러하듯 서로 토론하고 설득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결론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가장 우수한 시스템은 아니지만 분명 우리는 여기서 배울 것이 있다.
스타트업은 작은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니 나는 스타트업에 끌릴 수 밖에 없다. 당신의 나라를 만들고 싶다면 스타트업, 그것도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하기 바란다. 기득권이 없는 평등한 나라이기를 바란다.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다보니 글이 늘 엉망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