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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율 Dec 06. 2023

여전히 남아있는 야생의 습관

지구별 여행자

"여전히 남아있는 야생의 습관"


**이병률 (시집, 바람의 사생활) 중에서


서너 달에 한 번쯤 잠시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 오는 습관을 버거워하면 안된다


서너 달에 한 번쯤, 한 세 시간쯤 시간을 내어 버스를 타고 시흥이나 의정부 같은 곳으로 짬뽕 한 그릇 먹으러 가는 시간을 미루면 안된다


 


죽을 것 같은 세 시간 쯤을 잘라낸 시간의 뭉치에다 자신의 끝을 찢어 묶어 두려면 한 대접의 붉은 물을 흘려야 하는 운명을 모른 체 하면 안된다


 


자신이 먹는 것이 짬뽕이 아니라 몰입이라는 사실도, 짬뽕 한 그릇으로 배를 부르게 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타이르는 중이라는 사실까지도


(발췌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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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지구별 여행자였다. 바람이 불면 떠나는 것을 즐기던 나는, 방랑은 누구의 마음 속에나 있는 것인 줄 알았다.


 


나는 떠났을 때 제일 자유로웠다. 가장 나 다울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내 자신의 평소 모습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나 자신이 아니었을 때 받았을 상처들을, 이병률 시인 처럼 짬뽕 한 그릇 들이키며 나를 ‘타이르는’ 심정으로 서서히 이겨내갔다.


 


여행 중에 만난 이들에게 우연히 받은 호의와 위로는 일상 생활의 내게 커다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여행에서 가장 값진 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내 모습을 일치 시켜 나가려는, 나 자신과의 ‘화해’이다.


여전히 오늘도 나는 지구별을 여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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